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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전시명 :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ㅇ 전시기간 : 2023. 10. 31.(화) ~ 2024. 3. 17.(일)
ㅇ 전시장소 : 대구미술관 1전시실
ㅇ 참여작가 : 렘브란트 판 레인(1606~1669)
ㅇ 전시구성 : 동판화 120점
대구미술관은 2023년 해외교류전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를 개최한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서양미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히는 거장이며, 미술사가들로부터 ‘렘브란트 이후 판화의 역사가 다시 쓰였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판화, 특히 동판화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독보적인 판화가였다.
이번 전시는 대구미술관과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순회재단(Stichting Rembrandt op Reis), 벨기에의 판화전문 미술관 뮤지엄드리드(Museum de Reede)가 협력해 렘브란트의 동판화 120여 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로, 자화상과 초상화로 대표되는 유화 뿐만 아니라 에칭과 드라이포인트 기법을 활용한 판화를 평생 300여 점 남긴 렘브란트의 판화가로서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이 발명되기 2세기 전 마치 카메라의 렌즈와도 같은 시선으로 17세기의 세상과 당시의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작품에 담아 낸 렘브란트의 시선에 주목한다. 전시는 렘브란트의 동판화 120점을 자화상/ 거리의 사람들/ 성경 속 이야기/ 장면들/ 풍경/ 습작(Sheets of Studies & Albums)/ 인물·초상(Faces & Portraits) 등 7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소개한다.
대구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렘브란트의 삶과 예술을 조망하고, 그 빛과 어두움, 무엇보다 그의 ‘세상을 향한 시선’을 함께 나눠 보고자 한다. 이 전시가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세상과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던 위대한 화가의 시선을 따라가 보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63세 때의 자화상’, 1669년, 캔버스에 유화, 86×70cm.
"꿈을 포기하는 젊은이는 생명이 없는 시신과 같으니 살아가지 않느니만 못하다."
ㅡ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34세의 자화상’, 런던 내셔널 갤러리.
◆ 빛과 어둠의 마술사 렘브란트(Rembrandt)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는 네덜란드 예술의 황금시대를 열었으며 서양 미술사상 17세기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힌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주요 작품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베드로(Peter Denying Christ)'와 '루크레티아(Lucretia)'.'야경(Nightwatch)'.'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The Anatomy Lesson of Dr. Nicolaes Tulp)'.'플로라처럼 분장한 사스키아(Saskia as Flora)' 등 유화와 소묘, 금속판에 금속 바늘 등으로 그림을 그리고 산 용액을 이용하여 부식 시킨 뒤 잉크를 바르고 찍어내는 에칭(Etching) 등 다양한 분야에 통달한 미술사의 거장으로 수많은 초상화와 자화상은 인간의 성격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며, 소묘는 당시 암스테르담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뛰어난 판화 기법을 터득한 그의 에칭화는 생전에도 고가에 팔릴 정도였고, 후대 판화가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렘브란트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국민화가다. 하지만 화려한 명성과 달리 그의 말년은 초라했다. 렘브란트의 굴곡진 인생은 그가 남긴 자화상과 그의 다른 그림에도 잘 드러난다.
렘브란트는 특히 초상화에 인물의 개성과 심리를 담아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재능을 '자화상'에서도 발휘했다. 22세 때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은 독일의 시인․소설가․극작가인 괴테(Goethe, Johann Wolfgang von, 1749-1832)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이로 인해 탄생한 작품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이다. 괴테는 이 작품 속에서 젊은 날 꿈을 접고 우울과 방황의 날을 보내던 자신을 떠올리며, “꿈이 없는 청춘은 시체나 다름없으니 살아가지 않느니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렘브란트의 그림은 강렬한 명암 대비가 특징으로,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대비시켜 입체감을 드러내 그림에 극적인 효과를 주었다. 이를 키아로스쿠로라고 하는데, 16세기 이탈리아의 천재 화가 카라바조가 창안한 것이다. 또한 렘브란트는 독일 화가 아담 엘스하이머의 명암법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
렘브란트는 유화뿐만 아니라 에칭과 드라이포인트 기법을 이용한 판화도 많이 제작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판화를 독학으로 연구할 만큼 판화에 특별한 애정을 기울였다고 한다. 화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어머니를 모델로 제작한 '늙은 여인의 흉상', '늙은 여인의 얼굴'과 암스테르담 시절에 제작한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빌라도 앞에 선 그리스도'는 이 위대한 화가가 판화에 있어서도 특출난 재능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또한 초상화가로서 자신의 자화상을 평생 그렸던 그답게 사스키아와 자신의 모습을 그린 동판화도 남겼다.
