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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들판, 일곱 빛깔 무지개… 마음의 눈에도 세상이 담기네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눈먼 소녀(The Blind Girl)〉.
1856년 /영국 버밍엄 미술관 소장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는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다. 그는 11세에 왕립 아카데미 학교에 입학한 최연소 학생으로 신동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훗날 그림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당시에 가장 부유한 예술가로 꼽혔다.
<눈먼 소녀(The Blind Girl)>는 그가 스물다섯 살 때 영국 윈첼시 지방 근처에 머무는 동안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린 그림이다. 자매로 추정되는 언니와 여동생이 등장한다. 언니의 목에는 ‘눈이 먼 불쌍한 아이’(Pity a Blind)라는 말이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시각 장애인이다. 남루하게 헤진 옷차림과 무릎 위의 손풍금으로 보아 거리의 악사로 생활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둘은 소나기가 지나간 후 노란 들판 위 짚 더미에 손을 잡고 앉아 있다. 동생은 고개 돌려 쌍무지개를 바라보고 있고, 언니는 온화하게 눈을 감으며, 대지의 흙 내음과 신선한 공기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하다.
그림 에세이 <미술관에 간 해부학자>의 저자 이재호 계명의대 해부학 교수는 “망막에 상이 맺히지 않아도 마음의 눈에는 세상이 담긴다”며 “그녀는 눈 대신 마음으로 평화로운 들판과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 작품이 앞을 못 보는 소녀를 통해 되레 눈뜬 사람들의 무뎌진 감각을 일깨웠다고 평론가들은 평한다. 그림은 당대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꾼 작품이기도 하다.
흔히들 ‘눈뜬 장님’ ‘장님 코끼리 만지기’ ‘벙어리 냉가슴’ 등의 표현을 하는데, 실은 눈 감은 사람이 세상을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입 닫은 사람이 더 의미 있는 말을 내놓고 있을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봐야 진정한 세상이 보인다는 것을 <눈먼 소녀>가 보여준다.
◆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의 작품 세계 ◆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초상화.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부모 집에 있는 그리스도(Christ in the House of His Parents)’.1848년, 캔버스 위에 유화, 86.7x139.7cm, 테이트 갤러리, 런던.
밀레이는 성서의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 40)라는 대목을 표현함에 있어, 그 성장 과정을 성스러운 이미지보다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우리의 일상을 담고 있다. 바로 목수 아버지가 일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아름답거나 고상하지 않고, 이 공간을 점유한 사람들도 하루하루가 궁핍한 사람들 그대로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의 실제 삶의 공간과 현실의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즉,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의 시간에 하느님께서 임재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림의 정중앙에는 못에 찔려 우는 아이를 엄마가 달래고 있다. 엄마는 아이의 고통이 무척 안쓰러운 마리아의 모습이다. 그런데 아이의 찔린 손에서 피가 흘러 발등에 묻어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닌가? 목수 일을 하던 아버지 요셉은 일을 멈추고 아들의 손을 살피고 있으며, 할머니 안나 역시 손자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오른편에는 한 소년이 다친 손을 닦고 치료할 물을 담아 들고 오는데, 한발 한발 내디디는 모습이 참으로 조심스럽기 짝이 없다. 거친 낙타 가죽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세례자 요한이며, 수반의 물은 세례수가 아닐까? 맞은편 일에 열중한 사내는 그리스도의 존재에 관심이 없는 자로, 지키기 어려운 신앙의 시련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벽의 삼각자는 삼위일체를, 사다리는 야곱의 사다리, 그 위에 걸터앉은 비둘기는 성령이다. 나머지 도구들은 양 옆의 나무판자들과 아울러 십자가를 만드는 도구로 보인다. 우리 일상에서 참된 신앙을 뒤로하는 것 자체가 십자가를 짜는 일이라는 것인가? 그래서 왼쪽의 널빤지 앞의 짜다가 그만둔 바구니의 거친 줄기는 예수에게 태형을 가하는 회초리를 닮았다. 오른편의 창가에 놓인 등잔은 겸허함을 나타내며, 왼쪽 외부 공간의 양들은 그리스도의 종들이고, 그 앞에 붉은 꽃은 예수가 이들을 위해 흘릴 피의 상징이다. 이처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우리들의 일상. 돌아보면 궁핍하고 가난하며, 남의 시선도 동정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차갑고 냉정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련 속에도 늘 하느님의 따스한 손길이 함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밀레이는 이 작품을 통해 부와 쾌락을 추구하는 세태를 비판하며, 참된 의미와 진실한 가치가 존재하는 곳이 어디인가를 묻고 있다.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공기 요정에게 유혹당하는 페르디난드'
예컨대 밀레이의 그림 '공기 요정에게 유혹당하는 페르디난드'를 보면 현장의 냄새가 성큼 다가온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에는 근육질이 아닌 비교적 평범한 체형의 페르디난드가 등장한다. 사람만큼 주변의 자연 또한 맑고 뚜렷하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요정이다. 그는 요정마저 '현실적'으로 그렸다. 당시 학교의 가르침에 맞춰 예쁘고 아담하게 그리기를 거부했다. 실제 요정이 있다면 그 존재 중 다수는 박쥐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반항의 깃발을 든 밀레이는 이런 식으로 기성 화단에 맞서기 시작했다.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John Henry Newman’,
1881년,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에드워드 왕자와 리처드 왕자 두 명
(The Two Princes Edward and Richard in the Towe)’, 1878년.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검은 브라운슈바이크인(The Black Brunswicker)’, 1860년.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마리아나(Mariana)’,
1851년. 마호가니에 유채, 59.7x49.5cm, 테이트미술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존 에버렛 밀레이, '성 아그네스의 전야(Eve of St Agnes)',
1862-1863년, 캔버스에 유채, 18.1x154.9cm, 개인 소장.
