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797호
너훈아의 죽음에 대한 고별사
강희안
모창 가수 너훈아가 죽은 건 나훈아의 슬픔이다 순천향대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그의 간암 투병 소식에 긴장을 한 건 나훈아였다 원본인 나훈아가 살아있다는 건 모창 가수 너훈아의 이름값이기 때문이다 그의 떠들썩한 죽음이 나훈아의 전도에 흠집을 낸 것일까 자신에게 한 번도 로얄티를 지불한 적 없는 너훈아, 이제 나훈아는 너의 죽음을 흉내내야 하는 처지다 자기를 키우던 소를 팔아 기획한 1집 앨범을 실패한 김갑순 씨, 너는 나를 복제하느라 자신의 길을 포기했다 30여 년 동안 나의 삶보다 너의 삶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향년 57세로 66세의 삶을 앞질러 간 유일한 이력이 그의 죽음을 새롭게 포장했던 것이다
- 『너트의 블랙홀』(포지션,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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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안 시인의 신작 시집이자 어쩌면 형의 마지막 실험시집이 될지도 모를 『너트의 블랙홀』에서 한 편 띄웁니다.
말을 비틀어서 비틀어진 세상의 모순을 보여주는, 말을 벗겨서 세상의 벗겨진 모습을 드러내보여주기도 하는, 형의 기나긴 실험이 마침내 집약된 시집이지요. 형의 실험에 꼭 가담해볼 것을(일독을) 은근슬쩍 권해봅니다.
「너훈아의 죽음에 대한 고별사」
우리나라 모창가수의 대표 주자였던 너훈아 씨.
신문의 한 귀퉁이에 실렸던 그의 죽음을 흐릇하게 기억합니다.
그 흐릿한 죽음을 강희안 시인은 어쩌자고 이렇게 대놓고 불러낸 것일까요?
가짜가 진짜를 대체하는 시대라고 일찌감치 서양의 어느 학자는 언명했습니다만,
복제품과 진품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라고 일찌기 서양의 어느 화가가 언명했습니다만,
짝퉁으로 경제를 일으켜세운 나라도 있습니다만,
글쎄요
"소를 팔아 기획한 1집 앨범을 실패한 김갑순 씨"
"나(훈아)를 복제하느라 자신의 길을 포기"해야 했던, "30여 년 동안 나의 삶보다 너의 삶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했던
김갑순 대신 너훈아라는 짝퉁으로 살아야 했던, 김갑순 씨를 생각하면, 글쎄요.
흐릿해진 어떤 삶과 죽음을 어쩌자고 시인은 다시 불러낸 것일까요?
아무래도 좀더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2021. 9. 6.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
달아실출판사: (24257) 강원도 춘천시 춘천로 257, 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