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마을에 사람의 마음까지 그리는 화가가 있었다.
그는 얼굴을 똑같이 그리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눈가에 스치는 미세한 표정, 입술이 굳어지는 순간, 무심코 드러나는 눈빛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작은 흔적들에서 사람의 성격과 속마음을 읽어냈다.
그의 초상화는 신기할 만큼 정확했다. 사람들은 그림 속 인물을 보며 감탄했다.
"저 사람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욕심이 많군요."
혼인을 앞둔 집안에서는 상대의 초상화를 부탁했고, 사업하는 사람들은 동업자의
그림을 구해 보기도 했다. 화가의 그림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화가 자신도 자신의 눈을 믿었다. 사람의 마음은 얼굴에 드러나며,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자신의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인색하다고 그린 사람이 재산을 털어
가난한 이웃을 도왔다. 화가는 무슨 꿍꿍이가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정직하고 너그럽다고 그린 사람이 오랜 친구를 배신했다.
화가는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생각했다.
무뚝뚝해서 정이 없다고 그린 사람이 병든 이웃을 밤새 돌보았다.
그때도, 어쩌다 한 번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사람이 변했거나, 사정이 있었거나, 어쩌다 그랬을 뿐. 그림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그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판단이 뒤집히는 일도
있었다. 이유를 붙이는 것도 점점 궁색해졌다.
화가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본 것일까. 아니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알기 어려운 것일까.
그는 더욱 세심하게 관찰했다. 눈빛을 살피고 말투에 귀를 기울였다.
작은 몸짓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림을 그린 뒤에도 그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분명히 확신했다.
그러나 그 판단이 시간이 지나면 무너졌다.
더 자세히 관찰할수록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화가는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오래전에 그린 초상화들을 꺼내 한 장씩 살펴보았다. 그림마다 자신이 내린 판단이
담겨 있었다. 탐욕스러운 얼굴, 선량한 얼굴, 교활한 얼굴, 진실한 얼굴.
그런데 실제 인물들의 삶은 그림 속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들은 화가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했고, 때로는 자신이 그려놓은 성격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화가는 그림을 고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자신의 눈이 틀렸다면, 지금까지 자산은 무엇을 그렸단 말인가?
마침내 화가는 붓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사람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갔다.
깊은 산의 작은 암자에 머물며 그는 날마다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지나간 일들을 되짚으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으려 했다.
그렇게 십여년이 흘렀다.
어느 날, 산길을 지나던 고승이 암자 앞 그루터기에 앉아 있는 화가에게 물었다.
"무얼 그리 골똘히 생각하시오?" 화가는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 그림을 그렸지만, 나중에 보면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았다는 이야기였다.
고승은 화가의 말을 듣고 물었다.
"그대는 사람의 마음을 그렸다고 했소?" "그렇습니다."
고승은 잠시 화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그대가 그린 것은 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오. 그대가 살아오며 겪어온 경험과 생각에
사로잡혀 만들어낸 환상일 수도 있소."
화가는 입을 다물었다.
고승은 더 묻지 않았다. 지팡이를 짚고 산길을 내려갔다.
화가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오랫동안 내려놓았던 붓을 다시 들었다.
<오늘의 연주곡> Handel - Halvorsen - Passacaglia
Handel - Halvorsen - Passacaglia는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g단조(HWV 432)에 나오는 파사칼리아를 바탕으로,
노르웨이 작곡가 Halvorsen이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해 화려한 변주곡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깊은 울림과 눈부신 기교가 어우러져 실내악의 명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섬세함과 폭발적인 에너지가 교차하며
빚어내는 강렬한 선율이 이 곡의 큰 매력이다. https://youtu.be/pK4IVvROgOU
첫댓글 사람의 마음을
어찌 사람이 알수가 있을까나요
겉모습은 그려낼수 있겄지만~~
내 생각이 다 옳을수는 없쥬
상대의 입장에서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남은 여생 그리 살아가야징~~ㅎ
의미있는 동화
감사합니당~~♡
맞는 말씀입니다.
오만과 편견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별꿈님.
"눈가에 스치는 미세한 표정, 입술이 굳어지는 순간,
무심코 드러나는 눈빛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작은 흔적들에서 사람의 성격과 속마음을 읽어냈다."
사실 이걸 잘 그려야 초상화를 잘 그린 것이지요.
"그대가 그린 것은 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오. 그대가 살아오며 겪어온 경험과 생각에
사로잡혀 만들어낸 환상일 수도 있소."
글 참 잘 쓰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부묘사를 잘하니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마음까지 그리겠다고 욕심을 내서 문제가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니방장님.
네가나를 모르는데
난들너를 알겠느냐,
노랫말이 철학적이지요.
내속엔 내가 너무도많아
나조차 헷갈리는데
뉘라서 나를 안다하리요.
김국환 / 타타타
https://youtu.be/EzfXNRuRnxs?si=_NClc7x7g2BilzHR.
PLAY
나도 나를 다 모르고 사는데,
남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생각하게 하는 노래입니다.
잘들었습니다. 지는혜님.
마음에 닿는글 읽고 , 또 읽고 .
좋은 글 고맙습니다. 건강 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추소리님.
평안한 하루 되세요...
어른이 읽는 동화. 참 잘 썼어요
감사합니다. 푸른비3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화가를 통하여 인간의 심리를 파악한 글
멋지게 대비를 해주셨어요
고승의 말 한마디
"그대가 살아오며 겪어온 경험과 생각에 사로잡혀 만들어낸 환상일 수도 있소."
나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같은 말입니다
나의 경험과 생각으로
참으로 많은 편견과 오만과 착각과 환상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비교하며 판단하고 있는지~~~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땡큐!
말씀대로 경험은 지혜가 되기도 하지만
편견이 되기도 합니다.
오랜만입니다. 캔디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