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5편 군인과 사람들>
④호숫가에서-25
버스는 늘 어디를 가든, 만원이었다.
충남의 중심부에는 기찻길이 없어서 서울이나, 대전 같은 도회지를 가려면, 으레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마침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시골사람들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이 거꾸로 역류하듯 서울에서 시골로 내리어오는 게 아니라, 죄다 서울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떠나는 이곳 사람들이 하나같이 버스를 타고 떠나갔다.
간혹은 기차도 타겠지만, 그러려면 논산까지 버스로 가서 호남선 서울행 기차를 타고, 대전을 거치어서 서울까지 갔었는데, 기차도 만원이었다. 또는 홍산까지 걸어 나가서 거기서 버스를 타고, 대덕고개를 넘어 판교에 닿으면 장항선 기차를 타고, 서울을 갈 수 있었다.
천복은 외출은 몇 번인가 끊고, 성환에 나아가서 극장구경도 하고, 술도 한잔하였지만, 외박은 한 번도 끊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만일 외박을 끊는다면, 집으로 가는 코스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외박은 금요일 오후 일과가 끝난 뒤 출발하여 영내를 빠져나와 성환으로 나아가면, 버스노선은 이미 끊어진 시간인지라, 기차를 타는 수밖에 없을 거였다. 그런데 누군가 말하기를 여섯 시를 전후하여 장항선 기차 편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만일 그쪽이 여일하지 못하면, 호남선을 타고 대전을 지나 반원을 빙 돌아 논산에서 내리는 코스도 있을 거였다.
한 시간을 넘기어서 달리던 버스가 공주에 도착하자, 천복은 차에서 내리어 천안행으로 갈아탔다. 그러자 버스가 굽이굽이 높다란 차령고개를 헉헉거리면서 넘더니, 천안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4시이었다.
거기에서 또 다시 성환을 가려면, 서울행버스를 타고 성환에서 내릴 수가 있었지만, 버스시간이 드물어 기차를 타고 성환역에서 내리었다. 그리고 시간을 보니, 오후 다섯 시 반이나 되었다. 그렇더라도 날이 길어서 해는 아직 서너 발이나 남아있었다.
그는 자매수예점을 들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할 만한 심경이 못 되었다. 개찰구를 빠져나와 대합실에서 좀 멈칫하다가는 밖으로 나오자, 역전광장 앞으로 뚫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이 흙먼지를 부옇게 일으키고 있었다. 개중에는 군용GMC도 달리는 게 보이었다.
그는 이제 부대의 코앞에 당도하였으나, 이상할 만큼 부대에 들어가기가 싫어지었다. 그렇다고, 자매수예점이나 술집 같은 데를 들어가 누구와 노닥거리기도 싫어지었다.
그는 호랑에 손을 깊숙이 넣어두고 어쩌다가 한 개비씩 꺼내어서 태우던 화랑담배를 한 개비 빼서 물었다. 그리고 라이터로 불을 켜서 댕기고, 연기를 몇 모금 빨아들이었다.
그러자 시계가 흐릿하여지었다. 심하지는 않았으나, 환각상태로 돌변하는 니코틴의 독성일 것 같았다. 그러자 날선 신경이 무디어지고, 꼬불꼬불 피어오르던 담배연기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신비롭기만 하였다.
그는 이른 점심을 먹었기에 시장기가 느끼어지었으나, 밥을 먹고 싶은 식욕은 들뜨지 않아서 추호도 그러한 생각은 없었다.
그는 담배연기에 취하여 몽롱한 정신을 간직하고 싶을 뿐이었다. 여느 때에 경산이 틈틈이 장죽을 물었던 거는 이러한 혼미에 스스로가 빠지어드려는 욕구가 아니었을까.
그는 부대로 들어가는 신작로를 스적스적 밟아갔다. 낯익은 구멍가게가 보이었다. 그러자 그는 빨리듯 그리로 들어가서는 소주 두 병을 사서 두 손에 한 병씩 나누어들었다.
푸릇한 술병 속에 채워진 맑은 물이 갈증을 느끼는 목구멍으로 시원스럽게 축이어 주리라는 기대감을 품고서 병뚜껑을 이빨로 물어뜯어 따내고야 말았다. 그러자 속에 갇히어있던 술이 자못 출렁거리면서 그의 손끝을 적시는 거였다.
그는 그 참 소주병을 입으로 기울이었다. 매콤 달콤한 짜릿한 맛이 혓바닥을 얼얼하게 자극하였지만, 그 괴이한 몇 모금의 액체는 이내 휘발성으로 발화하더니, 목구멍을 따끈하게 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금세 알코르의 농도대로 정수리가 뻐근하여왔다.
몸속에서 그 독성의 알콜이 분해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거 같았다.
그의 왼쪽 손에는 아직 뚜껑을 따지 않은 멀쩡한 소주병이 들리어 있었고, 오른손에는 연거푸 입으로 들어붓는 가운데 파도가 되어 찰싹거리는 술병이 들리어있었다.
“캬악!”
그는 오른손에 쥔 소주병을 악착같이 비우고는 불이 붙은 혓바닥의 불꽃을 냉큼 뿜어내었다. 그때 오른쪽 무릎이 문득 꺾이듯 휘청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것을 넉히 의식하면서 완전히 비운 술병을 길섶에 놓치었다.
그리고 몇 발을 옮겨가다 왼손에 쥐어진 소주병을 오른손에 바꾸어들었다.
그는 예의 지름길 밭두둑에 서있었다. 보리이삭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음을 생경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순간 밭과 논과 산들이 바람에 날리는 종이쪽처럼 빙글빙글 돌아가고, 연신 추락하는 모습이 어지러움을 유발시키었다.
뿐 아니라, 갈증마저 심하여 또 바꾸어든 술병의 뚜껑을 이발로 물어뜯고, 목으로 들어부었다.
이튿날 그는 중대본부 내무반 침상에서 잠이 깨었다. 지난밤 두 번째 술병을 물어뜯고, 목구멍으로 들어붓던 기억까지는 또렷하였다. 그러나 그 뒤 일들은 부스러진 흙덩이처럼 기억에서 사라지었던 거였다.
첫댓글 깡소주 두병이면 그러고도 남겠지요 ㅎ
전 애주가지만 예나 지금이나 안주가 맘에 안들면 술을 못본 척하게됩니다 ^^*
그 무렵 소주는 대개 삼학소주였는데 45도가량 높은 알코르였지요.
웬만하면 천복도 필름이 끊어지지 않았을 터인데요.
그 무렵은 술 자랑이 힘 자랑이라 폭주들 많이 했습니다.
막걸리 안주는 깍뚜기 하나 소주 안주에는 며루치 하나 ㅎㅎㅎㅎ
그 술꾼들이 소주 맥주 양주로 80년대를 장식했지요.
아마도 자동차가 홍수를 이루지 않았다면 그리고 제2의 술안주로 불리던
여자들의 사회활동이 없었더라면 술과 담배가 지천할 겁니다.
ㅎㅎㅎ 각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