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속도를 잃고 풍경을 얻는다. 풍경 속의 사람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그 사람들이 이루는 일상과 마주친다.
승용차에서는 앞차와 신호에 집중한다면 걸으면 지나가는 사람의 숨소리나 발자국 소리도 듣는다.
나는 오늘도 고즈넉한 시간에 강남의 대로를 따라 걷는다.
퇴근시간 전의 그 거리가 어둑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야등이 켜지기 직전이라
도심이 화려하게 변신하기 전이다.
행여 신바람나는 볼거리는 없을까 두리번거리며 연신 걷는다.
어느새 한두 가게에 불이 들어오고
나는 쇼윈도우의 창을 넘어오는 불빛을 받는 고급 서재용 책장에 시선이 끌린다.
걷다가 멈추는 일은 재미 중의 상재미다.
나는 가게로 빨려들어간다.
만만찮은 가구의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좋다.
언제라도 돈을 가지고 오면 내가 보아둔 물건을 쉽게 구입할 상품 지식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장 의자 그리고 서재용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주인이 되어 달라고 조르는 듯하다.
끌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의자는
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사용하던 것으로
당시로서는 고급이었으나 지금은 낡을대로 낡은 고물의자이다.
그래도 나는 추억을 깔고 앉아 날마다 글을 쓴다. 싫지 않다.
하지만 언제까지 추억만을 고집하지는 않을 셈이다.
오래앉아 있어도 고단하지 않는 기능성 의자가 있다는 것을 오늘 확인하였기 때문에
나는 조만간에 지금 사용 중인 의자로부터 자유를 누리고 싶다.
이미 고성능 복합기능을 가진 복사기가 초기 제품과 달리
엄청나게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것을 체감했으므로
추억으로부터의 자유를 과감히 선택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니 추억보다 편하고 볼품있는 것으로 의식전환을 하고 싶다는 결정이다.
나는 팜플렛을 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 얻은 희망을 들고 걸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기도 하고 드나들기도 하는 빌딩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름답고 화려한 축하화분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 모여 있다.
산업디자인학과의 졸업전시장이었다.
그들이 작품 앞에 있어서는 안 된다.
섬세하고 자잘한 작업공정을 축소하여 전시했기에
꽃은 그 작품을 시야에서 밀어내는 역할을 하므로 당연히 입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볼거리 앞에서 서성거릴 이유가 없다.
전시장 안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볼록볼록하게 튀어오른 비닐 포장제로 바닥을 깔아두어
사람들이 걸을 때마다 터지는 소리로 어수선하다.
게다가 노랑테잎의 색이 눈에 거슬린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그 소리가 청각적 효과음을 낸다고 깔았다는 것이다.
서로 체감의 정도가 다르므로 무시하기로 하고 더 깊이 들어갔다.
찹쌀떡과 음료가 차려져 있다. 집에 들어가 혼자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간단식이 차려져 있다. 일석이조의 황재다.
“아싸, 걷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음료와 몇 개의 찹쌀떡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유유히 전시장을 빠져 나왔다.
눈과 입이 동시에 즐거웠다.
졸업작품전시 중이라 학생의 부모들이 우왕좌왕 하기에 전혀 낯설 분위기가 아니다.
전시장을 나온 나는 땀이 나라고 몸에게 보채며 더욱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언덕 길에서는 신바람을 일으키며 걷다가 삼각김밥이 500원이라는 할인가격을 보았다.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건강구호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닌 것같다.
다양한 것들과 교감하는 사이 사는 것같다는 느낌을 진하게 받았다.
그러나 건강에 좋다는 이유만으로 걷는 것이 목적일 때는 잘 걸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걷기 위해 자주 드나들어야 하는 장소를 멀리 잡아두는 것도
하나의 걷기 위한 장치가 된다.
오늘처럼 물리치료를 받는 병원에 가기 위해 걷는 날은 매력만점이다.
내일은 극장 앞에서 보아둔 영화프로 중 하나를 관람하고 들어올 참이다.
이렇게 핑계가 분명하게 걷는 날은 시간낭비보다 효율적 시간쓰기이니
이보다 더 좋은 날도 드물 것이다.
부정적 시간쓰기를 긍정으로 바꾸는 방법치고는 너무나 간단하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나른한 쾌감에서 신선한 가벼움으로 바뀌어 하루가 마감된다.
걸은 덕분이다.
미디에서 미니로 바뀐 이름, 아주 좋답니다. ^^ 거리가 너무나 좋아서 오늘도 명일동 거리를 거닐다 왔습니다. 느티나무는 멋스럽고 은행나무는 귀티나는데 그 나무사이로 걷는 나는 소녀같아지던군요. 나도 일년에 몇번쯤 나무처럼 남을 유쾌하고 속채우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정말 좋은 날, 나무를 보며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를 잘 했다고 고백해주었습니다. ^^
첫댓글 건강해지려면 차를 버려라.. 고 누군가 말했지요.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야 하는데, 사실 늘 장거리를 뛰며 일해야 하는 이들에겐 차가 꼭 필요하구요. 에휴,, 옛날에 자동차 없을 땐 어찌 살았을까요?
차로 가야할 곳은 차를 타며 오메 고마운거 하고 걸을 때는 오매 이것도 좋다고 하면서 늘 좋다 타령하고싶어서요.^^
정감있는 글! 감사합니다.~~^^
미디에서 미니로 바뀐 이름, 아주 좋답니다. ^^ 거리가 너무나 좋아서 오늘도 명일동 거리를 거닐다 왔습니다. 느티나무는 멋스럽고 은행나무는 귀티나는데 그 나무사이로 걷는 나는 소녀같아지던군요. 나도 일년에 몇번쯤 나무처럼 남을 유쾌하고 속채우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정말 좋은 날, 나무를 보며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를 잘 했다고 고백해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