1630년대에 렘브란트는 성서를 주제로 한 에칭을 여러 점 제작했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빌라도 앞에 선 그리스도', '목동들에게 예수 탄생을 알리다' 등이다. 그는 에칭에 있어서도 빛과 어둠의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여 표현했다. 가령 윤곽선을 진하게 그리는 경우에는 색조를 연하게 사용하거나 아예 윤곽선을 지우고 형태와 광휘를 드러내도록 색채를 사용하여 어둠 속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효과를 주었다.
렘브란트만큼 자화상에 매료되어 있던 화가도 없다. 그는 청년 시절부터 꾸준히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으며, 말년에는 더욱 많은 자화상을 그렸다. 그는 자신을 때로는 화가로, 때로는 신사로, 때로는 이야기 속의 인물로 표현했다. 예컨대 '웃고 있는 제욱시스'는 고대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가 죽어 가는 와중에도 늙고 주름진 노파를 그리면서 웃음을 참았다는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따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자화상을 위한 거울 장치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자화상을 위한 거울 장치: 17세기 발간된 서적에 실린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원리는 이렇다. 현대 카메라의 프로토타입, 시초격인 물건. 안쪽을 어둡게 만든 상자나 방 한켠에 작은 구멍을 뚫어놓고 바깥에서 어두운 쪽으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상을 맺히게 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서 카메라의 근본 원리를 생각하면 될 것이며 그 때문에 상이 거꾸로 굴절되어 보이는 특성을 지닌다. 초등교육을 마친 사람이라면 어린 시절 '바늘구멍 사진기'라는 물건을 다룬 기억이 있을 것인데 이것 역시 카메라 옵스큐라의 일종이다.
라틴어로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이라는 뜻이다. 어두운 방의 벽에 작은 구멍을 뚫으면 반대쪽 벽에 외부의 풍경이 비치는 것을 토대로 카메라 옵스큐라, 나아가서 사진기가 발명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렘브란트 자화상’.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웃고 있는 제욱시스’, 1668년. 쾰른 발라프-리하르츠 박물관.
1 렘브란트 판 레인, ‘부드러운 모자를 쓴 자화상’, 1634년, 에칭(Etching), 4.9×4.4㎝.
17세기를 통틀어 렘브란트만큼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는 없을 것이다. 그의 자화상 작품들은 젊은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나이들어갔는지를 짐작케 한다. 렘브란트 시대에는 자화상이 다양한 예술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화가에게 자신의 얼굴은 가장 손쉬운 연습용 모델일 것이다. 렘브란트는 레이던에 머물던 시절, 주로 자신을 모델로 작업을 했다. 거울을 보며 행복, 분노, 공포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판화에 옮겨 넣었다. 이러한 훈련은 그가 훌륭한 스토리텔러로 발전하는데 자양분이 되었다. 자화상 판화는 명함의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구매자에게 직접 그린 본인의 모습을 명함처럼 제공하는 것은 두 배로 흥미로운 일이었다.
2 렘브란트 판 레인, ‘돌난간에 기대어 있는 자화상’,
1639, 에칭, 드라이포인트(Etching and drypoint), 20.5×16.4㎝.
렘브란트가 서른세 살 때의 자화상이다. 암스테르담의 브리스트라트에 새 집을 구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의 모습으로, 벨벳모자에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난간에 팔을 올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다. 거장 라파엘로와 티치아노의 유명한 초상화를 참고한 이 포즈는 무척이나 자신만만하게 보인다. 이 작품은 렘브란트가 에칭으로 제작한 자화상들 중 가장 잘 알려지고 인기 있는 작품이자, 많은 화가들이 모사한 작품이다. 일 년 뒤 렘브란트는 이 자화상을 유화로 다시 그렸다.
