♣복음말씀의 향기♣ No2835
7월28일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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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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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방송미사**
https://m.youtube.com/watch?v=4baI2uxSW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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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외딴 바닷가 언덕 위에 위치한 저희 집의 경비견이자 귀염둥이 친구들이 둘 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언제나 시선과 귀가 아래로 향해있습니다. 낯선 사람이라도 포착되면 얼마나 맹렬히 짖어대는지 놀랄 정도입니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근무를 서는 것 같습니다.
가끔 비상 상황에서 체구가 작은 친구가 짖는데 소홀했다 하면, 큰 녀석이 절대로 가만있지 않습니다. ‘너 지금 근무 소홀히 하는 거야?’하며 왕왕 짖으면, 할 수 없이 작은 친구가 따라서 왈왈 짖는 모습이 정말 웃깁니다.
녀석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바라보면 정말이지 재미있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먹는 것입니다. 매일 두 번 먹는 사료 말고, 햄이나 고기조각 같은 특식 앞에서는 정신을 못 차립니다. 특식을 들고 가면 꼬리뿐만 아니라 온 몸을 흔들며 기쁨을 표현합니다.
특식에 못지않게 녀석들이 좋아하는 것은 산책입니다. 평소에는 인사도 잘 하지 않는 녀석들이 ‘산책가자’하면 즉시 달려 나와 기쁨을 표현합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어 안달입니다. 여기저기 코를 들이대며 냄새를 맡고, 나름 자기 영역을 표시하며 산책의 기쁨을 만끽합니다.
그러나 그 외 다른 것들은 강아지들에게 별 의미나 가치가 없습니다. 녀석들 눈앞에 5만 원 짜리 한 장을 펼쳐서 흔들어 봐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돈의 가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 돈이면 자기들이 먹을 최고급 사료 한 달 치 살 수 있는 대단한 가치라는 것을 모릅니다.
따지고 보니 우리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과정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입니다.
복음 말씀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이며, 하늘나라며, 정말 대단하고, 값지고, 중요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잡동사니 취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당부가 오늘따라 더욱 절박하게 느껴집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여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오 복음 13장 44절)
이런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며, 동시에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잠시 쥐고 있었지만 즉시 날아가 버릴 재산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 마음 안에 간직할 수 있는 불멸의 보물,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더 이상 고통이 다가와도 울부짖지 않습니다. 더 이상 아쉬움도 안타까움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다시 획득해야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회개의 곡괭이로 자신의 그릇된 과거를 갈아엎는 사람, 믿음의 쟁기로 자신의 부끄러운 하루를 뒤집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의 참 만남이라는 큰 선물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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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복음묵상 동영상)
https://youtu.be/Bke9H-lEY8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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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어디에 부어야 할지 모를 때 깨진 독이라도 찾게 된다>
오늘 복음도 역시 ‘하늘 나라’의 비유입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습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이는 하늘 나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모든 에너지를 그것을 얻는데 쓸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의 비유도 말씀하십니다. 값진 진주를 발견하자 그도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삽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오늘도 팔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간도 있고, 건강한 몸도 있고, 각자의 재능이나 능력이 있으며, 물론 재산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어디에 사용하나요?
어차피 인생은 내가 지닌 에너지를 무언가 얻기 위해 소진하다 가는 삶입니다. 예쁜 여자를 얻기 위해 소진할 수도 있고, 명예를 얻기 위해, 혹은 부자가 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쓸 수도 있습니다. 사실 모든 에너지를 무언가 얻기 위해 쓴다면 그것을 얻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우리 옆에 ‘깨진 독’도 많습니다. 그래서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연예계를 보면 돈 잘 버는 자녀들을 이용해 부모가 그 모든 것을 챙기다 결국엔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가 끊어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배우 김혜수 씨의 예도 있었습니다. 김혜수 씨가 2012년까지 벌어들인 돈의 액수는 약 170억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2012년 당시 김혜수 씨는 월세에 살아야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가 여기저기 투자하다 진 빚을 갚아주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결국,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어머니와 관계를 끊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어머니는 딸의 이름을 대며 많은 빚을 졌고 이것이 언론에 나오자 김혜수 씨는 자신은 어머니와 8년간 만난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어머니와 관계를 끊기 그나마 잘했던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연예인들에 장윤정 씨나 박수홍 씨도 있을 것입니다. 부모와의 인연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부모가 가진 재산을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것으로부터 부모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물론 부모도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하겠지만, 부모가 이미 성장하여 어른이 된 자녀의 것까지 빼앗을 권리는 없습니다.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은 자녀를 독립시키는 것이지 자기에게 종속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가 독립적인 성인이 되었을 때 가진 재산과 에너지를 어떻게 쓰고 살아야 하는지 먼저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와 자녀들을 위해 밭에 묻힌 보물이 무엇인지, 엄청난 가치의 진주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재물과 에너지를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알고 자녀가 어른이 되었을 때 쓸데없이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게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밭에 묻힌 보물은 ‘하늘 나라의 행복’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성령님’입니다. 이를 위해 가진 것의 100%를 사용할 줄 알게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땅을 사기 전까지는 그 보물이 나의 것이 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당신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할 용기가 있는 사람의 것이 되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삼구를 이기고 기도할 때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그러니 돈이나 시간을 어디에 사용해야겠습니까? 일단 ‘세속’에서 멀어지기 위해 가난한 사람을 돕고, ‘육욕’에서 멀어지기 위해 운동하며,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 겸손을 위해 에너지를 소진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위한 시간, 곧 미사나 피정 같은 것을 가고 아침기도나 저녁기도 시간을 벌기 위해 돈을 써야 합니다. 그 시간까지 바쳐가며 돈을 벌겠다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물을 어디에 부어야 하는지 몰라 어쩔 수 없이 가까이 있는 깨진 독에라도 붓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목마르면 먼저 내가 마시고 다른 사람이 마시게 하고 또 그 물을 더 얻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것을 안다면 굳이 옆에 있는 깨진 독에 물을 붓는 어리석은 삶은 살지 않을 것입니다.