밀레이와 그레이는 성실하게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밀레이가 그레이를 모델로 그린 대표작은 '성 아그네스의 전야'였다. 성 아그네스는 처녀들의 수호성인이다. 그녀를 기리는 이날 처녀가 특별한 의식을 하면 미래의 남편을 볼 수 있다는 미신이 있었다. 저녁을 먹지 않은 채 나체로 침대에 눕는다. 눈은 위를 향하고, 손은 베개 밑에 넣어둔다. 그러면 장래 남편이 꿈에 나온다는 설이었다. 밀레이는 그레이를 세워 그 의식을 준비하는 처녀로 그렸다. 그녀의 깊은 눈과 오뚝한 코, 가녀린 어깨와 볼륨감 있는 몸매를 부각했다.
그레이의 아름다움, 나아가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순수함을 강조한 작품이었다. 밀레이와 그레이 사이에선 자식이 8명이나 태어났다. 대가족을 등에 업은 밀레이는 차츰 더 대중적인 그림을 그렸다. "밀레이마저 돈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고 있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런 비판쯤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래도 밀레이의 재능과 실력은 그대로였다. 이미 성공의 자리에 오른 그는 계속 승승장구했다. 그는 1885년 준 남작 작위를 받았다. 1896년에는 영국 왕립미술 아카데미 회장에 올랐다. 그리고 취임 6개월을 못 채운 채 같은 해 8월에 사망했다. "나는 캔버스 위에 쓸데없는 것을 의식적으로 그린 적이 없다." 이는 밀레이가 어린 시절부터 지켜온 말이었다. 그는 그렇게 해 삶과 신화, 문학 속 여러 장면을 그만의 기준으로 아름답게 풀어갈 수 있었다.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이상화한 평화의 결론(Peace Concluded)',
1956년, 120×91cm, 미니폴리스 미술학교.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아이의 앵두같은 입술(Cherry Ripe)’ 1879년, 개인 소장.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바네사(Vanessa)’,
1868년, 캔버스에 유채, 112.7x91.5cm, 서들레이 하우스(Sudley House), 영국 리버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성 바돌로메 축제날의 위그노
(A Huguenot on St Bartholomew's Day)’, 1851-52년.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에스더(Esther) 1865년, 개인 소장.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93세의 위프 부인(Mrs Heugh, à l'âge de 93 ans)’,
19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120.5x104.5cm, 파리 오르세미술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에피 밀레이의 초상화(Portrait of Effie Millais)’,
1873년, 퍼스 뮤지엄 아트 갤러리 소장.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평온의 골짜기(The Vale of Rest)’,
1858년, 테이트 브리튼 소장.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사과꽃 or 봄(Apple Blossoms)’, 1956-59년,
캔버스에 유채, 113x76.3cm, 레이디 레버 미술관, 영국 리버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t, 1829-1896), ‘오필리아(Ophelia)’, 1851-1852, 캔버스에 유채,
76.2×111.8cm, 테이트 브리튼, 런던 소장.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한 장면,
오필리아가 자신의 아버지가 연인 햄 릿에게 죽음을 당하자 강물에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한 장면.
‘오필리아(Ophelia)’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가 쓴 희곡 <덴마크 왕자 햄릿의 비극(햄릿, 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1599~1601)·<베니스 의 무어인 오셀로의 비극(오셀로, The Tragedy of Othello, the Moor of Venice>(1604~1605)·<리어왕(King Lear)》>(1605)·<멕베스의 비극(맥베스, The Tragedy of Macbeth)>(1605~1606)의 4편의 비극 중 최고걸작 『햄릿』에 등장하는 오필리아(Ophelia)의 비극적 죽음을 소재로 했다.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안 오필리아는 그 충격으로 미쳐 버린다. 그녀는 실성한 상태에서 강가의 꽃을 꺾다가 강에 빠지게 되는데, 강물에 떠내려 가면서도 계속 노래를 부르며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아 죽어 간다. 고전 중의 고전인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그림의 주제를 가져온 데다가, 자연의 묘사 역시 사진 못지않게 사실적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결과적으로 대단히 낭만적이고 신비로우며 관능적이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음악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 오필리아(Ophelia)의 류트(Lute)
[출처 및 참고문헌: 조선일보 2023년 11월 09일(목) 김철중 의학전문 기자,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