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9년부터 1814년까지의 나폴레옹 시대는 크게 두 시기로 양분되는데 1799년에서 1804년 사이의 공화정 시기와 1804년에서 1814년사이의 제정시대가 그것이다. 먼저, 첫 번째의 시기는 나폴레옹이 제 1 통령(Le Premier Consul)으로서 혁명의 성과를 부분적으로 보존하면서 프랑스의 군사 및 정치를 강화한 시기이고 두 번째 시기는 정치체제를 주로 군사력으로 유지하면서 전쟁, 정복, 합병 등의 수단에 의해 프랑스 혁명 정신을 유럽 각국에 전파한 시기이다.
코르시카 출신의 하급 장교 나폴레옹이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1795년의 반란(Vende'mair 의 폭동)을 진압함으로서 였는데 그 후 그는 1796년 이탈리아 원정군 총사령관에 임명된다. 그의 나이로 볼 때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그는 훌륭하게 임무를 마치고 이어서 이집트 원정을 단행한다. 그러나, 1799년에 총재정부의 부능함에 대해 그는 이집트에서 귀국하여 브뤼메르 무혈정변으로서 저항하고 이것이 성공하여 시에스(Emmanuel J.Sieyes) 뒤꼬(Ducos)와 함께 통령이 된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대외적으로도 활동하여 1801년에 제 2차 대불동맹을 와해시키는데 성공한다. 다만, 마지막 남은 영국과는 1802년 아미앙(Amiens) 조약을 체결하고 휴전하였는데 이 조약에서는 쌍방간의 현상유지를 규정함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유럽에서의 프랑스의 패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조약은 영국에게 있어서는 안전상의 큰 위협이었으며 무역로가 막힌 상인들의 반발을 나타나게 하였고 프랑스에서도 조약에 대한 영국의 불성실한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조만간 전쟁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대외적인 위협요소를 제거한 나폴레옹은 헌법개정을 통해 자시의 독재권을 강화해 나갔는데 1799년 12월 국민투표에서 '공화국 8년의 헌법'을 통과시킨다. 이 헌법에 따라 그는 임기 10년의 제 1 통령이 되고 제2, 3통령 및 국가위원회를 임명할 권한을 가졌다. 그리고, 이 개헌으로 나타난 양원 중 하나인 호민원(Tribunate)은 입법의 토의만 하고 입법원(Legislature)은 입법의 표결만을 하게 결국 제 1통령인 나폴레옹이 실질적인 입법권을 장악하였다. 한마디로 나폴레옹의 정부는 공화제를 가장한 독재였던 것이다.
결국 프랑스 국민은 그들이 피를 흘려 얻은 정치적 자유를 상실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에 대해 나폴레옹 정부는 호율적이고 활동적인 정책으로 대처해 나간다. 그래서, 프랑스 농민의 납세액은 줄어들고 엄격한 재판과 유능한 사법관을 통해 불법과 무질서을 억제하였으며 도로, 교량, 항만, 운하등을 재건하였다. 이러한 국가재정의 개선과 질서회복 및, 사회안정을 꾀하는 정책은 농촌과 도시에서 지지를 받게 되었고 이에 힘입은 나폴레옹은 1804년에 또다른 헌법 개정을 통해 종신임기의 통령이 되었으며 계승자에 대한 지명권까지 가지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이 내놓은 성직자법은 교황청과 프랑스와의 사이를 멀어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구교도 프랑스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1801년 비오 7세와 협약(Concordat)을 체결하여 종교상의 불안 요인을 해결하고 일반대중의 지지를 받게 된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공립국민학교에서 전문적인 특수학교 및 대학에 까지 이르는 국민교육제도를 도입하였고 명예훈장(Le'gion d'Honneur)제도를 시작하였으며 1804년에는 당시까지의 프랑스 법들을 체계화하여 이른바 '나폴레옹 법전'이라 일컬어지는 민법전을 완성하였는데 이 법전에는 프랑스 혁명으 많은 성과들이 포함된다.
1804년 나폴레옹은 비오 7세의 집전으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1세로 등극하고 이로서 프랑스 제 1제정이 성립되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영국을 중심으로 하여 제 3차 대불동맹이 결성되는데 나폴레옹은 신속하게 대응하여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을 격파하고 그 결과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였으며 영국을 제외한 전유럽의 지도를 바꾸어 놓을 만큼의 강력한 정복 및 합병의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유일하게 남은 영국에 대해서는 대륙봉쇄령으로서 고립시키려 하는데 이것이 궁극에는 다른 유럽국가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고 다시금 프랑스와 유럽국가간의 전쟁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대륙봉쇄령의 유지를 위해 고심하던 나폴레옹은 결국 1812년 러시아 원정을 단행하는데 이 원정이 성과 없이 패전하자 유럽 각구들의 대(對)나폴레옹 공격이 활기를 띠게 된다.
1813년 라이프찌히에서의 패배를 계기로 나폴레옹 1세는 퇴위하고 프랑스 원로원은 부르봉왕가의 복고를 결정하여 루이 18세가 등극하지만 엘바섬에 유배된 나폴레옹은 1815년 2월에 다시 파리로 돌아와 집권하게 된다. 하지만, 6월에 워털루에서의 패배로 나폴레옹 시대는 완전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출처:http://rose0.kyungpook.ac.kr/~z971554/archiv/intro.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