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의 기원(네이버지식사전)
『신약성서』에는 마리아의 처녀 회임으로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날이 언제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초기 그리스도 교도는 1월 1일, 1월 6일, 3월 27일 등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였는데, 교회로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지는 않았다. 3세기의 신학자 오리게네스는 크리스마스를 정하는 것은 이교적이라고 비난하였다.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로 고정되고, 본격적으로 축하하게 된 것은 교황 율리우스 1세(재위 337~352)때이며, 동세기 말에는 그리스도교 국가 전체에서 이날에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게 되었다. 오랜 논의끝에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로 고정된 것은 초기 교회 교부들의 체험과 영지에 의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이 시기에 큰 축제를 행하는 것은 고대 시대의 사회의 습관이었다. 그중에서도 요람기의 그리스도 교회가 개종을 원하였던 로마인이나 게르만인 사이에는 동지 제사가 성대하게 행하여졌는데 창고에는 수확된 곡물이 가득 차 있다. 목초가 부족한 겨울을 대비해서 도살한 가축의 고기도 충분히 저장되어 있다. 1년의 힘든 노동에서 해방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이 시기, 사람들은 이어서 찾아올 식량부족을 잊고, 먹고 마시는 성대한 축제를 행하였다. 생명의 은혜를 준 태양의 힘을 약화시키고, 겨울을 가져올 자연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은 공물을 바치고, 풍작ㆍ풍요를 기원해서 불을 피웠다.(성탄절의 상징인 산타의 옷은 위 아래 붉은 색은 태양의 색을 상징했던 것으로 보여짐/저의 생각임) 온 세상의 초목이 메마를 때 푸르름을 유지하는 상록수는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서 장식되었다. 게르만인의 동지의 축제 율에 대해서 상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로마인의 동지의 축제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록이 문학ㆍ회화ㆍ조각 등에 남아 있는데 12월 25일은 로마의 동지로 그날은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으로서 3~4세기의 로마에 보급된 미트라스교의 중요한 제일이었다.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는 사투르날리아라고 불리는 농경신 사투르누스의 제사가 행하여졌다. 이 기간에는 집집마다 밝게 불이 켜지고, 상록수가 장식되었으며 선물이 교환되고 남자들은 여자의 의복이나 동물가죽 등을 두르고, 보통은 금지되어 있던 행위가 행하여졌는데 주인과 노예가 자리를 교환하는 소동도 행하여졌다.
이와 같은 로마의 사투르날리아와 게르만의 율 축제의 시기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로서 선택되었다. 교회는 기존의 제일을 가능한 한 이용할 것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트라스교는 그리스도교의 강적이었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이보다 앞서 유사점이 많은 미트라스교와의 습합을 고려, 321년에는 매주 휴일을 <태양의 날(dies solis=sun day)>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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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위키백과 참고)
부활절 또는 부활절기는 태양, 예수 등 각 종교의 중요한 신이나 인물 등이 부활한 것을 축하하는 날이다
언어적 유래
부활절을 뜻하는 영어 'Easter'와 독일어 'Ostern'는 원래 튜튼족이 숭배하던 '봄의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1]. 이스터 여신을 기리는 기간은 4월에 있었는데, 이 축제가 부활절과 사육제의 유래이다[2].
그외의 언어들은 대부분 초기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
기독교의 부활절
기독교에서의 부활절은 교회력 절기 중 하나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초기 교회의 부활절은 3월, 4월, 경에 불규칙하게 위치하며, 그레고리력이나 율리우스력으로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불규칙의 이유는 부활절의 날짜가 히브리력의 유월절 이후 첫 안식일 다음날(히브리력에서의 춘분)에 부활했다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춘분후 첫 보름이 지난 주일에 지키기로 한 이후에는 날짜의 계산 방식이 달라짐으로,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3월 22일에서 4월 25일 사이에 위치해 있게 되었다.