오랜 무명생활로 간신히 월세살이하며 군고구마라도 팔아야 했던 ‘임영웅’ 씨. 그가 ‘미스터 트롯’을 통해 받은 상금 1억 원은 어머니에게도 드리고 그동안 여기저기 갚아야 할 곳에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동차 첫 단독 광고를 찍고는 그 모든 수익을 전액 기부하였습니다. 자신도 월세를 살면서 첫 광고수익 전액을 기부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에너지를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아동복지 재단에 1억 원이라는 거액을 통 크게 기부하고 코로나 여파로 행사가 많이 줄었음에도 알게 모르게 기부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선행은 사실 유명해지기 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예를 들면 2017년 아침마당에서 5연승을 하며 받은 상금 100만 원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전액 기부하였습니다. 그 당시 임영웅 씨는 군고구마를 팔며 월세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수입이 없던 시기에도 연탄 나누기 봉사활동을 다니며 묵묵하게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이렇게 어디에 에너지를 써야 하는지 명확히 안다는 것은 부모로부터 올바른 교육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부모는 재산을 쓸 때, 하느님 나라 곧 마음의 떳떳함, 그리고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목적으로 쓰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감정을 모르는 사람, 그래서 그 감정을 위해 에너지를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것들을 깨진 독에라도 붓게 되고 결국 인생을 헛살았다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부자는 자녀에게 어렸을 때부터 용돈을 주며 10%는 십일조를 내고, 10%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며, 30%는 저축을 하고 나서 나머지를 원하는 대로 사용하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돈을 사용할 때 얻게 되는 마음의 떳떳함과 기쁨과 평화를 알게 먼저 알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 아이는 자신의 에너지를 잘 사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깨진 독에 물을 부으며 느끼는 감정이 싫어서 에너지를 잘못 사용하며 사는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녀들을 교육할 때,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명확히 먼저 깨닫게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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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마태 13,44-46 : 밭에 묻혀있는 보물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44절)고 말씀하신다. 밭에 숨겨진 보물은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선물,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이 보물을 가지려면 밭을 사야 가질 수 있다. 즉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서라도 밭을 사야하는 것처럼, 하늘 나라의 보물은 세상의 것을 버리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밭이란 성경이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밭으로 오는 사람은 그 안에서 보물인 지혜를 찾는다. 신앙인은 이제 성경을 알려고 노력하며, 예수님을 따르려고 애쓰는 가운데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 보물을 숨기고 있는 밭이 그리스도라면, 우리도 그렇게 할 것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 즉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를 것이다. 거기서 보물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물이 숨겨져 있는 밭을 합당한 비싼 값을 치르고 살 수 있게 된다.
값진 진주는 율법과 예언서보다 더 귀한 살아계신 ‘말씀’이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다른 모든 것을 잃는 한이 있어도 영원한 삶이라는 하나의 진주를 찾는다. 하느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이 은총으로 하느님을 알아보고는 과거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기고 그분만을 따르게 된다.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게 되면 인간은 속된 욕망에서 돌아서게 한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을 발견하면 나머지 모두도, 즉 율법과 예언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바오로 사도는 율법에 대단한 열정을 보였지만, 복음을 알고는 율법에 관계된 모든 것을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필리 3,7-8)라고 하셨다. 이처럼 거룩한 삶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면 자기가 세상에서 사랑했던 모든 것을 기쁘게 버린다. 그 진주와 비교할 때 다른 모든 것은 하찮을 뿐이다.
그 마음은 하늘의 것들을 바라며, 세상의 것으로는 만족치 못한다. 오직 값진 진주의 광채, 즉 그리스도만이 그의 마음을 휘어잡고 있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아가 8,6)라는 말은 이러한 사랑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영원한 삶에 대한 불타는 열망은 물질에 대한 사랑을 끊어버리게 한다. 하느님께 깊이 빠진 사람은 속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우리가 찾아야 하고 가져야 할 값진 보화란 무엇인가? 생명을 영원히 살리고 천국으로 인도해 주는 보화란 다름 아닌 하느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파헤쳐서 그 보화를 스스로 발견하고 찾아 얻는 기쁨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서도 그만한 희생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구원도 우리의 희생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참 기쁨을 우리에게 주며,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것임을 생각하며 노력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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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광주대교구 최종훈 토마스 신부님]
저는 평소에 투신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몸을 내던지는 삶을 무모하다고,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그렇게 몸을 내던져 봤자 돌아오는 것은 실망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투신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또한 어떻게 투신하며 살아야 할지 매번 고민합니다.
하늘 나라는 투신의 삶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비유를 통해서 이야기하십니다. 가진 것을 다 파는 모험과 위험을 감수하는 삶,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삶을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우리는 보물의 가치는 알지만 밭의 가치는 모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보물을 얻으려고 평생을 찾아 헤매면서도, 보물이 숨겨진 밭의 가치가 너무나 보잘것없기에, 또는 너무나 두렵고 위험한 것이기에, 너무 힘들고 아픈 것이기에, 그 밭을 위하여 온 몸을 던지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평생 진주를 찾아다니는 상인은 많은 곳을 찾아 헤매는 고통과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멸시를 감수해야 진주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녀야 하며, 좋은 진주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노고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주 상인에게 주어진 밭의 모습일 것입니다. 하늘 나라를 발견하려면 우리는 그러한 아픔과 고통, 수고와 두려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시는’(마태 14,22-33 참조) 예수님의 목소리에 베드로는 물 위로 자신을 내던집니다. 물 위를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물에 빠지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풍랑 때문에 놀라고 두려운 마음인 채로 물에 뛰어듭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거기 계셨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투신, 곧 자신을 내던질 수 있었습니다.
투신의 삶을 위해서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불확실에서 기인한 두려움과 의심은 우리에게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두려움과 의심을 이겨 낼 수 있는 것은 믿음뿐입니다. 낭떠러지에서 몸을 내던져도 우리를 받아 안아 주실 예수님께서 계시다는 믿음,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용기와 힘을 주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걸어가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내어 맡기십시오. 두려움 속에서도 투신하십시오. 하늘 나라를 위하여, 예수님의 가치를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투신하십시오. 여러분의 그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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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마태 13,44-46)
1)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의 핵심 단어는 ‘기쁨’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구원에 관한 복음’)을 전해 들었을 때의 ‘기쁨’입니다.> ‘보물의 비유’는 우연히 보물을 발견하는 상황인데, 이것은 ‘하느님 나라’도, ‘구원’도, ‘복음’도 모르고 살던 사람이 복음을 전해 들었을 때의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진주 상인의 비유’는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진주를 차지하는 상황인데, 이것은 ‘구원 받는 방법’을 찾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던 사람이 ‘구원의 복음’을 전해 들었을 때의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중요한 점은 보물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고, 그 기쁨을 영원히 누리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친다는 점입니다. (모든 것을 다 바친다는 것은, 그 보물 외에는, 다른 어떤 것에서도 기쁨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복음의 기쁨’과 ‘구원의 기쁨’은 다른 것을 전부 다 버릴 정도로 ‘큰 기쁨’입니다. 비유에서, 밭의 보물을 발견한 다음에 다시 숨겨 둔다는 말은 ‘기쁨’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밭의 보물이든지, 좋은 진주든지 간에 그것을 사는 목적은 ‘가지고 있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비싼 값에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물을 발견하는 일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발견하는 일로, 또는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는 길을 발견하는 일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 집은 우리가 들어가서 살기를 간절하게 희망하는 집이고, 우리가 들어가서 살아야 할 집입니다. (선교활동은 그 집에 들어가서 ‘함께’ 살자고 초대하는 일입니다.)