3 렘브란트 판 레인,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 1636년, 에칭(Etching), 10.4×9.5㎝.
챙이 달린 16세기 스타일의 베레모를 쓴 렘브란트의 곁에 2년 전 결혼한 아내 사스키아가 앉아 있다. 렘브란트는 이 작품에서 자신을 드로잉 중이거나 혹은 에칭 작업 중인 화가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부부가 함께 등장하는 유일한 판화로, 가장 유명한 자화상 가운데 하나다.
4 렘브란트 판 레인, ‘모자를 쓰고 웃는 자화상’, 1630년, 에칭(Etching), 4.8×4.3㎝.
화가에게 웃음은 아마도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일 것이다. 1630년경 렘브란트는 여러가지 감정을 보여주는 작은 자화상 동판화를 다수 제작했는데, 그는 이 자화상들을 나중에 성서나 역사의 장면을 그릴 때 인물들의 표정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사용했을 것이다.
5 렘브란트 판 레인, ‘소리치는 듯 입을 벌린 자화상’, 1630년, 에칭(Etching) , 7.3×6.2㎝.
1630년경 제작한 작은 자화상 판화 중 하나로, 훗날 그린 성서와 역사의 장면을 묘사하기 위한 연습으로 여러가지 얼굴 표정을 실험해 본 것 같다. 다른 작품에서는 놀라거나 웃는 얼굴이 많이 등장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그는 헝크러진 머리와 찌푸린 미간으로 소리를 지르는 듯한 모습으로, 마치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6 렘브란트 판 레인, ‘떠돌이 농부 가족’, 1652년, 에칭(Etching), 11.3×9.3㎝.
렘브란트는 이른 시기부터 일상의 장면들에 매료되었다. 그는 이미 레이던에서 행인, 거지, 거리의 악사 등 거리의 사람들을 판화의 소재로 삼고 있었다. 유명한 프랑스 판화가 자크 칼로(Jacques Callot, 1592~1635)가 거지를 소재로 제작한 판화 작품들이 당시 널리 유통되었고, 렘브란트가 그로부터도 영감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시선은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있었고, 판화 작품에도 공을 들여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작품에 반영하는 것은 렘브란트 화법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는 이상화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세상을 작품에 담아내었다.
7 브란트 판 레인, ‘눈먼 바이올린 연주자(The Blind Fiddler)’, 1631년, 에칭, 뷰린(Etching and burin), 7.8×5.3㎝.
바이올린을 든 거지의 모습이다. 연주자에게 끈으로 묶여 있는 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눈먼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630년경 렘브란트는 거지와 거리의 인물들을 소재로 여러 점의 판화를 제작했는데, 이 시리즈의 후기 작품 가운데는 배경에 여인과 같은 인물들이 추가되어 보다 정교한 구성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있다.
8 렘브란트 판 레인, '엄청 춥군'하고 외치는 농부' 이 정도야 뭘'하고 대답하는 농부(날씨 이야기를 하는 두 농부) A Peasant, Calling Out: 'Tis Vinnich Kout A Peasant, Replying: 'Dats Niet (Two Weather Peasants), 1634년, 에칭(Etching), 11.2×4.3㎝·11.2×3.9㎝.
렘브란트의 독특한 판화 작품이다. 한 쌍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렘브란트가 텍스트를 추가한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 명이 “엄청 춥군.” 이라 말하고, 다른 한쪽은 “이 정도야 뭘.“ 하고 대답하고 있다. 배경에 긴 막대기를 들고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계절은 한겨울인 것 같다. 이 작품은 16세기 독일 판화가 한스 제발트 베함(Hans Sebald Beham)의 목판화를 참고로 한 것으로 보인다.
9 렘브란트 판 레인, ‘높은 모자를 쓰고 지팡이에 기댄 거지
(Beggar in a High Cap, Standing and Leaning on a Stick)’, 1639년, 에칭(Etching), 8.3×4.5㎝.