부활은 죄로 인해 죽은 성도가 다시 살아나는 소망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이므로 부활절이 교회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유래
부활절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은 지 삼일 째 되는 날 그가 다시 살아난 것을 기리는 날이다. 기독교의 부활절은 기존 유럽과 중동의 다신교 전통과 상징물이 합쳐진 것이다. 3세기경 지켜졌던 기독교의 부활절은 오늘날 지켜지는 부활절과는 상당히 달랐다. 기독교 전파가 한창이었던 시점에, 다신교문화의 사람들에게 복음 전파와 예수의 부활에 대해 덜 거부감이 드는 방법을 찾던 중 교회 지도자들은 다신교의식의 많은 부분을 자신들의 유대교 의식에 접목시키게 된다. 즉, 다신교의 의식들에 기독교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렇게 차츰차츰 섞여가던 의식들은 결국 기독교의 부활절로 탄생시켰다.
시기
부활절은 매년 그 날짜가 달라진다. 이르게는 3월 셋째 주 늦게는 4월 넷째 주에 올 수 도 있는데 이는 부활절이 음력으로 지켜지기 때문이다. 초기 교회는 유월절 시기로 부활절을 지켰다. 하지만 A.D. 4세기에 접어들어 부활절을 언제 지켜야 할지 논쟁거리가 되었다. 어떤 교단은 유월절과 부활절의 관계가 계속 되기를 원했고 다른 교단은 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전과 같은 방법은 예수가 부활한 일요일이 아닌 다른 요일에 부활절이 왔기 때문이다. 결국 니케아 공의회에서 춘분 후 첫 보름이 지난 일요일로 지키기로 정했고 보름이 일요일에 질 경우 그 다음주 일요일로 지켜졌다. 오늘날도 이 방법으로 그 날짜가 계산된다.
상징물
부활절의 상징물은 크게 부활절 달걀과 부활절 토끼 두 가지이다. 과거 로마인들은 모든 생명은 알로부터 온다고 믿었다. 고대 기독교인들은 달걀을 삶의 씨앗이라고 여겼다. 이집트, 그리스, 페르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는 봄 축제 때 달걀을 여러 색으로 물들이고 교환했다. 이것이 예수가 무덤을 열고 부활하는 의미와 가미되어 오늘날 알록달록한 색으로 장식된 달걀이 부활절의 상징이 되었다. 토끼는 다산하는 동물로 다산의 신 Oestre의 상징이었다. 부활절 토끼 풍습에 관한 언급은 16세기 독일에서 가장 먼저 보였다. 이 풍습은 부활절 토끼가 초콜릿, 캔디, 부활절 달걀 등을 착한 아이들에게 준다고 여겨 아이들이 토끼를 위해 집을 만드는 것이다. 18세기에 독일 이민자들이 미국에 오면서 함께 이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풍습
부활절의 풍습은 크게 계란 굴리기(Egg Rolling), 계란 찾기(Egg Hunt), 부활절 퍼레이드(Easter Parades), 그리고 부활절 카드(Easter Cards) 교환이 있다. 우선 계란 굴리기는 19세기 초, 미국 4번째 대통령인 James Madison의 부인인 Dolly Madison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녀는 국회의사당에 아이들을 초대했고 잔디밭에서 계란 굴리기 이벤트를 열었다. 계란을 깨뜨리지 않고 긴 스푼모양의 막대기로 가장 멀리 가장 빨리 굴리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 계란 굴리기의 규칙이다. 1880년부터는 장소가 바뀌어 백악관에서 열렸는데, 이는 국회의사당 정원이 망가진다는 의원들의 항의 때문이었다. 이 이벤트가 계속되어 남북전쟁 때를 제외한 매년 열리고 있다. 12살 이하의 아이들이 참가할 수 있으며, 어른들은 아이들과 동반 시에만 입장 할 수 있다. 부활절 월요일은 여행객들이 백악관 마당을 지나다닐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두 번째로 계란 찾기는 단체 또는 마을단위로 이루어 지는데, 많은 계란을 부활절 아침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곳곳에 숨기고 아이들이 그것들을 찾게 하는 것이다. 가장 많이 달걀을 찾은 아이가 상품을 받는데 이 상품은 주로 달걀모양의 초콜릿이다. 세 번째로는 부활절 퍼레이드가 있다. 이 퍼레이드는 부활절 아침 사람들이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교회에 갔다가 마친 후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퍼레이드로는 뉴욕시의 오번가(Fifth Avenue) 퍼레이드를 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부활절 카드가 부활절의 풍습으로 정착되었다. 미국의 카드회사인 American Greetings에 따르자면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어머니의 날 다음으로 가장 많은 카드를 보내는 날이 부활절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부활절 햄, 부활절 빵 등 다양한 형태의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부활절