2) 그 기쁨을 사도행전 8장에 있는 에티오피아 내시 이야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필리포스는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하였다. 이렇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였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수레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필리포스와 내시, 두 사람은 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사도 8,35-39) 에티오피아 내시는 필리포스를 만나기 전에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고(사도 8,28), 필리포스에게 성경 해설을 요청했습니다.(사도 8,34) 따라서 그는 좋은 진주를 열심히 찾아다닌 상인과 같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필리포스가 한 일은 그에게 ‘좋은 진주’를, 즉 최고의 보물을 소개해 준 일이고, 또는 보물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도와준 일이고, 내시가 세례를 받은 일은 그 보물을 얻은 일입니다.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라는 말은, 그의 인생이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었음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그의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기쁨은 아무도 빼앗지 못하는 영원한 기쁨입니다.(요한 16,22)>
3)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어떤 간수도 좋은 예입니다. “그러자 간수가 횃불을 달라고 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그리고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간수는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이어서 그들을 자기 집 안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였다."(사도 16,29-34) 그 간수와 그의 가족들은 하느님도 예수님도 복음도 모르고 살던 사람들이었는데, 바오로와 실라스를 통해서 ‘구원의 복음’을 전해 들었고, 곧바로 세례를 받았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고 크게 기뻐하면서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그 보물을 얻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4) 마태오복음 19장에 나오는 어떤 부자는 정반대의 경우입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와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마태 19,16) 그 모습은,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상인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십계명을 잘 지키라는 말씀과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마태 19,17-21) 예수님께서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알려 주신 것은, ‘좋은 진주’를 주신 일입니다. 그런데 그는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기뻐하기는커녕 슬퍼하면서 그냥 떠나버렸습니다.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19,22) 복음서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분명히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희망하고 있었지만, 그가 기뻐하는 것은 ‘현세에서 재물을 소유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해도, 또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다가 그것을 발견해도,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영원한 생명’과 ‘구원’이라는 보물이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보물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여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보물을 발견해도 기뻐하지 않으니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전해 주어도 듣지 않거나, 들어도 그냥 흘려듣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5) 신앙인은 이미 하느님 나라의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고, 그 보물을 얻어서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 보물을 완전히 차지한 것은 아닙니다. 완전히 차지하는 일은 하느님 나라에서 이루어집니다. 신앙생활은 그 보물을 완전히 차지하게 되었을 때의 영원한 기쁨을 향해서 나아가는 생활입니다. 만일에 지금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한눈을 팔면, 가지고 있는 보물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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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가톨릭 평화신문 미주지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미겔 베이조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1960년 쿠바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난민입니다. 당시 미국 정부와 가톨릭교회는 ‘피터 팬’ 운동을 펼쳤습니다. 공산화되는 쿠바에서 미국으로 넘어 오려는 사람들 중에 미성년자들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운동입니다. 당시에 미국으로 넘어온 미성년자는 14,000여 명이었다고 합니다. 미겔 베이조스는 살레시안 고등학교엘 다닐 수 있었고, 제임스 바인 교장 신부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성공한 미겔 베이조스는 지난 6월 16일 모교인 살레시안 고등학교에 1,200만 불(135억)을 기부하였습니다. 미국 가톨릭교회는 쿠바라는 밭에 묻혀있던 미성년자라는 보물을 발견해서 미국으로 올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당시의 미성년자들은 열심히 공부하였고,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중에 1명이 세계적인 기업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의 아버지인 미겔 베이조스입니다. 제프 베이조스는 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자신은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 미겔 베이조스는 아들 제프 베이조스 안에 있는 보물을 알아보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에는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라는 지면이 있습니다. 미주 지역에 있는 분들이 사연을 읽고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모인 성금은 2만 불이 넘었습니다. 미주가톨릭평화신문은 서울의 본사로 성금을 전달하였습니다. 저는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실린 사연은 안타깝고, 불쌍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난해서 아픈데도 치료받지 못하는 이야기, 남편의 폭력에 쫓겨나 갈 곳 없는 외국인 아내의 이야기, 감당하기 버거운 짐을 지고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사연입니다. 그런데 도움을 주는 분들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그 보물에 정성을 주는 것 같습니다. 1년이 지나면 안타까운 사연들이 희망을 주는 이야기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이 없어서 거리를 헤매야 했던 사람은 작은 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수술을 받지 못했던 아이는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폭력에 집을 나와야 했던 외국인 아내는 사랑하는 자녀와 함께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은 작은 가게를 차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물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오늘 본기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희의 희망이신 하느님, 하느님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있을 수 없고 하느님만이 저희를 지켜 주시니 풍성한 자비로 저희를 보살피시고 이끄시어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내 형제들 중에 가장 작은이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물’입니다. 그 보물을 발견했으면 가진 것을 팔아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늘나라를 지금 이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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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도회(부산 분도명상의 집) 박재찬 안셀모 신부님]
<내 맘에 숨겨진 진짜 보물과 진주는 무엇일까?>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우리 영성 생활의 목표는 하늘 나라의 문을 열어 주신 예수님과의 사랑의 일치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을 찾고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 마음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밭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고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살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청하며 이 미사를 온 정성을 다 해 봉헌하도록 합시다.
찬미 예수님! 오늘은 예전에 어느 신부님께 들은 감동적인 이야기로 강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제목은 “내 마음의 금덩어리”입니다.