거지를 소재로 한 자크 칼로의 판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한 작품이다. 렘브란트는 칼로를 존경했고, 그의 판화를 여러 점 소장하고 있었다. 그림자를 나타내는 긴 평행선들은 칼로의 작품에 늘 등장하는 요소다. 거지를 소재로 한 렘브란트의 판화 중 가장 큰 작품이다.
10 렘브란트 판 레인, ‘병자를 고치는 예수(Jésus-Christ guérissant les malades)’, 1648년, 에칭,
드라이포인트, 뷰린(Etching, drypoint and burin), 27.8×38.8㎝.
성경 속 장면들은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예술가는 풍경, 정물, 인물과 동물, 텍스처 등 모든 분야에 능숙해야 했고, 또한 글을 읽고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하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렘브란트는 그림을 그리기 전, 미리 상상하는 데 매우 능숙했다. 이야기의 특정 시점에서 주인공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과 동물과 같은 조역들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성경 속 이야기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를 잘 알고 있었지만, 아담과 하와를 이상적인 젊은이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등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통해 표현했다.
11 렘브란트 판 레인, ‘아담과 하와(Adam and Eve)’, 1638년, 에칭(Etching), 16.2×11.6㎝.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잘 알려진 창세기의 이야기를 묘사한 작품이다. 아담의 손은 선악과를 먹으려고 손을 뻗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와에게 먹지 말라 경고하는 것 같기도 하다. 두 사람은 대개의 예술 작품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담과 하와의 모습이 아니라 매우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심지어 약간 늙고 주름진 모습이다. 나무 위의 뱀은 뒤러의 판화에서처럼 발톱이 달린 용으로 표현되었다.
12 렘브란트 판 레인, ‘아브라함의 희생(Sacrifice of Abraham)’,
1655년, 에칭, 드라이포인트(Etching and drypoint), 15.6×13.1㎝.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는 순간, 그의 팔을 천사가 붙잡아 막고 있는 극적인 장면이다. 화면 오른쪽 어둠 속에 하인과 당나귀가 기다리고 있고, 멀리 두 사람이 길을 가고 있다.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스승인 피터 라스트만(Pieter Lastman)이 1635년에 같은 주제로 그린 유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함께 전시되는 렘브란트의 제자이자 조수 페르디난드 볼(Ferdinand Bol)의 작품 역시 같은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제라드 도우(Gerard Dou)의 작품은 스승인 렘브란트의 작품을 따랐다.
13 렘브란트 판 레인, ‘모르도카이의 승리(The Triumph of Mordecai)’,
1641년, 에칭, 드라이포인트(Etching and drypoint), 17.4×21.5㎝.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는 고문인 하만에게 임금이 치하할 만한 사람에게 무엇을 베풀면 좋을지를 물었다. 하만은 자신에게 상을 주려 한다 생각하고, 그 사람에게 왕의 옷을 입히고 말에 태워 광장에서 개선 행진을 하게 할 것을 왕에게 제안한다. 그러나 왕이 염두에 둔 사람은 유대인 모르도카이였다. 이 작품에서는 모르도카이를 미워하는 하만이 마지못해 자신이 왕에게 제안했던 일을 수행하는 모습과, 왕과 그의 아내 에스테르가 발코니에서 이를 지켜보면서 즐거워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4 렘브란트 판 레인, ‘이집트로의 피신(The Flight into Egypt)’, 1653년, 에칭, 드라이포인트,
뷰린(Etching, drypoint and burin), 21.2×28.4㎝.
이집트로의 피신은 렘브란트가 좋아하는 주제 중 하나였으며, 여러 차례 다룬 소재다. 렘브란트의 판화 중 무척 독특한 작품으로, 그가 존경하던 작가 헤르쿨레스 세헤르스(Hercules Seghers)의 판화 〈토비야와 천사〉의 동판을 재사용했다. 렘브란트는 동판의 오른쪽 토비야와 천사 부분을 갈아내고 그 자리를 마리아와 요셉, 나무로 채웠다. 작품의 오른쪽 윗부분에 세헤르스 원판의 천사 날개 일부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세헤르스의 판화는 함께 전시하고 있는 네덜란드 화가 헨드릭 호우트(Hendrick Goudt)의 작품을 따른 것인데, 렘브란트 역시 호우트의 영향을 받았다.
