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을 한탄하다(代悲白頭翁) 洛陽城東桃李花-낙양성 동쪽에 핀 복숭아꽃 오얏꽃 飛來飛去誰家-그 꽃잎 바람 실려 뉘 집에 떨어지려나 洛陽女兒惜顔色-낙양 사는 처녀는 행여 얼굴 시들까 行逢落花長歎息-떨어지는 꽃잎만 봐도 긴 한숨을 쉬네 今年花落顔改色-금년 핀 꽃 지고나면 얼굴 다시 여위리니 明年花開復誰在-내년에 꽃이 핀들 누가 와서 봐주리오 已見松柏摧爲薪-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소나무 잣나무 잘리운 그루터기 更聞桑田變爲海-그대도 듣지 않았는가 뽕나무밭 변하여 바다를 이룬 것을 古人無復洛城東-낙양성 동쪽 꽃구경하던 예전의 그 사람 지금은 없고 今人還封落花風-흩날리는 꽃바람 마주선 우리도 시간이 없네 年年歲歲花相似-해마다 피는 꽃은 똑같건만 해마다 사람은 같지를 않네 歲歲年年人不同-아, 슬퍼라 해마다 다른 사람이여 !! 류희이(劉希夷)
사진에 있는 네가 나라면, 나는 그럼 어디 있느냐?
이만영(李晩榮)은 조선 인조(仁祖)때 문신(文臣)이다. 이만영(李晩榮)이 중국 사신으로 갔다가 그곳 호병(胡炳)이란 화가(畫家)가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肖像畵)를 갖고 왔다. 자신의 얼굴 모습을 판에 찍은 듯 닮은 모습에 사람들이 감탄했다. 자신도 흡족했다.
18년 세월이 흐른 뒤 예전 초상화(肖像畵)를 꺼내 거울 속 지금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 보니 너무 차이가 났다. 같은 구석이 별로 없었다.
거울 속의 나도 분명히 나이고 그림 속 나도 틀림없는 나인데 두 얼굴인 나는 전혀 달랐다. 얼굴만 아니고 초상화 부분과 실제의 내 신체 부분이 너무 차이가 났다.
이만영(李晩榮)은 초상화를 보고 느낀 대로 초상화 속 나에 대한 “화상찬병서(畵像贊幷序)”란 글을 썼다. 설해집(雪海集) 2권에 있다.
爾今我歟?-그대가 지금의 나란 말인가? 我尙少-내가 그래도 젊었네 그려. 我昔爾歟?-내가 예전 그대였던가? 我獨老-나 홀로 늙고 말았군 그래. 十八年間-18년간 爾之爲我眞我不知-그대가 내 참모습인 줄 몰랐으니 後數十年-앞으로 수십 년 뒤에는 誰知我之影是爾身?-누가 내 모습이 그대인 줄 알겠나?” 이만영(李晩榮)
▶추사 김정희도 “자제소조(自題小照)” 즉 자기 초상화에 쓴 글에서 아래와 같이 적었다.
是我亦我-여기 있는 나도 나요 非我亦我-그림 속 나도 나다 是我亦可-여기 있는 나도 좋고 非我亦可-그림 속 나도 좋다 是非之間-이 나와 저 나 사이 無以爲我-진정한 나는 없네 帝珠重重-불법을 지키는 구슬(帝珠)은 겹겹인데 誰能-그 뉘라서 능히 執相於大摩尼中-부처님의 진리 속에서 실상을 잡아낼까 呵呵-하하하 김정희(金正喜)
둘 다 분명 나는 나인데, 어느 나도 진짜 나는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 있느냐 말이다.
※자제소조(自題小照)-“자기 주제(主題)에 관한 작은 사진”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제주(帝珠)-불교에서 제석천(帝釋天)의 구슬을 말한다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守護神) ※보주(寶珠)-불교 용어로 불행(不幸)과 재난(災難)을 없애 주고 더러운 물을 깨끗한 물로 변(變)하게 하는 덕(德)을 말한다.
※추사 김정희는 승려(僧侶)가 아니면서도 70세에 과천 관악산 기슭에 있는 선고묘(先考墓)에서 움막을 치고 수도(修道)한 끝에 경기도 광주 봉은사에서 비구와 비구니들이 받는 250가지의 대계(大戒律)을 받아야 스님이 되는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추사 김정희의 불교지식은 대단하다
불교계의 대선사인 고창 선운사 백파 긍선(白坡 亘璇) 선사(禪師)의 “선문수경(禪文手鏡)”에 대한 비판은 추사의 불교 지식을 말해 준다. 김정희. 초의선사. 백파긍선의 불교에 대한 설전(舌戰)이 읽을 만하다.
▶노산 이은상(李殷相)의 시조 “자화상(自畵像)”이 또 있다. 너를 나라 하니 내가 그래 너란 말가 네가 나라면 나는 그럼 어디 있나 나 아닌 너를 데리고 나인 줄만 여겼다. 내가 참이라면 너는 분명 거짓 것이 네가 참이라면 내가 도로 거짓 것이 어느 게 참이요 거짓인지 분간하지 못할네 내가 없었더면 너는 본시 없으련만 나는 없어져도 너는 혹시 남을런가 저 뒷날 너를 나로만 속아볼 게 우습다.
나는 나인가? 내가 맞는가? 그림 속 나는 그대로인데, 현실의 나는 매일 변한다. 변치 않는 나와 늘 변하는 나중에 어느 나가 진정한 나인가? “너” 나 “그”가 아닌 “나”가 항상 문제다.
내게서 내가 달아나지 않도록 나를 잘 간수 할 수는 없을까
위에 있는 사진은 불과 3년 전에 목동 인라인 스케이트 운동장이다 매일 변함없이 열심히 탔는데 어디 아픈데도 없이 슬그머니 운동장에 안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무겁다 사진속의 “나”가 아니다.
此而是人生! 이것이 인생이다!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