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5. 마흔두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1장)
신앙고백
찬송 28 복의 근원 강림하사
기도 조용림 권사
성경말씀 빌립보서 1:10~20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찬송 474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가족방문 정귀자 권사 딸 사위
찬송 456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세계 최대의 창살 없는 감옥, 가자지구는
세종시 넓이에 팔레스타인 주민 23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곳은 이집트의 땅인데 이스라엘이 1967년 점령했습니다.
이후 2005년 평화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이 정착촌을 폐쇄하고
자국민을 철수시켰습니다.
그리고 2007년부터는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16년 만에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 5,000발을 쏘고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죄 없는 수천만 명의 어린애 국민만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세상이 온통 전쟁 도가니 속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허구한 날 밥 타령이나 하고 불평만 하면서 살아야 되겠습니까?
10절입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절,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절,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절,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절,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18절,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절,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벌써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우리 요양원 담쟁이넝쿨이 아름답게 물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렇게 도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10절입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오늘 말씀은 빌립보서 서론에 해당됩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 감옥에 처음 투옥되었을 때에
빌립보 교인들이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에베소 감옥에 보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너무나 고맙다고 쓴 편지입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인들도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그래서 상당 기간 동안 사도바울을 돕지 못했습니다.
그러할지라도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 국가 부채가 1,100조입니다.
그러니 5천만 국민 모두가 엄청난 빚을 안고 사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국민이 온전하겠습니다.
그러니 교회 재정도 코로나 이후 엄청 어렵습니다.
그래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7억 명이 넘습니다.
해마다 굶어 죽는 사람이 1,000만 명이 넘습니다.
하루에만 굶어 죽는 사람이 25,000명에 달합니다.
4초마다 한 명씩 굶어 죽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떻습니까?
밥맛이 없으니,
죽 사 와라.
통닭 사 와라.
고기먹으로 가야겠다.
그러니 식사때마다 음식물 쓰레기가 지천입니다.
11절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엊그제 우리 이현우 성도님 중환자실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현우 환자 보호자 되시지요?
기저귀, 물티슈 등 다 썼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한 보따리 물품을 사다 드리면서 이현우 성도 면회를 했습니다.
살려는 의지가 강해서 눈빛이 초롱초롱했습니다.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
불쌍한 우리 이현우 성도님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기도를 마치니
우리 이현우 성도님이 우시는 겁니다.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가족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하니
목사님 홀로 장례 치를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목사님 홀로 장례 치러드린 분이
우리 소현순 집사, 우리 이정의 권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현우 성도가 얼마나 살지? 의문이지만
이렇게라도 살아 있으니 고마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이 이렇습니다.
그런데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기고만장하지 않습니까?
기를 쓰고 고함을 지르고 아등바등거립니다.
우리 박 집사님과 부부의 연을 맺었던 추 집사가 있습니다.
연세가 84세입니다.
요양원에 있는 우리 박 집사를 버리고 다른 영감을 얻어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겠습니까?
어제도
60세, 유 선생이 오셔서 면접을 봤습니다.
과거에 피아노 학원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혼하고 자식도 없이 홀로 나이가 들어 먹고살기가 막막한 것입니다.
그러니 불안불안,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양보호사 일을 해 보려고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11절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우리 인생이 돈 때문에 사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한 흥부보다도 훨씬 가난한 구두 수선쟁이가 있습니다.
요즘 누가 구두 수선하겠습니까?
그렇지만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구두수선을 해서 허덕허덕 먹고사는 친구입니다.
겨울바람이 쌩쌩 불었습니다.
구두 수선을 하기 위해서 가죽을 사러 시장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어둑어둑해서 더듬더듬 집에 오고 있는데
예배당 모퉁이에 왠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뱅이 구두 수선쟁이는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여보시오!
이렇게 추운 겨울에
이렇게 쓰러져 있다간 얼어 죽을 것이오.
그러니 우리 집으로 갑시다.
그리고 빵 한 조각 남은 것을 대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갈 데 없는 이 사람에게 구두 수선일을 가르쳐 주면서
가난을 함께 나누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구두수선을 잘한다고 소문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뱅이 구두 수선쟁이는 점점 살림이 늘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돈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배 터지게 맛있는 것을 먹는다고 살 수 없습니다.
서로서로 사랑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요양원이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이 이야기는 톨스토이가 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 미하일에게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겐 자기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가 있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세 가지의 질문의 답을 찾을 때까지 인간계로 내려가 살아라.
그래서 천사 미하일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기 미래를 보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돈 한 푼 없는 우리 이현우 성도가
주님의 사랑 때문에
최고의 병원시설에서 치료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돈만 벌려고 요양보호사를 한다면 절대 오래 못 버팁니다.
요양보호사는 사랑과 섬김의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목적으로 목회자가 된다면 삯꾼, 짝퉁 목사입니다.
그렇다고 가난하다고 목회를 포기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의 말씀은 큰 복음입니다.
11절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정말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복음입니다.
13절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눈물이 납니다.
맞습니다.
내가 하려고 하면 힘들고 지칩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런 일일지라도
주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나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도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서
열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능력 주시면
우리 선생님도
천재 아들도 잘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더 잘 되게 하십니다.
14절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절,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절,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절,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빌립보 교인들이
늦게나마 에베소 감옥에 있는 사도바울의 괴로움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인들이 의도적으로 늦게 참여한 것은 아닙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나름대로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라 부채도 1,100조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반대하고 방해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어느 곳에서든지,
어느 직장이든지
반대하고 헐뜯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덜 성숙한 사람이 혹시 나는 아닙니까?
갈라디아서 3장 1절입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본 소설, 빙점을 읽어보면
사랑하는 부부인데도 평생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습니다.
일본의 문화성이 이렇게도 답답한지 몰랐습니다.
어쩜, 이것이 우리 인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아내가
남정내와 단둘이서 함께 있었다는
작은 오해때문에
작은 이유 때문에
평생 증오심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인생이 이렇게도 찌질하고 옹졸한 것입니다.
빙점은 0도입니다.
물이 녹기도 하고 얼기도 합니다.
그러니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제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기적으로 꾸깃꾸깃 객기 부리지 말고
헐렁헐렁 살아가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