15 렘브란트 판 레인, ‘착한 사마리아인(The Good Samaritan)’,
1633년, 에칭, 뷰린(Etching and burin), 25.7×20.8㎝.
어떤 사람이 길에서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채 길가에 버려졌다. 길을 가던 사제와 레위인은 그를 돕지 않고 지나쳤지만 그를 불쌍히 여긴 사마리아인이 그를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주었다. 렘브란트는 사마리아인이 여관에 도착하는 성경 속 장면을 묘사하면서 배변하는 개를 그려 넣어 놀라운 현실감과 디테일을 더했다. 네덜란드 작가 얀 반 데 벨데 2세(Jan van de Velde II)의 '여관주인에게 돈을 주는 착한 사마리아인'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작가 루이 비네(Louis Binet)는 개를 포함한 몇 가지 세부 요소를 제외하고는 렘브란트의 작품을 거의 그대로 따랐고, 역시 프랑스 작가인 샤를 에라르(Charles Errard)는 세부 요소들을 포함해 렘브란트의 작품을 매우 충실히 모사했다.
16 렘브란트 판 레인, ‘십자가에서 내림’, 1633년, 에칭, 뷰린(Etching and burin), 53×41㎝.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다른 에칭들과는 달리 자신의 유화를 복제한 듯한 스타일의 판화다.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있는 예수와 슬퍼하는 사람들 뒤로 예루살렘의 성벽이 보인다. 이 판화는 미술품 판매상 헨드릭 아윌렌뷔르흐가 출판했다.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 시절 초기에 그의 집에서 지냈는데, 그곳에서 헨드릭의 조카딸 사스키아를 만나 결혼한다. 이 작품은 루벤스의 대표작인 앤트워프 대성당 제단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7 렘브란트 판 레인, ‘쥐 잡는 사람(Stefan Laux)’, 1632년, 에칭(Etching), 14×12.5㎝.
쉬고 있는 나팔 연주자, 도살되기 직전의 돼지와 같은 일상의 장면을 담은 판화도 몇 점 있다. 또한 렘브란트는 책의 삽화, 피리 연주자가 양치기 소녀를 유혹하는 목가적인 장면 등을 판화에 담기도 했다. 이러한 판화의 대부분은 ‘우의(寓意)’적 측면, 즉 단순해 보이는 이미지에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은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이미지 혹은 도상은 당시에 보편적이면서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었다. 렘브란트는 제자들과 서로 모델이 되어주며 인체의 해부학적 측면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는 연습을 했다. 학생들은 모델 주위에 둥글게 둘러앉아 렘브란트가 동판에 작업을 하는 동안 그림을 그렸다. 이 때 제작된 판화 작품들은 명백히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 여성 누드 습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점을 염두에 두고, 렘브란트는 이상적인 신체 보다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신체를 묘사했다. 렘브란트는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을 화가로서의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18 렘브란트 판 레인, ‘메데이아 이아손과 글라우케의 결혼(Medea: or the Marriage of Jason & Creusa)’,
1648년, 에칭, 드라이포인트(Etching and drypoint), 24×17.6㎝.
친구이자 후원자인 얀 식스(Jan Six)의 의뢰로 제작한 이 작품은 1648년 암스테르담에서 출판된 그리스 비극 '메데이아'의 표지 삽화로 사용되었다.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메데이아'에서 이아손은 황금양피를 손에 넣도록 도움을 준 메데이아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녀와 결혼해 두 아이를 낳는다. 몇 년 뒤 이아손이 메데이아를 떠나 크레온의 딸 글라우케 공주와 결혼하자, 버림받은 메데이아는 독에 적신 외투를 보내 글라우케와 크레온을 죽게 하고 자신의 두 아이까지 죽인다. 렘브란트는 이아손과 글라우케의 결혼식 장소를 신전이 아닌 전형적인 네덜란드 교회로 표현했다. 메데이아는 제단 뒤에 숨어 한 손에는 독에 적신 외투를,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아이들을 살해할 준비를 하고 있다.