어떤 순례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한 마을을 순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서 큰 금덩어리를 하나 주웠습니다. 그때 마을 쪽에서 한 젊은이가 나오더니 순례자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간밤에 꿈을 꾸는데 천사가 나타나 동구 밖으로 가면 보물을 가진 이를 만날 테니 보물을 받아오라고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순례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의 손에 들고 있는 금덩어리를 아무 망설임 없이 그 젊은이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젊은이는 금을 받아 들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 순례자는 이 귀한 금덩어리를 그렇게 망설임 없이 내어줄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순례자가 머물고 있는 숙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순례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예, 저는 금을 받고 종일 생각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금덩어리를 그렇게 쉽게 제게 주신 걸 보니 이 금덩어리는 꿈에서 말한 보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금덩어리가 보물이었다면 그렇게 쉽게 내어줄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도 보물은 다른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금덩어리를 돌려 드릴 테니 금을 서슴없이 내어준 당신의 그 마음을 저에게 주십시오.”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우화입니다. 금덩어리를 서슴없이 내어준 순례자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다시 돌려 주고 재물에 집착하지 않는 순례자의 그 마음을 청하는 젊은이 역시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금덩어리와 같은 보물을 좋아합니다. 그것으로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령 금덩어리 자체에 집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많은 좋은 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금덩어리를 돌려 주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청년이 발견한 것은 외적인 보물이 아니라 내적인 보물이였습니다. 그 청년은 내적인 보물을 얻기 위해 외적인 보물을 모두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자매 형제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그 어떤 것 보다 가치롭고 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하고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처럼, 좋은 진주를 찾은 상인이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사는 것처럼 그렇게 하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넣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늘 나라를 위한 참된 보물, 값진 진주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밭에 보물이 묻혀 있듯이 예수님은 드러나지 않게 계시기도 합니다. 진주가 비슷비슷해서 전문가가 아니면 진짜 좋은 진주를 한 눈에 알아 보지 못하는 것처럼 금방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느님의 때에 하느님의 방식으로 우리가 그 무엇에도 의지할 곳이 없어지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때에 오히려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깊은 어둠을 거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빛으로 다가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 뵙게 됩니다. 그분이 바로 나에게 가장 귀한 보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 삶의 주인이시요 바로 하늘 나라이심을 가진 것을 다 팔아도 하나도 아깝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께 나 역시 귀한 보물이었음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밭에 묻힌 나를 발견하시고 가진 것 다 팔아 목숨마저도 내어 주셔서 나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 마음 밭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 보물을 캐내야 합니다. 밭에 묻힌 보물을 갖기 위해서는 땅을 깊이 파야만 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순종의 삽으로 내면의 굳어진 땅을 파고, 겸손의 곡괭이로 내면의 얼룩진 상처들을 걷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에 온전히 의탁하는 마음은 보물상자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교만의 거짓 진주가 유혹을 하고 이기심의 반짝이는 가짜 진주가 우리를 속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 주님 은총으로 내면의 눈을 뜨게 되면 모든 것 안에서 참된 진주이신 예수님을 바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 고 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가장 아끼는 보물은 무엇입니까?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나의 보물은 누구입니까?
누구나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보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이 아닐 때, 그것은 집착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귀한 보물로 여길 때, 금덩이를 예수님을 위해 사용할 수 있고, 예수님이 나의 가장 귀한 보물이 될 때, 가족을 위한 사랑도, 이웃을 위한 나눔도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가장 귀한 보물이 될 때, 내가 아는 지식도, 나의 건강도, 나의 재주도, 나의 기도도 주님 사랑을 나누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 마음에는 어떤 보물이 있습니까? 그 보물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이제 순종과 겸손, 사랑과 인내, 기도와 명상의 도구를 통해 그 보물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던져 넣도록 합시다. 그러면 다른 것들도 함께 더 받게 될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요 주님께서 나를 귀한 보물로 여기기시기에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가장 귀한 보물인 예수님의 사랑을 사람들과 나누는 천국에서의 시간이 되시길 빕니다.
"나를 버리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얻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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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염철호 요한 신부님]
제1독서에서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눈 모세는 얼굴의 살갗이 빛납니다. 여기서 ‘빛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란’인데, ‘뿔’이라는 의미를 지닌 ‘케렌’과 같은 어근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로마 시내에 위치한 쇠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모세 상에도 뿔이 달려 있습니다.
사실, 구약 성경에서 ‘뿔’은 하느님의 권능과 힘을 상징합니다. 번제 단이든, 분향 제단이든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는 제단에는 뿔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속죄 제사를 바칠 때, 제물의 피를 제단의 뿔에 발랐습니다. 게다가 죄를 지은 사람이 이 뿔을 잡으면 그를 처벌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권능을 지니신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은 나의 뿔”이라고 노래합니다.
이 ‘뿔’은 주님 권능을 실행하는 도구이기도 하였습니다. 숫양 뿔로 만든 나팔은 기쁜 소식, 곧 구원을 알려 주는 도구였고, 사무엘 등 예언자들은 ‘뿔’에다가 기름을 채워서, 임금들을 축성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니 제1독서에서 모세의 얼굴이 빛났다는 말은 모세가 바로 이 뿔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뿔 자체이신 하느님을 만나, 뿔을 도구로 받은 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얼굴을 너울로 가립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를 두고 자신의 얼굴에 나타나는 빛이 사라지는 것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더 이상 너울이 필요 없는 참빛을 보게 되었다고 강조합니다.(2코린 3장 참조)
오늘 복음이 말하는 기쁜 보물, 진주는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빛이신 하느님을 만나 그분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된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발견한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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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님]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이나 보석을 땅에 묻어 보관하였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현금이나 귀중품을 맡아 보관해 주는 은행이나 금고가 없었기 때문이죠. 마태오 복음에만 나오는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를 묵상하며 하늘 나라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두 비유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두고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생각지도 않게 발견한, 밭에 숨겨진 보물과 애써 찾던 좋은 진주로 나타내는 하늘 나라 앞에서, 농부와 상인은 그 보물과 진주를 차지하려고 ‘가진 것을 다 팔고’, ‘모두 처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물이 묻힌 밭과 값진 진주를 발견한 농부와 상인의 엄청난 기쁨을 강조하실 뿐,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않지만 확연히 드러나는 그들의 탐욕은 비난하시지 않습니다.
탁월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하늘 나라를 차지하려면, 개인의 결단으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농부와 상인이 보여 준 열정은 가까이 다가온 하늘 나라를 보증하고자 추구해야 할 본보기입니다. 하늘 나라를 위해 우리가 치르는 모든 희생과 포기는 풍부히 보상받을 것입니다.
