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장미님의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읽으면서, 그렇지 않아도 갖고 있던 동유럽-특히 발칸 지역-의 역사를 새삼 다시 찾아보는 중입니다. 지금은 김철민 교수님의 '발칸유럽 민족 문제의 이해'에 대해 읽고 있지요. 다만 마법의활님께서 '동서로마의 분열'과 현대의 민족지도는 별개의 것이라는 지적을 하셨는데, 한 편으로는 공감이 가면서도 한 편으로는 좀 아리송한 구석이 있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현대의 유럽 종교 지도와 동서로마 분열 당시의 지도를 비교해보면 '서로마 관할' 구역 가운데 보스니아와 몬테네그로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이 가톨릭이 주 종교이고 나머지 지역은 정교회와 이슬람을 주로 믿습니다. '서로마 관할' 구역 가운데 스르프스카 지역과 몬테네그로는 정교회, 스르프스카를 제외한 보스니아 지역은 이슬람이죠(잉글랜드도 성공회로 독립해나갔지만.. 이건 빼겠습니다). 왜 이러한 결과가 벌어진걸까요? 정치적 지도 가르기와 따로 영향을 갖고 있었던 종교적 교구 지도 때문인지, 아니면 우연히도 합스부르크와 오스만의 세력권 충돌 경계선이 동서로마의 분열 당시 경계선과 일치했던 이유인지(동서로마의 분열이 현대적 관념으로 국경 딱 갈라 나누고 바이바이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로마인들은 4국 분열도 겪어봤으니 당시에는 '분단'이 아니라 편의에 의한 '분열'이었을테고, 저 경계 역시 계속 오락가락했으니까요), 아니면 다른 까닭이 있는지가 제가 궁금한 부분입니다.
실제로 마법의활님께서 지적하신대로 '50년 전의 통설'이라는 것은 50년 전에는 저 두 가지를 연결지어 설명하고 있었다는 뜻이고, 현대의 종교 지도와 1700년 전의 지도가 비슷한 경계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상상력을 자극하기 좋은 요소죠. '슬라브'라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고 언어와 풍습도 비슷한 이들이 '종교'와 '역사'와 '언어'의 차이에 의해 다른 민족으로 분열되는 과정은 푸른 장미님의 글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읽고 잘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저 연상하기 딱 좋은 경계선을 따라 나뉘었을까요?
첫댓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를 정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바다, 강, 산맥 같은 자연적 경계입니다. 발칸 지역에는 디나르알프스, 샤르 산맥과 북알바니아 알프스(프로클레티예), 발칸 산맥과 카르파티아 산맥이 있고 도나우 강과 티소 강, 사바 강, 모라바 강이 흘러 이것이 천연적인 경계를 이룹니다. 즉 동서로마의 분열과 합스부르크,오스만의 경계도 이러한 자연적 경계를 따랐기 때문에 일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네.. 기본적으로 그렇긴한데, 발칸처럼 산이 많아 '국가'라는 대규모 사회 집단이 들어서기 힘든 곳에서는 양상이 좀 애매하더라구요. 스테판 두샨이나 뻬타르 크레시미르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출현하는 경우가 아니면 도시 단위 마을 단위로 따로 노는 경향이 크더라구요. 그리고 자연 경계가 단 하나도 아니고 종으로 강이 놓이고 횡으로 산맥이 달리지 않습니까? 비잔티움 제국이 여러차례 서쪽으로 진출을 시도한 예라든가, 베네치아의 크로아티아 해안 점유, 오스만 제국의 국경이 지속적으로 북상하던 사례 등을 비추어보면 동서로마의 분열이나 두 경계의 일치가 단순한 우연인 것 같기도 하구요.
혹시 라틴-게르만의 영향을 받는 서유럽권과 그리스의 영향을 받는 동유럽권의 경계선이 저 쯤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비잔티움제국의 세가 강성할때는 슬로베니아나 크로아티아 모두 정교회를 믿었고, 반대로 베네치아나 오스트리아가 강성할때는 가톨릭 지배자가 발칸을 지배했으니 양 문화권의 힘이 균형을 이루는 곳이 저 라인이 아니었을까.. 동서로마를 분리할때도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보급을 받는 쉽게 받을 수 있는 경계를 따라 전선을 나누었을테니 실제 거주민 생활/문화와는 무관하게 지배자의 편의에 따라 나뉘는 사례가 많지 않았을까.. 뭐 초보적인 지식으로는 이 정도 의문이 한계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