19 렘브란트 판 레인, ‘돼지(The Hog)’, 1643년, 에칭, 드라이포인트(Etching and drypoint), 14.3×18.3㎝.
다리가 묶인 커다란 암퇘지가 주인 집 앞에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뒤로는 도축업자가 도끼와 칼을 들고 서 있고, 한 소년은 삶의 덧없음을 나타내듯 돼지 방광을 손에 들고 있다. 당시에는 도축업자들이 가축 주인의 요청을 받고 집으로 직접 찾아와 도축을 해 주었는데, 이것이 동네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볼거리였다. 17세기에는 이러한 도살 장면을 그린 회화 작품이 많이 있었는데 대개는 도살 장면 자체나 도살된 동물을 표현했다. 렘브란트는 이 주제 역시 남다르게 표현했는데, 그는 이 작품에서 의도적으로 돼지의 모습만 자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했다.
20 렘브란트 판 레인, ‘팬케이크 굽는 여자(The Pancake Woman)’, 1635년, 에칭(Etching), 10.9×7.7㎝.
17세기에 네덜란드 서민 여성이 집 밖에서 팬케이크를 굽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오른쪽의 아이는 팬 안쪽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고, 맨 앞에는 작은 아이가 배고픈 강아지에게 팬케이크를 뺏기지 않으려고 몸을 돌리고 있다. 일상 생활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순간을 포착하는 렘브란트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21 렘브란트 판 레인, ‘목욕하는 다이아나(Diana At the Bath)’, 1631년, 에칭(Etching), 17.8×15.9㎝.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가 숲에서 목욕을 하던 중 침입자를 발견했는지 어깨를 돌리고 있다. 이 판화의 제목은 왼쪽에 보이는 다이아나를 상징하는 화살통에서 유래되었다. 그녀가 어깨 너머로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는 방식이 꽤 획기적이다.
22 렘브란트 판 레인, ‘풍차(The Mill)’, 1641년, 에칭(Etching), 14.5×20.8㎝.
렘브란트의 풍경 판화는 1640년에서 1653년 사이에 제작되었다. 사스키아가 죽은 후 렘브란트가 주로 야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던 시기였다. 그는 집에서부터 암스텔 강을 따라 도시에서 벗어나거나 들판으로 걸어가곤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릴 종이 외에도 동판을 가지고 다니며 에칭 작업을 했고, 집에 돌아와서 작업을 이어갔다. 어떤 풍경들은 그의 상상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렘브란트는 외국에 가 본 경험이 없었지만, 그의 몇몇 풍경 판화에는 산악 지대가 등장하기도 한다.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참고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풍경 판화에는 인상적인 나무들 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 등 다양한 요소들이 등장한다.
23 렘브란트 판 레인, ‘시골집 세 채가 있는 길가 풍경(Landscape with Three Gabled Cottages Beside a Road)’,
1650년, 에칭, 드라이포인트(Etching and drypoint), 16.2×20.3㎝.
렘브란트는 1640년에서 1645년, 그리고 1650년에서 1653년 두 시기에 걸쳐 풍경 시리즈를 제작했다. 이 판화는 두 번째 시기의 작품들 중 가장 수작으로 손꼽힌다. 오른쪽에 높이 솟은 나무에서부터 오두막 세 채를 지나 왼쪽 아래 길 끝에 이르는 대각선 구도로 뚜렷한 원근감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렘브란트는 이 작품에서 나무 등의 표현에 드라이포인트 기법을 많이 사용했다.
24 렘브란트 판 레인, ‘옴발 풍경(The Omval)’, 1645년, 에칭, 드라이포인트(Etching and drypoint), 18.4×22.5㎝.
암스텔 강과 운하 사이에 있는 옴발 지역을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작품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물레방아, 풍차, 여관과 조선소, 그리고 집 몇 채가 보이고 강 위의 배는 손님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전경에는 한 남자가 강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다. 왼쪽에는 나무와 목가적인 장면이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나무 그늘에 어린 연인이 보인다. 소년이 소녀의 머리에 화환을 얹고 있다.
