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하루는 왜 이리 밋밋한가 / 자향
언제쯤 마음 놓고 한가한 날이 오려나,
젊어서는 하루가 참 짧았다.
해야 할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쫓기듯 살았다.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며 가족들 챙기느라 나 하나쯤은 늘 뒷전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한가한 시간이 찾아오고 보니
아침에 눈을 떠도 서둘러 나설 곳이 없고,
오늘 만나자고 오는 전화 한 통도 없다.
내가 이것저것 배우러 분주하게 나서기 전에는
물속처럼 조용한 시간의 연속일 뿐이다
맛있는 음식을 삼켜도 예전처럼 감탄할 일이 줄어들고,
새 옷을 가슴에 대어보아도 설레는 마음이 없다.
작은 선물 하나에도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들떴고,
누군가의 따뜻한 안부 한마디에 온 하루가 환해지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벅찬 일들이 하나둘 삶의 저편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사람이 싫어진 것도, 세상이 차가워진 것도 아니다.
그저 예전에는 저절로 곁에 와 머물던 작은 기쁨들이
이제는 까마득히 애써 찾아 나서야 할
손님처럼 아득해진다.
어디를 가도 그만이고, 무얼 먹어도 그만인 하루.
내일 역시 오늘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날들 앞에서
이 조용한 허전함을 누구에게 선뜻 털어놓기도 저어 된다.
이 나이에 무슨 욕심이 그리 많으냐 타박할까 봐,
자식들 탈 없이 잘 살고 내 몸 성하면 그저 감사한 줄 알아야 한다 할까 봐,
그저 나이 들면 다 그런 거라며 헛헛한 웃음으로 넘겨버린다.
그러나 감사한 마음과 허전한 마음은
한 가슴 안에서도 얼마든지 함께 짓물러갈 수 있는 법이다.
자식농사를 아무리 잘 지은사람도 문득 외로움은 뼈를 깎고,
몸에 큰 병이 없어도 마음은 시시로 시들어간다.
기댈 신앙이 있어도 삶의 의미가 아득해지는 날이 있고,
반갑게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와 텅 빈 방에 홀로 앉으면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밀물처럼 가슴을 채운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다.
노년의 외로움이란 단지 혼자 남겨진 시간이 많아지는 것만이 아님을 깊이 느낀다.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이 줄어들고,
내 작고 소소한 이야기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뜸해지며,
내일을 기대할 까닭이 하나씩 삭으러드는 것을 느끼며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노년의 가슴에 맺히는 가장 깊은 그늘일지도 모른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요즘 사는 일이 참 시시하고, 다가올 내일이 별로 기다려지지 않는다면
이 말 한마디만큼은 꼭 전하고 싶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남들은 다 무던하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것 같아도,
저마다 가슴 한구석에는 차마 꺼내놓지 못한
허전한 마음 하나씩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여전히 마음이 서운할 줄 알고,
누군가가 따사롭게 그리워지며,
따뜻한 말 한마디에 소스라치듯 가슴이 움직인다면
우리 안에는 아직 숨 쉬고 있는 고운 삶이 남아 있는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해는 기울고 하루가 저물어 간다.
특별한 일 하나 없이 무심히 지나간 날이라 하여 너무 서러워하지 말자.
누군가에게 먼저 다정히 말을 걸어도 좋고,
어깨가 가볍지 않다고 가만히 털어놓아도 좋다.
우리, 남은 날들만큼은 서로의 안부를 조금만 더 자주 물으며 살아가자.
"잘 지내느냐"는 그 흔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어쩌면 차가운 하루를 견디는 누군가에게는
오늘을 다독이고 내일을 살아낼 커다란 힘이 되어줄 테니까.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