저 농부와 상인의 태도를 닮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온 생애를 더 나은 곳에 투자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알폰소 성인도 자신을 거룩한 예물로 봉헌하며 하늘 나라를 차지하려고 모든 것을 희생한 분입니다. 하늘 나라를 차지하고자 우리는 ‘가진 것을 다 팔고’ 있는지 아니면 가진 것의 일부만 팔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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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이영훈 알렉산델 신부님]
절벽에 매달려 있는 사람 있다. 그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는데, 가방에는 맛있는 음식과 새로 산 최고급 등산복, 각 종 신용카드, 최신형 카메라, 자동차, 아파트 열쇠, 부와 권력을 담고 있는 각종 회원권과 신분증 등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그런데 그의 손은 그 어디에도 아닌, 바로 별 볼 일 없는 밧줄을 잡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당연히 이 밧줄을 놓는 그 순간 그는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지금 그에게 가장 소중하고 절실한 것은 맛있는 음식도, 좋은 옷도, 돈도 아니라, 바로 밧줄 하나가 절실히 필요하고, 이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만약 그가 평소 생각처럼 밧줄을 그리 소중히 생각하지 않고 음식을 먹으려고, 옷을 입으려고, 돈을 만지려고 밧줄에서 손을 놓는 그 순간 그는 죽음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된다. 오히려 그가 살기 위해서는 무거운 가방을 던져 버려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바로 커다란 가방을 메고 절벽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다. 밧줄에 자신의 목숨을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모든 힘을 다해 그 밧줄을 잡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가방 속에 있는 것에 마음이 빼앗겨 밧줄을 놓고 가방 속에 있는 것을 잡으려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 입장에서 밧줄은 하찮은 것에 불과하겠지만, 그리고 가방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더 소중하겠지만, 내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 그 줄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보물이며, 생명 자체이며, 희망이다. 그러면 우리가 절대 놓아선 안 될 줄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우리가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될 생명줄이다. 삶의 행복과 영원함을 바라는 우리에게 이것은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어떻게 보고 있고, 정말 소중히 받아들이며 간직하고 있는가? 하느님께서 주신 그 모든 사랑과 은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얼마나 감사드리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온 몸으로 보여 주신 그 사랑의 길을 정말 사랑하고 그분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가?
오늘 복음이 전하는, 밭에서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평소 보아 온 그 밭을 그리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을 발견하고선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그것을 얻는다.
그 사람처럼 이미 우리는 복음이 세상에 숨겨져 있는 최고, 최상의 보물임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복음을 얻고자 그리고 사랑하고자, 실천하고자, 노력하지 않는 걸까?
예수님의 말씀과 삶만이 그리고 그것을 따라 사는 사람만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우리는 그 보물이 묻혀 있는 밭을 사려고 하지 않고 있을까?
모든 것을 버리고 그것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가? 세상의 이윤을 얻는 데에는 날쌘 독수리와 끈질긴 진돗개와 같으면서도 왜 하느님 나라를 얻고자 하는 데에는 태평세월일까?
우리 앞에 하느님 나라 열쇠가 있다. 이미 우리 손 안에 그 열쇠가 있다. 그런데 그 열쇠는 두 손으로 들어야 할 정도로 무겁다.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을 힘도 모자라고 여유가 없는데 어디에 신경을 쓰고 있는가? 그리고 또 무엇을 얻으려고 천국의 열쇠마저도 던져 버리려고 하는가? 우리의 선택과 결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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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회 양주분회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절대 최고의 가치를 지닌, 내 목숨을 내어주고서라도 얻고 싶은 것, 그것은 무엇일까요? 참된 행복, 참된 기쁨, 참된 보물, 그것은 무엇이며, 대체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우선 그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44)
이는 그 ‘보물’이 멀리 하늘 위에 높이 매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땅에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의 일터인 내 직장, 내 가정, 내 공동체가 바로 보물이 묻혀있는 “밭”이라는 말씀입니다. “보물”은 내가 있는 이곳에 ‘이미 묻혀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 17,21)
그렇지만, 그 보물은 누구나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밭을 충실히 일구고 가꾸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습니다.”(마태 13,45) 우리의 머리 속, 관념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진주를 찾아다니는” 행동 안에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길을 찾는 발길 그 안에, 진리를 더듬는 손길 그 안에, 사랑을 찾아나서는 우리의 행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신앙의 여정, 신앙의 행위 그 안에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그 진주는 누구나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찾아다니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이미 와 있는 이 “하늘나라”를 어떻게 얻을 수가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마태 13,44.46)
이는 “하늘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곧 우리가 비록 보물을 발견하고 찾았다 해도, 그것이 곧바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진정 그 보물을 차지하려면, “먼저” “가진 것을 다 파는 일”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목숨가지 내놓으셨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비우지 않고는 채워지지 않는 법인가 봅니다. 그러나 비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는” 일입니다. 사는 일이 본질이지, 비우는 일이 본질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그 보물이 더 값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는” 일입니다. 비록 보물을 발견했다 해도, 또 가진 것을 다 팔았다 해도, 그 보물을 실제로 사들이기 전에는 아직 그 보물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살 때라야, 그것은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됩니다. 하지만 보물이 없다면, 결코 그것을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분명한 것은 그 보물이 “먼저”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먼저 있는 그 보물이 우리를 먼저 이끈 것입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있으면서(루카 17,21)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보물을 차지하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그 보물은 다름 아닌, 우리 주님 그리스도요, 그분의 나라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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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44)
주님!
밭을 일구는 제 손길이 당신의 나라를 찾아 발견하게 하소서.
발견하고서 가진 것을 다 팔아 사게 하소서.
그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더 값진,
모든 것을 합해도 그것 보다 낳을 수 없는,
도저히 값을 헤아릴 수 없는 최상의 것,
그것을 가지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기에
목숨을 내어주고서라도 얻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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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마태13,44b)
오늘 복음은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고,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찾아야 하고, 가진 것을 다 팔아서라도 사야 할 보물과 좋은 진주는 무엇이고, 그것은 어디에 묻있을까?
이런 물음을 던져놓고 묵상하니,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회개 여정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실패 체험, 곧 십자가 체험을 통해 회개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나병환자와의 만남은 그를 결정적으로 회개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회개의 길로 들어선 프란치스코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포르치운쿨라 성당에서 미사 드릴 때 들려온 복음인, '아무 것도 지니지 말고 가라'는 사도들의 파견사화(마태10,9-10)를 듣고, 프란치스코는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원하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살고 싶어하던 바다." 라고 외쳤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복음 안에서 그가 찾고자 했던 보물을 발견한 것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그는 이를 즉시 실행했고, 보물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가 되려는 삶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여정은, '보물찾기의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보물은 '말씀'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 비유를 보면 보물을 발견한 사람의 '두 행위'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진 것을 '파는 행위'이고, 또 하나는 보물을 '사는 행위'입니다. '파는 행위'는 나의 것을 비워내는 행위, 곧 완전한 회심이요 방향전환이고, '사는 행위'는 발견한 보물이 나의 것이 되게하려는 나의 온전한 투신이라고 묵상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과 임마누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물을 얻기 위해,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 안에 머무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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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하늘나라를 찾는 벗에게>
마태오 13,44-46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하늘나라를 찾는 벗에게>
사랑하는 벗이여,
우리 함께
하늘나라를 찾아
삶의 첫날 내디딘 발걸음
삶의 마지막까지 멈추지 말아요
밭에 깊숙이 숨겨진 보물 같은
하늘나라가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점점 짧아지는 듯하면
조바심도 날 거예요
이것이 하늘나라인가
저것이 하늘나라인가
묻다 지쳐 포기하고 싶을 지도 모르고
이것이 하늘나라야
저것이 하늘나라야
주제넘게 정하려 들지도 몰라요
하늘나라가 뭐 대수인가
그냥 하루하루 맘껏 살면 그만이라며
애써 고개 돌릴 지도 모르고요
사랑하는 벗이여,
하지만 우리 그러지 말아요
하느님도 온전히 알 수 없는 우리가
어찌 그분의 나라를 알 수 있겠어요
다만 찾고 또 찾고 찾아갈 뿐이지요
믿다가 의심하기도 하고
의심을 이겨내고 믿으며
하느님을 찾듯이 말이지요
따르다 거부하기도 하고
거부하다 따르기도 하며
하느님과 함께 하듯이 말이지요
그러니 사랑하는 벗이여,
우리를 보내신 분께로
다시 돌아가야 할 순간까지
하늘나라를 찾지 못하더라도
우리 아쉬워하지 말아요
하느님께 물음을 던지고
하느님을 갈망하는 사람이
이미 하느님 사람이듯이
하늘나라를 찾아
쉼 없이 발걸음 내딛을 때에
우리가 이미 하늘나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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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어느 장군이 전쟁터에서 상처를 입어 황급히 야전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의사는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면서 수술 준비를 서둘렀지요. 그런데 옆에 있던 간호사가 갑자기 의사를 향해 총을 쏘는 것입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은 깜짝 놀랐고 몇몇 간호사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총을 쏜 간호사는 눈물을 흘리면서 죽어가는 의사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죄송해요. 선생님.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저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저는 스파이로서 장군을 죽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장군을 살리게 그냥 놔둘 수가 없어서 이렇게 총을 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힘들어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장군을 쏘면 되지, 왜 나를 쐈습니까?”
