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 화백이 지난 14일 92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열린
‘더오리지널II’전(展)을 직접 찾아 출품작 ‘Écriture No. 23–77’(1977) 앞에 선 모습이다./ 아트조선
박서보 화백이 10월 14일 오전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작가는 지난 2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라며 작업을 향한 굳은 의지와 열의를 보인 그였기에 이번 비보가 더욱 갑작스럽고 황망하기 그지없다.
이렇다 저렇다 할 수식이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박서보는 이름 그 자체로 예술세계가 온전히 설명되는 미술가다. 대표작 ‘묘법(描法·Écriture)’ 시리즈를 통해 서양의 추상미술과 구분되는 단색화 고유의 특성과 개성을 국제 미술계에 소개하고 한국 미술이 해외무대의 중심에 안착할 수 있도록 선도한 주역이다.
세라믹 묘법 ‘Écriture No.220405’(2022)의 디테일./ 아트조선
그의 ‘묘법’은 말 그대로 ‘묘법(妙法)’과도 같다. 그의 연작 ‘컬러(후기) 묘법’은 불타오르는 단풍처럼, 때로는 수평선에 걸친 섬처럼 흡사 자연을 그대로 옮겨 화폭 위에 펼쳐놓은 것 같은 오묘하며 우미한 화면은 보는 이를 침잠의 심연으로 매혹한다. 이는 작가가 생전 강조해 온 ‘치유의 예술’ 개념과 그 궤를 같이하는데, 특정 메시지를 강요하는, 즉 토해내는 것이 아닌, 보는 이의 스트레스를 흡수하고 빨아들이는 이른바 ‘흡인지’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마치 자연이 그러한 것처럼.
자연은 작가의 최고 인기작인 ‘컬러 묘법’이 기인한 배경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색을 쓰기 시작했는데, 새빨갛게 불타는 단풍을 보고 탄복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빨간색이었다가도 다시 보면 보랏빛을 띠는 경관의 신비로움과 평온함을 화면으로 옮기고 싶었던 작가는 자연과의 합일이 오늘날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깨닫고 자연의 아량과 포용을 닮은 색을 구현해 현대인의 정서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치유의 도구로 활용하고자 했다.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 작가는 구순을 앞둔 몇 년 전, 자기 말마따나 다시 한 번 변화했다. 지팡이를 짚고 발을 끌면서도 연필 한 자루를 쥐고 홀로 이젤 앞에 서길 택했다. 그림이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지만 작가의 신체조건에 따라서도 변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지난 7월, 박서보는 연필로 화면 위를 거듭해 죽죽 긋고 있는 모습의 영상을 올리며 다음과 같은 글을 함께 남겼다. “몸이 너무 안 좋아 작업을 전혀 못 하는 날도 있다. 하루 3시간만이라도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이 나이에도 시행착오를 겪는다. 했던 작업을 물감으로 덮고 다시 그으며 차츰 길을 찾아가고 있다.” 92세의 나이에도 예술을 향한 박서보의 여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이름을 딴 ‘박서보미술관’이 내년 7월경 제주도 서귀포시에 문을 열 예정이다. 작가는 “미술관이 마음속 응어리진 것이 풀릴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자연에서 경험한 평온함을 자신의 화면에도 들여와 보는 이에게 안락함을 주고자 했던 박서보는 그토록 닮고 싶어 했던 자연으로 돌아갔다.
박서보 화백, 사진: 조선일보 이태경 기자.
박서보 화백, 올해 6월 9일 서울 연희동 기지재단에서 본지와 인터뷰한 박서보 화백.사진 : 조선일보 이태경기자.
✺ MMCA 박서보 작가와의 대화/ MMCA Artist Talk | Park Seobo
https://youtu.be/zOHjQSgFQ2E:
박서보(1931-2023년 10월 15일·향년 91세) 화백은 대한민국 최초의 앵포르멜 작품인 <회화(繪畵) No.1>(1957)을 그린 화가로 한국 단색화의 거장으로 일컬어진다. 경북 예천 출생, 홍익대학 문학부(미술과 학사) 졸업하였다. 본명 박재홍(朴在弘)이다. 경력은 홍익대학교 명예교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수상은 2021년 금관문화훈장, 2020년 제40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 공헌예술가상, 2019년 제64회 대한민국예술원상 미술부문, 2018년 아시아 아트 게임 체인저 어워드, 2014년 제12회 이동훈미술상 본상, 2011년 은관문화훈장, 1995년 제44회 서울시문화상 미술부문, 1994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주요 작품은 2019 미술작품Ecriture No.190227, 2016 미술작품Ecriture No.161207, 2009 미술작품Ecriture No.090530, 2007 미술작품Ecriture No.071208, 2000 미술작품Ecriture No.000321, 1987 미술작품Ecriture No.870907, 1978 미술작품Ecriture No.3-78, 1973 미술작품Ecriture No.55-73, 1962 미술작품Primordials No.1-62, 1957 회화(繪畵) No.1 등이 있다.
