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만일기도결사730일
[2023.1.11~20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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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 놀라운 우주universe는 어쩌다 생긴 부조리한 무엇일 수 없고, 악에 그 뿌리를 내린 것도 아니다. 비록 그 아름다움을 향한 지적知的 도약과 기울어짐이 어디까지나 내 신앙과 신뢰의 작품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없지만, 사실 이것은 그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99페센트가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모든 부모가 자식들한테 그러기를 바라듯이, 자유와 사랑의 하느님도 끊임없이 저 자신을 창조하는 물건을 창조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의 그 일에 협력하기를 원하시는 것 아닐까? 그분의 위대한 사업은 우리의 사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창조적인 의심creative doubt은 나로 하여금 언제 어디서나 '시작하는 마음'을 잃지 않게 해주거니와, 그것이야말로 계속 성장하게 하고 겸손하게 하며 행복한 경이驚異속에서 살게 해주는 놀라운 방법이다. 하지만 대부분 신자들한테는 바로 이 '조용한 내면의 놓아버림'이 오히려 많은 의심과 불안을 안겨주는 것 같다. 그들은 은밀히 그리고 겸손하게 당신의 일을 하면서 그 일의 과정과 결과에 우리를 동참시키는 하느님보다, 요술지팡이를 손에 든 친절한 하느님(땜장이 하느님)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진화'를 '신앙'의 문제로 보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나는 이렇게밖에는 이해 못하겠다. '큰 그림'속에서 살기 위하여 우리가 치러야 할 유일한 값은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속으로 품되 '일 자체'에 대하여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반대되는 것을 끌어안고 창조적 긴장 속에서 사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위쪽으로 떨어지다, 리처드 로어>
사랑이신 한님
어떤 일을 예정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갑자기 닥친 일을 진행하게 되었을 때,
그럴 때는 그만한 까닭이 있는 법이겠지요.
달라진 상황마저도 순조로와서 마치 이렇게 될 줄 안 것처럼 하루를 보냅니다.
집안에 묵은 먼지도 털고, 이불빨래도 하고, 상자속 사나이도 읽고, 이웃집에서 밥도 얻어 먹고, 바느질도 하고.
또 생각들도 왔다가 갑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 면면약존綿綿若存, 환대.
하릴없이 주어지는 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운 날입니다.
관세음보살
관옥나무보살
첫댓글 창조적인 의심creative doubt..바로 이 '조용한 내면의 놓아버림'..'큰 그림'속에서 살기 위하여 우리가 치러야 할 유일한 값은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속으로 품되 '일 자체'에 대하여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창조적 긴장 속에서 사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