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위로 [구수영]
오후 네시, 뒷목을 끌어당기는 피로가 이슥하다
잘 볶아진 원두로 내린 드립 커피나
커피머신에서 갓 뽑아낸 에스프레소로는
해결할 수 없는
설탕과 커피와 프리마의 황금비율이 만든 종이컵
커피의 치명적인 매력을 아는지, 순서지를 뽑아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서 곧 부서질 것 같은
낡은 수레 하나
종이컵 커피를 마시던 아버지
입가에 묻어나던 안도의 미소가
땀을 흘리다 주름진
혈관마다 빠르게 도는 블랙 수액
위태롭고 쓸쓸하지만 반짝 피어오르던
백원짜리 동전 세 개가 만든 위로
혹시
당신이 또렷한 목소리로 그 커피가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여러 개의 해악을 반나절쯤
나열한다 해도
오후 네시는 그렇다
손에 쥔 꼬깃한 순서지를 던지고
화살기도보다 빠른 달달한 6온스 종이 커피에
기대 이 어둔 터널을 지나고 싶은
- 시와편견, 2021 가을호
* 직장생활을 삼십여년 했는데 회의할 때마다 혹은 손님이 왔을 때
손쉽게 마신 게 봉지커피다.
설탕과 프림이 섞인 커피라 굳이 병뚜껑 열고 황금비율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에
적어도 삼십년은 마시지 않았을까.
지금은 봉지커피가 다양해져 블랙봉지커피도 팔고 있으니 취향대로 마시면 된다.
직장에서는 하루에 다섯 잔은 기본이었으니 그동안 엄청 마셨을 게다.
우스갯소리로 당떨어질 때 마셔주면 힘이 불끈 솟아나는, 이 중독성에 의지해서
큰 위로를 받곤 했다.
중세기였나,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밤새 기도할 때 졸음을 쫒기 위해 몰래 커피를 마셨다는데
한동안 커피는 악마의 음료라 하여 마시지 못하게 하였다가 어느 순간부터 마셔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니 그때부터 신세계가 열린 셈이다.
중학교 때 공부 잘하는 애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웠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각성제의 역할을 해준 게 커피였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커피는 지금까지 해악보다는 위로와 피로회복을 도모케 해준 고마운 선물이다.
드립커피를 잘 내리는 커피집을 찾아 방방곡을 다니는 게 취미였는데
요즘 단골로 다니던 집들은 십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져서 못내 아쉽다.
첫댓글 ㅗㅗ
봉지 커피 마신지 오래 되어
중독입니다.
일하다, 그 어떤 틈이
그 쓸쓸함, 아니 뭐랄까 형언할 수 없는,
애매함, 이랄까
그런 것이 손 가게 하지요.
마시면서 후회하는데, 또 마시게 되고
시나 커피나
좀 쓴 게 입안데 오래 남게 되긴 하는데
잡히는 건, 스틱이지요**
건안하시죠?
달달한 시를 쓰는 사람은 믹스커피를 마시고
인생의 쓴맛을 아는 시인은 블랙커피를 마실라나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