2022년 광주비엔날레에 박서보의 이름을 딴 예술상이 제정되었다가 "‘광주비엔날레의 국제적 위상’과 오월정신, 광주정신을 매판 하는 행위"라는 지역예술계의 비판을 받고 1회만에 폐지되었다. 당시 지역예술계에서는 "1960-70년대에 지금은 박제된 당시 한국의 모더니즘 미술의 상징적 대표로서, 1960년 4·19혁명에 문화권력의 기회를 엿보고 박정희 정부에 순응하며 기록화 사업에 활발히 가담했으며, 1970년대 유신정권 시절 관변미술계의 수장으로서 1980년대 민주화운동라 외면하고 개인의 출세와 권력 지향과 영달을 위해 살아왔을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박서보 화백의 마지막 개인전이 된 부산 조현화랑 전시 전경.
지난해 루이비통이 박서보 화백의 작품을 모티브로 선보인 ‘아티카퓌신 가방’./루이비통.
박서보 화백의 아티카퓌신이 들어있는 모노그램/ 루이 비통 부아뜨 샤포.
▼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 작품전에서.
▼ 박서보 화백의 작품 세계
박서보 화백의 묘법 'No.2-80-81'.
박서보, Ecriture(猫法).
박서보, 묘법 No.43-78-79-81, 1981, 면천에 유채, 흑연, 193.5×259.5cm.
박서보, 최초의 연필 묘법 작품인 ‘Ecriture No. 6-67′(1967).
박서보, 묘법(描法) No.180118, 2018년, 캔버스에 한지와 혼합 매체, 130×200㎝. 기지재단 제공.
◦전시명: PARK SEO BO
◦전시 장소: 조현화랑Johyun Gallery(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2동)
◦전시기간: 2023. 8. 31.(목)-12. 3.(일)
◦관람료: 무료
박서보 작가의 유작전이 연장되어 조현화랑 달맞이와 해운대점에서 8월 31일부터 12월 3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20년대를 기점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후기 연필 묘법을 국내 최초로 소개하는 뜻깊은 자리로, 총 12점의 후기 연필묘법이 공개된다. 또한, 올해 제작 및 발표된 디지털로 묘법을 재해석한 비디오 작품이 1000호에 달하는 연보라 묘법 대작과 더불어 몰입감 있는 관객 참여형 설치로 소개된다. 이외에도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세라믹 묘법 6점, 판화 작품 15점을 포함하여 총 35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생의 마지막 날까지 끊이지 않는 탐구와 실험 정신으로 묘법 시리즈를 지속해온 박서보 작가의 수행의 결과물을 목격하게 한다.
搰搰田家苦(골골전가고)
정신없이 농가의 일 수고롭다가
秋來得暫閑(추래득잠한)
가을 들어 잠시 잠깐 틈 얻고 보니
雁霜楓葉塢(안상풍엽오)
단풍 물든 언덕에는 기러기 날고
蛩雨菊花灣(공우국화만)
비 맞은 국화 둘레 귀뚜리 울며
牧笛穿煙去(목적천연거)
목동은 피리 불며 안개 속 가고
樵歌帶月還(초가대월한)
나무꾼은 노래하며 달빛 속 오네
莫辭收拾早(막사수습조)
일찍 주워 모으기를 사양 말게나
梨栗滿空山(이율만공산)
산 배 산 밤 텅 빈 산에 널렸을 테니
-김극기(金克己, 1150?~1209), 『동문선(東文選)』 제9권,
오언율시(五言律詩)」. <농가의 네 계절[田家四時] 4수 중 제3수 가을>
[출처 및 침고 자료: 조선일보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작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비가 내린 후 쌀쌀한
기온이 몸을 움츠리게 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 인간도 대나무처럼 속을 비우고 마음을 채워 가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대나무는 속을 비워 마디마디를 단단히 하여 바람에 흔들지언정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늘도 마음을 채워 가시고 가시는 발걸음 마다 일일청한 일일선 (一日淸閑 一日仙) 하루가 되시고 미소로 가득한 하루가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