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정보로 가득 차 있다. 정보도 널리 알려진 옛 정보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보가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어찌 보면 모든 사람들이 정보에 갇혀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정보를 어떻게 가려 뽑아 새로운 지식 생산을 위한 씨앗으로 삼아야 할까.
우메사오 다다오는 말한다. "기존의 혹은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인간의 정보처리능력을 적용시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지식 생산의 기술"이라고. 그는 "지식 생산은 일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루틴워크(정해진 일을 해내는 것)와는 다르다"라며 "지식생산에는 창조라는 요소가 반드시 따라붙어야 한다"고 귀띔한다.
그는 "지식 생산은 생각을 통한 생산"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생각이 주무르고 있는 지적활동에는 개인적인 취향이나 즐거움보다 생산이라는 뜻이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제 지적활동은 더 이상 교양이 아니다. 최첨단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펼치는 지적활동은 사회참여이자 생산활동이라는 그 말이다.
정보 모으는 것이 지식생산 돕는 지름길
"이 책은 how to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책 한 권으로 지식 생산의 기술을 마스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연구방법이라든가, 학습요령이 가득할 것이라고 기대해도 곤란하다. 그런 것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의 역할은 논란을 제공하고 독자들의 정신을 자극하는 것까지다."-24쪽, '지식이 입는 속옷과 겉옷은' 중에서
일본 최장기 스테디셀러로 83쇄(132만부)를 훌쩍 뛰어넘은 우메사오 다다오가 쓴 <지식생산의 기술>(김욱 옮김, 북포스)이 우리나라 서점가에도 첫 선을 보였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지식생산이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여러 가지 정보를 수첩 혹은 카드, 폴더 등에 꼼꼼하게 적어 지식을 키우기 위한 씨앗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프롤로그 '지식이 입는 속옷과 겉옷은?'을 시작으로 모두 9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장 그 수첩엔 무엇이 적혀 있을까, 제2장 카드는 지식의 비망록, 제3장 지식이 숨을 쉰다, 제4장 가정에서 일어나는 지식혁명, 제5장 나는 이렇게 책을 읽었다, 제6장 펜이 키보드에게 항복하다, 제7장 일기는 나와 가족의 역사관, 제8장 연습벌레가 좋은 원고를 낳는다, 제9장 문장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다, 가 그것.
우메사오 다다오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읽고, 어떻게 쓰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라는 점"이라며 "지식생산이란 정보생산과 같은 말이다. 여기서 정보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지혜, 사상, 생각, 보도, 서술, 그밖에 다른 것이 떠오른다면 그것으로 해석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에서 "지식(글)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수첩과 카드, 스크랩북, 파일, 독서노트, e메일, 일기 등을 잘 활용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문학이란 그 화려한 문장감옥에서 탈출하라"고 귀띔한다. 글쓰기를 화려한 문장이 춤추고 있는 문학작품을 쓰듯이 하다 보면 스스로 글에 갇혀 마침내 포로가 되고 만다는 것.
이 말은 언뜻 유명한 중국 시인 구양수가 글쓰기에 필요한 3다(3多)처럼 들린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생각하고(多思), 많이 읽고(多讀), 많이 쓰라(多作)는 그 명언 말이다. 그렇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지름길은 따로 없다. 우메사오 다다오처럼 '어떻게 읽고, 어떻게 쓰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늘 고민해야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새로운 발견은 빛처럼 나타난다
"빛의 입자들은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대뇌를 관통하고 있다. 따라서 '발견'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워낙 작은 입자이기에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대로 사라지라고 내버려둘 것인가, 아니면 그 입자들을 대뇌에 붙잡아두고 나만의 생각으로 키워나갈 것인가. 이 결정적 차이는 '윌슨의 안개상자'와 같은 장치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발견의 수첩'은 '윌슨의 안개상자'에 해당한다."-35쪽, '발견의 수첩'='윌슨의 안개상자' 중에서
'월슨의 안개상자'란 무엇일까. '윌슨의 안개상자'는 1911년 영국 물리학자인 윌슨이 만든 장치로 포화증기 상태에 알파 입자, 베타 입자, 감마선, X선과 같은 방사선이나 대전 입자가 지나가면 그 궤적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새로운 '발견'을 하려면 우리 머리 속에 '윌슨의 안개상자'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메사오 다다오는 새로운 발견이란 이 '윌슨의 안개상자'를 지나가는 방사선처럼 순간적으로 갑자기 나타난다고 말한다. 우리가 매일 흔히 보는 풍경이나 그 풍경 속에 든 사물이라 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뜻을 가지고 '빛'처럼 나타난다는 그 말이다. 새로운 발견이란 그 빛을 붙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그렇다. 우메사오 다다오가 말하는 새로운 발견에 대해 곰곰이 곱씹고 있으면 문득 김춘수 시인이 쓴 '꽃'이란 시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그 시 말이다.