25 렘브란트 판 레인, ‘잠든 여자 한 명과 두 명의 여자’, 1637년, 에칭(Etching), 14.3×9.7㎝.
렘브란트는 때때로 에칭 판을 습작에 사용했다. 그는 빠르게 스케치한 일상이나 매우 개인적인 관찰 등 다양한 장면들을 하나의 판 위에 작업했다. 그런 다음 이러한 이미지들을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찍어냈다. 이러한 습작 중 몇 점에서는 그의 아내 사스키아가 모델이 되었다. 이 가운데는 병상에 누운 모습도 있는데, 이때는 그녀가 아들 티투스를 낳고 매우 병약해졌던 시기다. 렘브란트가 사망한 후, 에칭 원판 80여 개가 연이어 수집가들의 손에 들어갔다. 그들 중 상당수가 원판으로 새롭게 작품을 찍어냈다. 앙리 루이 바산 Henry Louis Basan은 1807년 렘브란트의 에칭 124점을 실은 판화집을 출판했다. 원판으로 찍어낸 판화 외에도, 당시 원판이 남아있지 않았던 판화의 사본도 제작되었다. 원판들의 마지막 수집가는 파리 사람 알뱅 보몽 Alvin-Beaumont이었다. 1906년 그는 원판을 구입하여 소량의 판화를 찍어 냈다. 1916년에는 더 이상 판화를 찍지 못하도록 원판에 잉크를 올리고 바니시를 칠했다. 1993년 이 에칭 원판들의 마지막 소유자가 자신의 소장품을 경매에 내놓았고, 원판들은 여러 박물관과 개인 수집가들의 손을 거쳐 전 세계로 흩어졌다.
26 렘브란트 판 레인, ‘습작: 사스키아와 다른 사람들’, 1636년, 에칭(Etching), 15.1×12.6㎝.
중앙에 보이는 여인은 렘브란트의 아내 사스키아인 것이 거의 확실하고, 주변에 있는 네 개의 두상 스케치 역시 그녀일 것이다. 결혼한 지 2년이 지난 당시 사스키아의 나이는 스물네 살이었다. 사스키아가 렘브란트의 위대한 사랑이자 뮤즈였다는 증거는 다양한 회화, 에칭, 드로잉 초상화들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27 렘브란트 판 레인, ‘유대인 신부(Jewish Bride)’, 1635년, 에칭, 드라이포인트,
뷰린(Etching, drypoint and burin), 21.9×16.8㎝.
렘브란트는 노인이나 젊은 여성과 같은 특정 유형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판화로 제작했는데, 이 판화들에서 그는 강렬한 명암대비 등의 특정 효과를 즐겨 시도했다. 당시 수집가들 사이에서 이러한 얼굴 판화(tronies, 트로니)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아, 트로니만 거래하는 시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초기 인물 판화 중에는 특정 노인 여성을 묘사한 작품들이 있는데, 렘브란트의 어머니가 모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렘브란트는 또한 약 20점의 공식 초상화를 판화로 제작했다. 렘브란트와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주로 우호적이고 사적인 관계였다. 이 초상화들은 대개 의뢰를 받아 제작되었지만 큰 시장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지는 않았다. 의뢰를 받아 제작한 첫 번째 초상 판화는 저항파의 설교자 얀 위텐보해르트 Johannes Uytenbogaert를 모델로 한 작품이었다.
28 렘브란트 판 레인, ‘얀 위텐보해르트, 저항파의 설교자(an Uytenbogaert, Preacher of the Remonstrants)’, 1635년, 에칭, 뷰린(Etching and burin), 22.4×18.7㎝.
렘브란트가 다른 이로부터 의뢰를 받아 제작한 첫 번째 초상화 판화와 그 원판이다. 렘브란트는 이 초상화에 에칭, 뷰린, 드라이포인트 기법을 이용하여 최대한 실제와 비슷하게 표현했고, 천의 묘사에도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초상화의 주인공인 설교자 얀 위텐보해르트는 저항파의 영향력있는 지도자였다. 렘브란트는 1633년 처음 그의 초상화를 그렸고, 2년 후 이 판화를 제작했다.
