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반 감인 작은 녀석이 작년에 친 사건이 '학급 회장 출마 선언' 이었다.
담임의 가정 통신에 힘입어 '민주적인 학급' 을 만드는 데 자신을 바치겠다는 녀석의 결심을
막을 길이 없어 막막하게 앉아 있다가, 나보다 더 어이없어 하는 남편을 설득해 녀석의 요구
대로 선거용 벽보를 대충 그려주라 하고 그래도 걱정이 되어 녀석의 황당무계함이 몰고올지도
모를 혹시라도의 당선을 막고자 담임께 편지띄움이 내가 그 녀석과 함께 친 사건이었다.
녀석과 내가 합작한 그 사건이 그 큰 오해의 도화선이 되었던 걸까...
결혼 6개월 만에 터진 예상치 못한 도발령으로 입덧을 마악 시작하던 나는 격주말 부부가
되었다가 날 따라 내려왔던 친정을 등지고 전혀 낯선 땅에 졸지에 부려지게 되었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할 현실은 출산을 코 앞에 둔 몸만큼 무거웠다.
대학 자취시절보다도 못한 월세방에, 매일 싸야 하는 두 사람의 도시락, 방 초입 골목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은 구더기도 보이고, 비가 오면 그 골목에 좌악 깔리던 공포스럽던 지렁이들,
꺼뜨리지 않고 갈아넣아야 했던 연탄불, 다락 한 구석에서 쥐약 먹은 쥐의 썩어가던 냄새...
내가 동의할 준비조차 없이 밀어닥친 처.음.겪.는. 현실이었다.
(현실은 늘 이렇게 예의없이 밀어닥침을 그땐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밀어닥친 현실보다
더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은 현실의 '예의없음' 이었을 것이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낯선 내 몸의 변화와 출산, 그리고 책임져야 할 어린 생명...
그 사이에서 죽어라고 내가 찾았던 것은 상황에의 빠른 적응이나, 상황의 탈출을 위한 시도가
아닌 '예의를 갖춰줘' 였으니 얼마나 현실을 모르는 어린 아이였던가.
그러나,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었음을 나 자신도 몰랐었다.(내가 모르는 걸 누가 알겠는가)
현실의 그 막막한 고달픔을 투정부리던 그때의 내게 남편이 한 말은 두고두고, 지금도
토해내는 '아픔 한 숟가락' 이 되었다.
' 남들 다 그렇게 사는데, 왜 너만 힘들어 하냐? 남들은 다 그렇게 사는데... 왜 너만...'
남들과 상관없이 내 삶의 이유를 내 안에서 찾아야 하는 나는, 지금도 이 말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나보다. 원치 않아도 자꾸 올라와 오늘도 또 토해냄이...
학교 생활 내내 적응을 어려워 하던 녀석의 출마 선언에 밀어줄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이
자식의 모자람을 '모르는', 또는 자식을 '팽개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자인 것 같은 오해를 낳게 한 것일까.
' IQ 검사는 해 보셨나요? 말씀에 어폐가 있네요. 하루종일 보내서라도 잘할 거라면 보내겠다고 하시면서
천안의 인애학교는 보내실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나도 모르게 꿀꺽 삼키고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끊어버린 전화를 타고 들어오는
내 예의없음을 탓하는 담임의 문자도 꿀꺽 삼켜버린 나는 지금도 그 말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가끔씩 토해내고 있다.
참고 : 내 글이 누군가를 고발하는 글이 되지 않기를, 다만 상처를 털어내어 딛고 이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토해낸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기에, 살다
보면 쌓이는 부지간의 상처들을 끌어안고 힘들어 하는 이에게 이런 토해냄이 자신을 또
돌아보고 반성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첫댓글 가슴이 미어진다,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경험해보셨나요?
아.마.도... 가슴에서 철철 흐르는 피도... 그 피가 멎고 이제는 딱지로 변해가는 중이겠지요...피해가지만 않는다면 누.구.든 마주치는 현실일 거예요. 피해가지만 않으면...
다 토해내세요. 얼른얼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