우메사오 다다오가 말하는 새로운 발견도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그냥 무심코 지나치면 한낱 스치는 '몸짓'일 뿐이지만, 빛처럼 순간적으로 반짝 떠오르는 그 무엇을 내가 붙잡아야 그 무엇도 내게로 와서 꽃(새로운 발견)이 되며, 그 새로운 발견이 결국 지식을 생산하기 위한 씨앗으로 영글 수 있다는 것이다.
스쳐가는 생각이 곧 문장으로 싹튼다
"문장은 길이보다는 한 번 읽어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문장은 전보가 아니므로 억지로 짧게 쓸 필요는 없다. 전보라고 해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생각해내야지 짧게 써서 요금을 절약하는 것이 전보의 목적은 아니다. 문장이 간결한 것은 좋지만 이왕 고민해서 쓰는 것이라면 알기 쉽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맞춰야 한다"-175쪽, '누구나 알기 쉽게 써라' 중에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면 꼼꼼하게 정리해서 문장으로 옮겨야 한다. 새로운 발견을 문장으로 옮기는 것, 그것이 곧 지식생산을 위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짤막한 시를 쓰는 심정으로 써라. 불필요한 말은 미련 없이 내던지는 것이 좋다. 요즈음처럼 정신없이 바쁜 세상에 긴 글은 끝까지 잘 읽지 않는다.
우메사오 다다오는 여기서 한 마디 경고한다. "짧은 문장도 좋지만 누구나 쉬이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한다"고. 맞다. 짧은 시 같은 어려운 문장을 모든 글쓰기에 따른 잣대로 삼는다면 사람들이 한번 읽어서는 쉬이 이해할 수가 없다. 이는 마치 시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선시를 읽고 한 번에 이해하라는 것과 같다.
그는 "한 번 읽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은 문장이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문장은 전보가 아니기 때문에 억지로 너무 짧게 쓸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전보라 하더라도 상대편이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어야만 한다. 억지로 전보를 짧게 써서 요금을 절약하는 것은 전보가 아니라는 그 말이다.
우메사오 다다오가 쓴 <지식생산의 기술>은 새로운 발견인 잠시 스쳐가는 그 어떤 빛(생각)을 놓치지 말고 메모해 두었다가 다시 한번 차분하게 정리하여 문장으로 옮겨 쓰는 것이 곧 지식생산을 하기 위한 지름길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 책은 우메사오 다다오가 좋은 글쓰기, 즉 지식 생산을 하기 위해 몸소 겪은 자서전이다.
우메사오 다다오는 1920년 교토시에서 태어나 1943년 교토대학 과학부를 졸업한 뒤 교토대학 인문과학 연구소 교수를 거쳐 현재 국립민족학 박물관 명예교수 및 고문을 맡고 있다. 전공은 민족학, 비교문명론.
지은 책으로는 <몽골족 탐험기><실천 세계언어기행><동남아시아 기행><문명의 생태사관><사바나에서의 기록><지구 시대의 일본인><일본이란 무엇인가><박물관장의 10년><미디어로서의 박물관><정보의 문명학><연구경영론><정보관리론><우메사오 다다오 저작집>(전 22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