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 주신글]
막걸리 예찬(禮讚)
막 걸러낸 막 술이라 막걸리
아버지와 막걸리
아버지는 주당이셨다. 술 한 말을 지고는 못 가도 마시고는 간다는 분이다. 그래서 주조장에선 언제나 막걸리 한 양푼 정도는 공짜다.
아버지는 읍내 주조장에서 막걸리를 드시고 단숨에 시오리 길을 달려,
집이 보이는 저수지 앞에서 쓰러져 주무시곤 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저 화상! 속 태우려고 꼭 집이 보이는데 와서 쓰려져 잔다.
속 터진다! 터져!" 하시고 악다구니를 쓰셨다.
풍채 좋으신 아버지를 동네 청년들이 모시고 와서 사랑방에 옮겨 놓으면 어머니는 북어를 화풀이로 두드리며 원정을 하셔도 꼭 술국을 끓여주셨다.
어머니는 부지런히 달려와 꼭 그 자리에 와서 취하는 아버지를 아셨을까? 막걸리를 보면 새삼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우보 임인규 시인)
마을 주막에서
꾸겨진 배춧잎 한 장
내 놓으니
막걸리 큰 대접에
두부찌개 한 냄비
쭈그렁 노인 셋이
사이좋게 나누어 마시고
모두들 블그족족한
얼굴로 한마디
큰 대접 받았네 그려!
누룩과 찹쌀이 만나면 술이 된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찹쌀을 씻은 뒤에 밤새 불린다. 솥에 솔잎을 깔고 찹쌀과 대추를 섞은 항아리에 불을 지핀다.
김이 올라오면 물을 뿌려가며 찹쌀을 위아래로 뒤섞어주고 뚜껑을 덮는다. 어느 정도 익으면 섞기를 반복해서 고슬고슬한 고두밥을 만든다.
대추는 은은한 맛과 고고한 붉은 빛을 낸다. 솔잎은 잡균을 없애고 솔향을 입힌다.
초여름에 수확한 밀을 거칠게 빻아, 체에 내리면 고운 가루가 걸러지는데 이를 따로 모아 국수를 뽑는다. 그리고 남은 거친 가루는 반죽해서 누룩을 빚는다.
바닥에 솔잎을 깔고 그 위에 둥글게 빚은 누룩을 올린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문밖까지 구수한 누룩 냄새가 난다.
‘아가, 누룩 뒤집어라.’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그때는 왜 그렇게 싫었는지?
‘뽀글뽀글’ 술 익는 소리
누룩을 잘게 빻아 찹쌀 고두밥과 섞어, 바닥에 솔잎을 깐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으면 끝이다. 이제부터는 누룩이 할 일만 남았다.
사흘쯤 지나면 항아리에서 술 익는 소리가 난다. 어느 순간 잠잠해지면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일주일쯤 지나면 항아리를 열고 용두를 박는다. 위쪽의 맑은 청주가 중앙 용두에 모인다. 청주는 어른 차지다. 숙성된 술은 향긋하고 달콤하다.
악마가 바쁘다며 대리로 보내는 것이 술이다. 탈무드에서
집 방석 내지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 불 밝히지 마라.
어제 진 달
돌아온다.
아이야
박주에 산채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한 석 봉
막걸리는 세계적인 명주
이낙연 총리는 공관으로 초대한 사람들에게 각자의 고향에서 만든 막걸리를 대접한 것으로 유명하다.
취임 이후 전국 95종 6천500여병의 막걸리가 만찬에 올라왔다. 그리고 외국 순방길에도 어김없이 막걸리와 동행을 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몽골 총리가 환영만찬에서 이 총리 고향, 전남 영광의 대마할머니 막걸리로 건배하여 화제가 되었다.
지금이야 마음대로 술을 담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명절이 가까워오면 어김없이 지서에서 조사를 나왔다. 동네에 비상이 걸리고 술독을 숨기느라 난리가 났는데.
순사는 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촌로를 붙들고 말을 건다. 요즘 뉘 집에서 일꾼을 많이 쓰냐고? 그리고 돌아간다.
집집마다 막걸리 독을 숨기는 것을 앞산에 올라 유심히 보고 천천히 마을로 들어간다. 그래서 순사는 귀신이라는 말을 듣는다.
막걸리의 다섯 가지 미덕
허기를 다스리고,
갈증을 해소하고
추위를 덜어주고,
힘이 나게 하고,
말을 많이 하게 한다.
막걸리가 은근하게 당기는 날이 있다. 비 오는 날에는 막걸리에 파전이 어울린다.
막걸리는 한번 사귀면 은근하게 정이 가는 친구와 같다.
채만식(蔡萬植) (不可飮酒 斷然不可)
큼직한 사발에다 넘실넘실하게 가득 부은 놈을 처억 들이대고 벌컥 벌컥 한입에 쭈욱 다 마셔버리고.
진흙 묻은 손바닥으로 쓰윽 입을 씻고 나서 풋 마늘대를 보리고추장에 꾹 찍어 입가심을 한다.
그러면 등에 착 달라붙은 배가 불끈 솟아오르고 기운이 난다.
천상병(千祥炳)
천상병은 유난히 좋아했던 막걸리를 밥이며,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느님의 은총(恩寵)이라고 했다.
나는 술을 좋아하는데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를 아침에 한 병(한 되) 사오면 한 홉 짜리로 석 잔이 나온다. 그걸 생각날 때만 마시니 하루 종일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마시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것도 싫어한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
음식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막걸리뿐이다. 내 어찌 한 가지 즐거움인데 마다하랴?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도 그런 것이 아니다.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에 있는데.
이규태(李圭泰)
취하되 인사불성(人事不省)까지는 가지 않고,
배가 고프거나 힘이 없을 때는 요기가 되고
기운을 북돋워주며.
시련이 찾아와도 막걸리를 마시면
넌지시 웃을 수 있고,
함께 마시면 응어리가 풀린다.
1.한 잔 마시면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2.두 잔 마시면 得道 (득도)를 하고
3.석 잔 마시면 神仙 (신선)이 되고
4.넉 잔 마시면 鶴(학)이 되고
5.다섯 잔 마시면 염라대왕도 무섭지 않다.
정인지(鄭麟趾)는, 젖과 막걸리는 생김새가 같아 아기들이 젖으로 생명을 키워 나가듯 막걸리는 노인의 젖줄이라고 했다.
좋은 약주와 소주가 있는데 막걸리만 좋아하십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아들에게 소 쓸개 세 개를 구해 오라고 했다.
첮째 쓸개 주머니에는 소주를
둘째 쓸개 주머니에는 약주를
셋째 쓸개 주머니에는 막걸리를
가득 채우고 처마 밑에 매어 두었는데 며칠 후에 열어보니
소주 담은 주머니는 구멍이 송송 나있고
약주 담은 주머니는 얇아져 있는데
막걸리 담은 주머니는 오히려 이전보다 두꺼워져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것이 어디 있느냐? 닭이 물을 먹듯 조금씩 천천히 마셔야 하느니라.
막걸리 병 뚜겅이 파란 것은 15%나 싸다. 그래도 상인들은 같은 값에 판다. 목마른 자가 샘을 판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걸 안 마시고 배길 거냐?
허주의 아침산책 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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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탁 ‘막걸리 한잔’♭ 모두 막걸리 열풍! 일.동.원.샷 [내일은 미스터트롯] 4회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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