장군을 죽이기 위해 의사를 쐈다고 하지만, 사실은 곧바로 장군을 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애꿎은 의사만 총에 맞아 죽게 된 것이었습니다. 간호사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최악의 선택이었습니다. 잘못된 자신의 판단으로 빚게 된 결과였던 것이지요.
과거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 역시 예수님을 향해 최악의 선택을 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느님만을 바라보면서 살았던 사람도 잘못된 최악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어떤가요? 우리 역시 최고의 선택을 한다고 하면서도 최악의 선택을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주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세속적으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속적인 기준만을 생각해서일까요? 주님께서는 세속적인 기준에 맞춰서 보물과 진주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잦은 곳이라 몰래 보물을 단지에 넣어 밭에다 묻어 두고 피난을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인이 불귀의 객이 되어 못 돌아오는 일도 종종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우연히 그 밭을 갈다가 보물을 발견하기도 했었지요. 또한 당시는 인조 진주가 없던 시절이라 천연 진주를 지금보다 훨씬 더 비싼 값으로 거래했습니다.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걸쳤던 진주 목걸이가 최고가였다고 하더군요.
하느님 나라가 이 보물과 진주와 같다고 하십니다. 이 나라는 하느님의 선한 통치, 보살핌,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매우 귀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귀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으십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밭을 사고 진주를 사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사랑’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만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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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만남>
지금 저와 아주 친한 동창 신부가 있습니다. 이 친구와는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고, 같은 성당을 다니다가 신학교에 함께 들어가 같은 날짜에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남다른 인연으로 지금도 큰 우정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 초등학생 때 이미 만났었다는 것입니다. 이점을 서로 몰랐는데, 대학원 때 동창 신부의 어렸을 때 사진들을 보다가 저도 가지고 있는 사진이 보였습니다. 첫영성체 기념사진이었습니다. 맞습니다. 같은 날짜에 같은 성당에서 첫영성체를 함께 했습니다.
어떤 만남도 소홀하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만나고 언제 또 만나겠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다시 만날 수 있고 나의 가장 중요한 사람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성장시키고 관계를 풍요롭게 할 대상일 수 있습니다.
언젠가 읽은 책에서 우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우정은 케이크 겉에 발라지는 크림과 같다.’ 케이크 겉의 크림으로 케이크 맛을 더 맛있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을 더 맛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우정이 아닐까요? 만남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좋은 만남, 사랑이 넘치는 만남, 그래서 맛있는 만남을 만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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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보물중의 보물>
아무리 값진 보물이라고 해도 어떤 사람의 눈에는 보이고 어떤 이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값진 진주를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찾아 다녀야 얻을 수 있습니다. 애쓰지 않는 사람이 보물을 발견 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보물이고 따라서 보물을 얻기 위한 희생과 헌신이 요구됩니다.(마태13,46) 그리고 값진 보물을 발견했으면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하여 그보다 못한 것들을 처분하게 됩니다. 새 옷을 장만하면 전에 입던 옷을 정리하게 됩니다. 더 좋은 것을 얻으면 하나는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하느님을 차지하면 다른 모든 것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가진 것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한다면 결코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신자들에게 말합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3,7-9)
마태복음 19장 이하의 부자청년이야기를 보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온 젊은이에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하셨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는 주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기의 재산을 포기하지 못하였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양다리 걸치기나 어중간은 없는 법입니다. 젊은이는 결국 주님을 차지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용기와 무엇이 참으로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식별할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됩니다. “하느님을 잃어버리기 보다는 차라리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무엇으로도 마음을 흩으러뜨리지 말며 무엇 때문에도 놀라지 말라! 모든 것은 지나가나 하느님은 변하지 않는다. 하느님을 차지한 자에게는 부족할 것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 결국 하느님을 얻으면 모두를 얻은 것이요, 모든 것을 얻어도 하느님을 차지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나라를 성인들이나 가는 곳으로 어렵게만 생각한다면 아무 발전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마태6,33)을 구하고 그리하여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러 오지 않으시고 오히려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 안에서도 실망과 좌절보다는 하느님의 자비를 갈망해야 합니다.
성녀 엘리사벳 씨튼은 고백합니다. “하느님만이 나에게 남은 피난처이십니다. 저는 다른 모든 피난처들을 잃어버리고 주님에게만 의존하게 되는 데서 오히려 영적인 기쁨을 느낍니다.”
보물은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있고 세상의 어떤 것도 다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지 말고’(루가9,62) 내 삶의 자리에서 참 보물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 정녕 당신은 저의 등불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어둠을 밝혀 주십니다.”(2사무22,29) 이제 당신이 밝혀 주시는 보물을 차지해야 하겠습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교부들은 이 비유말씀에서 밭을 성경으로(오리제네스) 보물을 그리스도로(힐라리우스) 풀이합니다. 성경 말씀을 애써 뒤적임으로써 최고의 보물인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썩지 않는 보물, 영원히 빛나는 진주는 예수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그분을 만나려는 마음과 의지가 있다면, 성경 말씀을 묵상합시다.”(함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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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보물 찾기>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참 보물이시다-
오늘 마태복음은 일곱가지 하늘 나라 비유중 6-7째에 해당하는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역시 좋으신 주님은 오늘 우리 삶의 자리에서 하늘 나라를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초등학교 시절 소풍때 마다 소풍이 끝날 무렵 소풍의 절정을 이루는 흥미진진, 마음 설레게 했던 보물찾기 놀이가 생각납니다.