고대문명을 연구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라를 최고 신으로써 숭배하였기에,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길어지는 춘분을 축하하였다. 이집트인들은 신전에 태양신 라의 부활을 상징하는 황금색으로 염색한 계란을 바쳤다. 또한 고대 이집트에서 토끼를 의미하는 'um'이란 단어는 '기간'이라는 뜻과 같은 발음이었기 때문에, 토끼는 태양의 주기성 사상과 관련이 있는 다산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첫댓글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안식일 계명이 일요일로 바뀌게 된 것은 우연히 아니며 위와 같은 역사적인 배경들에 의해 탈바꿈한 것입니다.
지금 개신교회들은 모두 이와 같은 역사를 다 알고도 "그게 뭐 어때서?"라고 하지요. 아무도 잘못되었다고 생각지 않고 오히려 잘하는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율법에 관한 문제는 단순히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느냐 성령의 법으로 율법을 지키느냐 하는 문제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질그릇님. 많이 논리적인분 인거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에 탄생일. 부활일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도 아십니다. 그분이 맞냐고 따지실까요?.. 우리가 찾고 싶어도 찾지못하며.알려 하여도 알지못합니다. 우선 제일 중요한것은 질그릇님에 중심인거 같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다윗이 생각납니다.. 모든 권세와 권력과 자존심을 버리고.. 옷벗은 상태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했던 구절이 말입니다. 만약 율법자들이라면. 따지기를 좋아하는 정치가 라면. 다윗에게 죄있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 그 모습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중심을 보고 계시다는걸.. 생각나서 적어 봅니다.
어찌보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린아이 같아야지만. 천국에 들어갈수 있다라고 말한걸 보면. 논리적이며. 따지기를 좋아하는 우리성인들..... 바로 우리가 순수하지 못한 바로 죄인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사랑"은 무엇일까요.. 한쪽빰을 때리면 다른쪽빰도 내주며. 돈을 꿔달라하면. 주라하며. 동행하자하면. 따라가주고.. 발을 딱아주는 그 사랑.. 우린 어떨까요? 왜 때렸는지. 우린 서로 잘 잘못을 먼저 따지기 바쁘죠.. 내가 왜 동행해줘야 하는지.. 돈은 왜 줘야 하는지.. 남을 비방하며 정죄는 얼마나 하는지요..
근데. 질그릇님 왜 율법으로 사람을 정죄하려 하십니까? 왜 예수님을 팔며. 정죄에 가담하십니까~ 왜 예수님이 도말하신 율법에 정죄함을. 왜 율법으로 지금도 정죄할수 있다 하십니까~~
진리탐구님께서 얼마나 진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시는지 알것같네요. 그러나 아직까지 말씀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판단하시고 계십니다. 님의 답글 중 두어가지 잘못 알거나 이해하신 부분이 있네요. 안식일에 음식까지 먹지말라고 하는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금요일에 미리 준비해 놓으라고 하셨지요. 나머지 한가지는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저도 이 시대를 판단하기까지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님께서 조금이라도 율법과 안식일에 관해서 이해하길 기대했던 제가 성급했구나 싶습니다. 말씀을 좀 더 연구하시어 시대를 분별할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