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의 징검다리인 수요 말씀 ◈
핵심 주제: 바울의 지혜!(5월 10일)
본문: 사도행전 23:1-10 주관/기도/찬양- 청년회/임한얼님/청년회
산헤드린 앞에서의 바울은 여느 때와는 달리 강경합니다. 마치 마지막 삶을 앞두고 있는 듯 직설적이면서도 도전적입니다.
1. 나는 이날까지 하나님 앞에서 오로지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살았다.(1절)
2. 회칠한 벽이여, 하나님께서 당신을 치실 것이오.(3절)
바울은 시작하는 호칭으로 “동포 여러분(형제들이여)”이라고 합니다. 이 한 마디로 자신이 산헤드린과 같은 계보를 지닌 사람이란 걸 드러냅니다. 대부분 산헤드린을 호칭할 때는 “백성의 관원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이여”라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강경함을 드러낸 건, 표리부동한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의 입을 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율법에 의하면 “한 이스라엘 백성의 볼을 때리는 자는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광을 때리는 것이다.” “한 사람을 치는 자는 거룩한 자를 치는 것이다.”라고 했기에 바울은 말과 삶이 다른 그를 회칠한 벽이라고 칭하면서, 그가 이제껏 해온 행위에 대한 단죄를 내린 겁니다. 사실 출애굽기 22장 28절에 의하면 백성의 지도자(관원)를 욕하는 건 중범죄에 해당합니다.
바울은 아나니아가 탐욕자, 도둑, 매국노 짓을 하는 대제사장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몰랐다고 거짓을 말합니다. 진짜 몰랐다는 말이 아니라, 대제사장으로서의 마땅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 어찌 알겠느냐는 말을 돌려서 한 겁니다. 그리고 곧이어서 현장에 있는 두 부류(바리새파와 사두개파)를 언급하며, 자신에게 씌운 죽은 자의 부활 죄목은 바리새파의 율법과 교리에 의하면 확연히 무죄라는 걸 내세우면서 서로 다른 교리를 지닌 두 파가 싸우도록 유도하면서 위기로부터 벗어나려고 한 겁니다.
바울의 지혜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면서, 바울을 심판하던 자리가 두 파의 싸움으로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바울을 죽여야 한다고 외친 사람들의 입에서 조금도 죄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오고, 심지어 영이나 천사가 바울에게 그 사실을 일러주었으면 어찌하겠느냐는 말까지 등장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지 않습니까?
악(惡)은 누군가를 무너뜨리고 해코지할 때 가장 잘 뭉칩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목적이 달성되면 뭉친 세력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원수가 되죠. 이것이 바로 악의 본성입니다.
바울이라는 같은 먹잇감 앞에서 뭉쳤던 두 집단이 바울의 지혜로 인해 본성을 드러내는 모습을 우리는 어떤 심정으로 보아야 할까요?
난리가 난 현장으로 인해 천부장은 바울을 다시 병영 안으로 데리고 가라고 명령을 합니다.그럼 이 두 집단은 바울을 해하는 걸 중단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악만큼 집요한 세력은 없습니다. 그들은 다시 하나가 되어 목적을 이룰 때까지 행동할 겁니다.
바울이 지혜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사람들이 바뀔 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 즉 사랑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야 하죠. 내 안에 존재하는 두 집단의 세력을 누르기 위해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말입니다.
올바른 지도자를 따르고 돕고 동행하는 건, 악에 넘어지지 않는 것만큼 중요하고 진정한 기쁨임을 깨달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