아마 50대 이상이 된 분들은 누구나 초등학교 시절 마음 설레는 두가지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봄가을 소풍과 가을 만국기 펄럭이는 운동회입니다. 파란 하늘에 줄줄이 펄럭이는 만국기는 얼마나 마음을 기쁨으로 물결치게 했던지요! 저 역시 혹시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기다렸던 밤잠조차 설쳤던 두 추억의 소풍과 운동회입니다. 특히 시골 운동회는 완전히 어린이들 세상에, 그 마을의 축제요 잔치였지요.
지금도 생생한 눈에 선한 소풍때의 추억이 보물 찾기입니다. 선생님의 신호에 따라 보물 찾기가 시작되면 너나 할 것 없이 흥분한 마음으로 보물찾기에 돌입하여 돌틈이나 나뭇가지 사이등 접힌 종이 쪽지 보물을 찾습니다. 여러개 보물쪽지를 찾는 아이들도 있고 하나도 찾지 못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하나도 찾지 못했을 때의 쓸쓸함, 혹시 여러 개 찾은 아이가 하나라도 주었을 때의 고마웠던 마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리 인생은 보물찾기입니다. 참 기막힌 삶의 상징이 보물찾기입니다. 한 두번 보물찾기가 아니라 흥미진진 설레는 마음으로 죽는 그날까지 날마다 보물찾는 여정의 삶이어야 합니다. ‘나이 30에 죽어 70에 묻힌다’, 지금도 수십년전 강론에 인용했던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나이 30까지는 보물찾기에 재미있게 살았는데 그 이후 70에 묻힐 때까지는 보물찾기 없는 무료한,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죽은 인생을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보물 찾기 여정에 충실한 삶이었다면 나이 30에 죽어 70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로 살다가 나이 70에 죽어 나이 70에 묻혀야 할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오늘도 보물찾기에 흥미진진한 마음 설레는 삶을 사십니까? 사실 저에게 새벽 강론 쓰는 시간은 주님의 파스카 신비를 체험하는 시간이자 설레는 마음으로 보물을 찾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완성된 강론은 주님께서 선물하신 그날의 참 좋은 보물이 됩니다.
무엇이 참 보물인가 묻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보물의 종류도 많을 것입니다. 부모들에게는 착한 자식이 보물일수도 있고 연인이니 사이좋은 부부는 서로가 보물일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지금 몸담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매일 새롭게 발견해가는 보물이 됩니다. 공동체 형제들 하나하나가 영적 다면체多面體의 살아있는 보석寶石처럼 보입니다. 사람에 따라 우상이라 생각되는 돈이나 명예, 지위도 보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상같은 헛된 보물, 시간이 지나면 빛을 잃는 유한한 보물도 많을 것입니다. 때로는 선물들이 머지 않아 짐이 되는 것처럼 보물도 짐이 될 수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궁극의 영원한 참 보물이겠는지요. 바로 오늘 복음의 비유가 말해 줍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숨겨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말 그대로 우연이 아닌 뜻밖의 은총입니다. 예기치 못한 보물의 발견에 기뻐하며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보물밭을 산 사람입니다. 참으로 삶의 의미인 주님이란 보물을 찾아낸 사람입니다. 바로 우리 삶의 자리가 보물밭입니다. 여기 보물밭에서 주님을 깨달아 발견할 때 참 기쁨에 참 행복입니다. 한 두 번이 아니라 날마다 평생 주님을 찾아 발견하는 깨달음의 보물입니다. 이래서 삶은 깨달음의 여정이 되는 것입니다. 진주 상인의 비유도 대동소이합니다.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앞서와는 달리 끊임없는 열정과 갈망으로 보물을 찾다가 보물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진짜 참으로 사는 사람들은 영원한 참 보물인 주님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평생을 살았어도 이런 보물찾기 개념없이 그냥 사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어떤이들은 도중에 보물찾기를 포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평생을 살았어도 영원한 참 보물인 주님을 찾지 못한 무지하고 허무한 삶이었다면, 평생 헛 보물인 재물과 세상것들을 추구하다 마친 삶이었다면 얼마나 허망하고 억울하겠는지요! 후회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 만사 헛되다’ 라는 코헬렛의 탄식이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영원한 참 보물인 주님을 찾지 못해 세상 것들의 노예로 살다 보니 온갖 정신질환에 우울증입니다. 쓸쓸하고 외로운 광야인생, 삶의 무의미와 허무를 감당치 못해 갖가지 중독의 유혹에 빠지다 보니 폐인이 괴물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 영원한 참 보물인 주님을 발견하여 주님과 함께 사는 이들은 진정 자유롭고 행복한 부자들입니다. 주님의 향기를 발하는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들이요 나이에 관계없이 영원한 청춘의 영적 젊음을 삽니다. 바로 오늘 탈출기의 모세가 그 빛나는 모범입니다. 영원한 참 보물인 하느님을 만나 대화했기에 그 기쁨과 행복에 빛나는 얼굴입니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되었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므로,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들어갈 때 까지는, 자기 얼굴을 다시 너울로 가리곤 하였다.’
문득 예수님의 변모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밤마다 외딴곳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만난 예수님이셨기에 모세처럼 환히 빛났을 예수님의 얼굴이요 일상에서는 너울이 그분의 얼굴을 가렸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간혹 체험하는 바 성체성사후나, 고백성사후 형제자매들의 빛나는 얼굴들입니다. 그대로 영원한 참 보물인 주님을 만났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주님을 찾는 갈망에 눈만 열리면 어디나 보물밭이요 거기서 영원한 참 보물인 주님을 만납니다. 바로 내가 영원한 참 보물이 숨겨진 보물밭입니다. 보물을 여기 놔두고 밖에서 방황하며 찾는 이들은 참 어리석은 이들입니다. 바로 성무일도와 미사시간은 물론 일상의 모두에서 영원한 참 보물인 주님을 만나 영적 부자로 자유인으로 참 행복과 기쁨을 살 수 있습니다.
영원한 참 보물인 주님을 만났을 때 저절로 세상 것들로 부터의 이탈에 탈속의 고결한 삶, 영원한 삶, 하늘 나라의 삶입니다. 그 누구도 이런 이들을 유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발적 가난, 정결, 순종의 복음적 권고의 실천도 영원한 참 보물이신 주님을 만날 때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영원한 참 보물인 주님 앞에는 세상 모든 것들이 상대화되면서 빛을 잃어 시들해 버립니다.
