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로 가는 길--
음치의 특징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노래방에서 선곡할 때 꼭 부르기 어려운 곡을 부르려 한다는 것이다. 젊은 날에는 친구들이 모임을 한 뒤에는 곧 잘 노래방으로 갔다. 노래에는 자신이 없어서 뒤에 물러나 있으면 이런 나에게 짓궂을 정도로 마이크를 들이대는 친구가 반드시 있다. 사양을 하다가, 마지 못해 선택하는 곡이 ‘삼포로 가는 길’이다. 나는 음치가 아닐까 봐서 음치 티를 내는 짓을 이렇게 한다.
한 소절을 끝내기도 전에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가 나를 도와주려 마이크를 쥐고, 이중창으로 부른다. 다음 소절이면 이제는 완전히 그의 노래가 되고, 나는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겨우겨우 따라가는 꼴이 되어버린다.
그때 친구들이 나에게 하는 말은, 내가 하는 짓이 바로 음치의 규정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삼포로 가는 길’을 놓지 못하는 걸까. 노래 가사 때문이다. 삼포로 가는 길은 고향으로 가는 길을 상징한다.
바람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다네
굽이굽이 산길 걷다보면
한 발 두 발 한숨이 나오네.
삼포를 고향으로 바꾸면 노래 가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내가 유년을 보낸 곳은 경주의 천포라는 마을이다. 너른 들녘을 가로 지르는 길을 따라가면 내가 어린 날을 보냈던 마을에 갈 수 있다. 노래 가사대로라면 굽이굽이 산길을 걸어가야 함으로 평탄한 길은 아니다. 그러나 나의 고향으로 가는 길은 평탄한 들길이다. 들녘을 건너 가는 평지 길도 마음속으로 그리는 길이 되어버리니 수월한 길은 아니다. 노래 가사는 가기 힘들다는 것을 은유한 것이리라.
노래 가사에 나오는 삼포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나타낸다. 가는 길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지만, 그곳에는 ‘정든 님’이 있다. 즉 나의 사랑이 있는 곳이다. 사랑만인가. 행복이 있는 곳이다. 사랑-고향 마을-꽃대궐에서 보낸 나의 행복했던 유년이 있는 곳이다. 이 모든 것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상상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유토피아이기 때문에 은유로 표현하였을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모두가 타향살이라고 하였다. 고향을 떠나서 고향을 유토피아로 생각하면서 산다고 하였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사는 사람은? 그들도 고향을 떠나서 산다고 하였다. 고향은 시간의 강물에 휩쓸려 저만치 흘러가버렸다. 초갓집도 꽃대궐도 휩쓸려가버려서, 고향의 땅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삼포로 가는 길은 어느 누구에게나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희끄므레한 모습으로만 보일 것이다. 산길을 아무리 굽이굽이 돌아가도 길은 끝나지 않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이 또 나타날 것이다. 산길을 돌아서 가면 삼포로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헛소리이다.
내가 삼포로 가는 길을 노래하고, 내 고향 천포를 찾아가는 꿈을 꾸지만 결코 갈 수 없는 곳이므로 내 노래도, 내 꿈도 ‘헛소리’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질 뿐이다.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이 있지만 나는 결코 들길을 끝까지 걸어가지 못할 것이다.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노래방에서 친구가 매끄럽게 넘어가는 목소리로 ‘삼포로 가는 길’을 노래 부르더라도, 음치인 내가 꺽꺽 막히는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만큼 내 마음을 감동속으로 몰아넣지 않는다. 내가 부르는 내 노래는 헛소리이긴 해도 나를 나의 유토피아로 데려가 주기 때문이다. 헛소리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지만은 않구나를 느끼면서 음치인 내가 노래 가사를 흥얼거린다. 잘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를 선곡하면서, 헛소리나 하면서, 오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거짓말과 헛소리라는 주제로 글을 시리즈로 쓰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한 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