29 렘브란트 판 레인, ‘아브라함 프란센, 약제사', 1657년, 에칭,
드라이포인트, 뷰린(Etching, drypoint and burin), 15.8×20.8㎝.
암스테르담의 약제사이자 미술품 수집가 아브라함 프란센은 렘브란트의 절친한 친구로, 그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주었으며, 딸 코르넬리아의 후견인이었다. 이 초상화가 의뢰로 제작되었는지, 친한 친구에게 보내는 선물로 제작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열렬한 미술품 수집가였던 프란센의 모습이 작품에 표현되었는데, 벽에는 세 폭 제단화와 그림이 걸려 있고, 탁자에는 판화와 드로잉 작품을 보관한 화보집이 있다. 왼쪽에는 작은 불상이 있는데, 당시 국제 무역이 본격화되면서 암스테르담에는 동양에서 건너 온 이런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탁자 위에는 프란센의 직업을 보여주는 두개골과 항아리가 놓여 있다.
30 렘브란트 판 레인, ‘얀 루트마, 금 세공인’, 1656년, 에칭,
드라이포인트, 뷰린(Etching, drypoint and burin), 19.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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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루트마는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금‧은 세공인이었다. 그는 말년에 실명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시력 저하로 인해 눈을 반쯤 감은 모습이다. 탁자 위에 놓인 망치와 은 식기는 그의 직업을 나타내고, 그의 손에는 작은 조각상이 들려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같은 초상화를 두 가지 버전으로 감상할 수 있다. 하나는 첫 번째 판을 찍은 것으로, 잉크를 추가하지 않고 다시 찍어 약간 밝은 마큘러처(maculature)이고, 다른 하나는 배경에 변화를 준 두 번째 판을 갈색 종이에 찍은 것이다.
31 렘브란트 판 레인, ‘진주 머리장식을 한 사스키아(Saskia with Pearls in Her Hair)’,
1634년, 에칭(Etching), 6.7×5.6㎝.
이 작품은 렘브란트와 사스키아가 1634년 6월 성 안나파로키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릴 즈음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날 그녀가 입은 옷이 아마도 이런 스타일이었을 것 같다. 렘브란트는 이 작품에서 사스키아를 매우 섬세하고 친밀하게 묘사했다.
32 렘브란트 판 레인, ‘풍성한 수염의 늙은 남자’, 1630년, 에칭(Etching), 9.8×8.1㎝.
1630년대 초 렘브란트가 제작한 긴 수염을 가진 노인 연작이다. 렘브란트는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인물의 드로잉도 여러 점 그렸다. 이 작품들은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연습용으로 제작되었지만 다양한 역사적 인물이나 성경 속 인물을 연상시키면서 미술 애호가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33 렘브란트 판 레인, ‘갈라진 털모자를 쓴 늙은 남자(Old Man with a Divided Fur Cap)’,
1640년, 에칭, 드라이포인트(Etching and drypoint), 15×14.7㎝.
갈라진 털모자를 쓴 긴 수염의 노인이다. 노인은 세밀하게 묘사된 머리 부분에 비해 비교적 단순하게 표현된 한쪽 손을 가슴에 올려두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카운터프루프 버전을 함께 비교하며 볼 수 있다. 카운터프루프(Counterproof)는 판화를 찍은 다음,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종이 위에 새 종이를 올려서 얻은 좌우가 반전된 이미지의 판화다. 따라서 카운터프루프는 원판과 같은 방향으로 찍히기 때문에, 작가가 원판의 이미지를 확인하고 수정하는 목적으로 찍는 경우가 많다.
✺ KBS1 <예썰의 전당>[9회] 삶의 빛과 그림자 - 렘브란트
201family | KBS1 <예썰의 전당>[9회] 삶의 빛과 그림자 - 렘브란트 - Daum 카페
[출처 및 참고자료: 대구미술관 전시 정보,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화요일 아침이 시작되었네요
삶은 하루하루가
따스한 우리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생각합니다.
오늘도 싸늘한 날씨에
따뜻한 이불처럼 포근하게 감싸주시고, 미소가 넘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