도대체 영원한 참 보물인 주님과 늘 함께 하는 삶인데, 하느님 맛에 이미 세상맛을 잃어 버린 삶인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지요! 저절로 나오는 감사와 찬미의 고백입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모두이옵니다.
영원한 참 보물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 신비의 삶,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황송스럽게도 영원한 참 보물이신 주님과 하나됨으로 우리 또한 영원한 참 보물이 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오늘 지금 여기서 참 자유인으로 참 부요하고 참 행복한 하늘 나라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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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알타반의 말씀 사랑♡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와 하늘 나라의 만남을 보여 주십니다.
제1독서에서는 모세가 두 번째로 십계명 판을 들고 시나이 산에서 내려온 장면을 보여 줍니다.
"모세는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였다."(탈출 34,32)
모세는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 뜻의 전달자이고 중개자입니다. 그의 역할은 백성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이 하느님 백성답게 살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성조 때부터 하느님에게 선택되었으면서도 그분 소유의 하느님 백성이 되는 길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이스라엘에게 그 가치를 보여주고 증명하는 존재입니다.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들이 보니, 그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었다."(탈출 34,30)
하느님과 마주한 모세는 그 얼굴에 빛이 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시는 덕이나 영적 자질들이 대개 감추어져 있는 반면 모세 얼굴의 빛은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실제적입니다. 백성이 가까이 하기 두려울 정도로 물리적이면서도 초자연적인 빛입니다. 긴 광야 여정에서 모세를 오해하기도 하고 공격하기도 할 백성이지만 이 빛은 그들이 하느님을 감지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입니다.
복음은 하늘 나라와 우리 상호간의 극적인 발견과 소유 과정을 간결히 보여 줍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이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하늘 나라는 숨겨져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눈에 띄지 않지요. 모세가 빛나는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는 것도 보물이 함주로 노출되지 않고 감추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밭과 관련이 없는 이는 보물을 발견할 확률이 적고, 주인이라면 다시 밭을 살 필요가 없으니,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아마 밭 주변을 맴돌며 뭔가를 찾고 탐색하고 뒤지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보물만 몰래 챙겨서 떠나지 않고 제자리에 다시 숨겨둔 뒤 밭 전체를 삽니다. 그렇게 하려니 가진 재산을 다 팔 수 밖에 없지요. 하늘 나라는 딱 그것만 도려내듯 소유할 수 없고, 그것을 품고 있는 밭 전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비록 거칠고 메마른 박토여도 그래야 합니다.
아마 흥정할 때에 보물을 발견했다는 말은 빼고 밭에 매겨진 시세를 치렀을 겁니다. 어쩌면 보물에 대해 밭 임자에게 말을 했어도 결국 그 밭을 얻었을 것이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이기도 하지요. 그 보물이 누구에게나 보물이 아닐 수 있으니까요. 하늘 나라는 이를 간절하고 열렬히 추구하는 이에게나 전 재산과 맞바꿀 보물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마태 13,45)
밭에 묻힌 보물로 비유한 하늘 나라는 수동적입니다. 발견되길 기다리며 감추어져 있기에 존재적이고 신비적이지요. 그런데 두 번째 비유는 하늘 나라를 최상의 값진 진주를 찾는 상인에 비견합니다. 상인은 뚜렷한 목표의식 아래 부단히 찾아다니며 흥정하고 쟁취합니다. 여기서 하늘 나라는 매우 역동적이고 진취적이며 적극적입니다.
하늘 나라는 자신의 가치를 아는 이가 자기를 찾아주길 기다리며 인내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그를 찾아다닙니다. 또 하늘 나라를 추구하는 이도 부단한 노력으로 하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동시에, 그 자신이 하늘 나라에 의해 발견되고 지명되어 소유됩니다.
이 과정에는 과감한 배팅이 요구됩니다. 버림과 투신이 뒤따르지요. 하늘 나라를 발견한 이나, 그 가치를 아는 이를 발견한 하늘 나라나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다 버려야 보물을 쟁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는 세상 것을 다 움켜쥔 채로 곁들여 소유할 수 있는 악세사리가 아닙니다. 우리도 역시 그렇게 하늘 나라에 소유되었지요. 주님께서 큰 희생일 치르고 우리를 얻으셨으니까요.
그렇다면 하늘 나라와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물론 하늘 나라는 우리를 어렵지 않게 알아 봅니다. 그리고 기꺼이 값을 치러 우리를 소유하지요. 창조 때부터 우리를 선택하신 하느님께서 하늘 나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늘 나라를 알아 보고 그 가치를 추구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복음 환호송에 들어 있습니다.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으니,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부른다."(복음 환호송)
성자 예수님은 아버지와 우리 사이의 중개자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를 알아 보고 그분 뜻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신을 다 내놓아 아버지를 보여 주신 분이십니다.
아버지 역시 우리에 대한 성자의 보증과 대속으로 우리와 화해하십니다. 우리가 아드님의 친구니까요. 값진 진주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우리를 얻기 위해 하느님(하늘 나라)은 당신 자신을 죽음에 넘기시는 어마어마한 값을 치르셨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숨겨진 보물, 하늘 나라를 찾기 위해 각자에게 허락하신 삶의 여정과 지금 지나고 있는 광야를 주의깊게 살피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거칠고 황량한 박토까지 떠안아야 할지라도 그 깊이에 하늘 나라가 감추어져 있다면 모든 것을 걸 이유는 충분합니다. 하늘 나라를 찾고 있는 여러분, 또 하늘 나라에 의해 발견된 값진 진주인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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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시녀회 김연희 마리아 수녀님]
(5분 아침묵상)
https://www.youtube.com/watch?v=Vti93hLRQII&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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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마태 13, 45)
사랑을 찾듯이
하늘 나라를
찾게 된다.
찾는 자가
드디어
만나게 되는
하늘 나라의
신비이다.
좋은 진주를
찾으며
우리는
진주를
닮아간다.
이제부터
우리를
좋은 진주로
살게 하는
하늘 나라의
빛나는
복음이다.
우리가
누군지를
알게 한다.
우리에게는
좋은 진주가
있다.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은 확연히
달라진다.
사랑으로
삶을
완성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다.
하늘 나라는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진심으로
사랑하면
알게 되는
하늘 나라의
신비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바로
진주(眞珠)이다.
소중한 것을
사랑하기에도
짧은 시간이다.
사랑은
가장 소중한
관계에 우리가
집중하는 것이다.
집중이
사랑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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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2013. 10. 24
연희동성당 류상현 스테파노
■묵상글 나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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