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텔로> 가 아닌 오페라 <이아고>가 될 뻔 했다가 다시 오페라 <오텔로> 가 된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텔로 였습니다
오늘 후기는 시간의 흐름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 가보겠습니다
3시 30분 예술의 전당 도착~ (일요일 5시 공연이 좋은 건 차가 막히지 않는다는 것이죠)
오전에 또 일 좀 하다 와서 피곤합니다 이따 졸까봐 잠시 차에서 눈감고 20분쯤 졸고 나서
나와 본 예당이 한가로이 너무 예뻤어요 음악당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페라 극장으로 가는 길이 휴일의 표정을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오페라 극장 2층으로 연결된 문으로 들어가니 와우 새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생겼네요~ 다들 이런 곳을 원했는지 사람이 바글바글합니다 식사시간도 아닌데~ 저도 커피 한 잔 사서 2층 로비에서 오페라 극장 1층을 내려다 봅니다
2층에서 찍으니 배너가 반듯하게 예쁩니다
1층에서 찍으면 이렇게 보이네요
예매한 티켓을 찾아서 자리를 찾아 앉습니다 B구역 10열 정가운데~ 제가 좋아하는 자리죠 정말 각도가 좋아요
이제 공연이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공연 중 제 의식의 흐름대로 기술해 보겠습니다
1막
화이트 가면과 블랙가면을 들고 이아고가 등장하여 하얀 가면을 버리고 블랙을 손에 쥐고 하얀 빛 속으로 뛰어듭니다~ 오호 ~ 시작이 무척 멋지다는 생각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집중을 합니다 실은 오늘 극 장치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선을 상징하는 화이트 가면,, 악을 상징하는 블랙 가면 ~ 3막에서 오텔로도 블랙가면으로 얼굴을 점령당하죠(본격적인 악성의 발현을 상징하는 듯)
1막의 시작은 아시다시피 군중 씬이 많은데 무대배치가 너무 군중을 앞쪽에 몰아넣어 답답한 느낌의 연출이라는 생각이 계속 스멀스멀 나옵니다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도란도란 연극하는 느낌이 좀 아쉬웠습니다 오늘 무대가 전체적으로 좁아보이는 것이 세트의 배치때문인지 연출 때문인지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1막이었죠
1막, 2막까지는 이아고가 거의 무대를 장악합니다 이아고역의 프랑코 바살로는 오늘 모든 배역 중 가장 노래를 잘합니다 발성도 볼륨도 톤도 무척 좋게 들리는 바리톤인데요 특히 1, 2막에서 그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기대했던 오텔로 이용훈은 등장부터 오케스트라의 현란한 화음을 뚫고 아름다우면서도 청량한 테너소리가 솟아 오릅니다 오~ 볼륨도 좋고 흔하지 않은 음색이, 게다가 모든 소리에 느낌이 담겨있는 그런 목소리였습니다
우리나라 테너가수에게서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였어요
그런데 오텔로가 자꾸 멀어집니다 무어인 대장, 전사, 그리고 강인한 군인의 당당함보다는 출발부터 의심에 쩔 준비가 된 인간남자 오텔로부터 보여 1막이 확 다가오지 않고 있습니다
1막 끝 오텔로와 데스데모나 이중창은 둘이 무척 사랑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부르는 아름다운 이중창인데
이미 의심의 끝자락을 잡은 듯 한 오텔로와 아름답고 기품있는 데스데모나이기에는 자태도 목소리도 좀 동떨어진 흐라추이 바센츠의 이중창으로 끝난 1막은 느낌표보다는 물음표를 많이 새겼습니다
2막
이아고의 계략이 본격적으로 날개가 돋는 2막에서는
정말 이아고의 열연이 극을 이끌어갑니다 그다지 악하게 생기지는 않은 바살로가 악인의 가면을 감추고 능수능란하게 음모의 날실과 씨실을 엮어댑니다
아쉬운 건 카시오~ 특히 이아고와 함께일 때 그의 목소리는 너무 묻혀서 상대적으로 부족함이 느껴지는 아쉬움이 자꾸 느껴집니다 극 중 이아고 음모와 오텔로 의심의 원인제공을 하는 중요 인물임에 비해 그의 목소리나 연기가 조금 쫀쫀하지 않은 느낌이 의식으로 자꾸 들어옵니다
2막 마지막 오텔로와 이아고 중창은 정말 압권이었어요
탄탄한 바리톤 바살로와 드라마틱한 미성의 이용훈의 2중창이라니 극이 다시 살아나 의식 속으로 쳐들어옵니다
인터미션
너무 집중하면서 봐서 눈알이 빠질 것 같아 잠시 눈을 감고 쉽니다
1, 2막으로 벌써 거의 1시간 30분 경과~ 배가 고프기 시작합니다 (당이 떨어질 때가 되었죠)
3막
드디어 3막, 이용훈의 비상이 시작됩니다
1, 2막에서는 이용훈이 오텔로를 하기에는 너무 연약한 느낌, 좀 나약한 오텔로 라는 인상이 자꾸 그의 노래를 방해합니다 여전히 오텔로 이용훈은 오텔로보다는 햄릿을 연상시키는 고뇌와 갈등에 쩌는 캐릭터로 보이지만 그의 처절한 연기에 마음이 끌립니다 무대로 올라가서 위로해주고 싶을 만큼 여심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는 이용훈 테너~ 그의 진가는 이런 면이구나 라는 이해와 통찰이 1막의 모습을 다 지웠습니다
고뇌의 끝에 이성을 잃고 쓰러진 오텔로에게 블랙 가면을 씌우고 사악하게 웃는 이아고의 모습에서는 소름이 돋아 납니다 미친 연기에요
4막
이제 음모와 의심의 대장정의 끝, 4막은 이용훈 연기의 끝장을 목격합니다
절규하는 이용훈 테너의 음성은 정말 눈물이 맺힐정도로 가슴을 강타하고 온몸을 다 쓰는 그의 연기에는
그냥 이용훈의 오텔로구나 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의구심이 녹았습니다
그러나
데스데모나 흐라추이 바센츠, 아 그녀는..........
예쁘지도 전달도 안되는 퍼지는 발성으로 등장 때마다 감동을 깨는데 4막에 그녀가 정말 잘 불렀으면 했던 버들의 노래와 아베마리아도 공감이 안된다고 자꾸자꾸 의식이 소리칩니다
마지막 침대에서 오텔로가 데스데모나를 목졸아 죽이는 씬에서는 체격이 여윈 이용훈이 떡대 좋은 그녀를 과연 제압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녀의 자태는 데스데모나이기에는 부적절합니다 급기야 침대에서 거꾸로 머리를 아래쪽으로 박으면서 죽는 씬에서는 젖혀진 잠옷이 훌러덩 제껴져 마지막 오텔로가 자결하는 씬이 진행되는 내내 튼튼한 그녀의 다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참 또 한번 무대위로 올라가서 잠옷을 내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막을 내리고 관객들은 환호합니다 이제서야 배가 너무 고프다고 의식이 마구마구 두들겨줍니다
커튼 콜의 열광은 이유가 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밖에 나와보니 8시 10분, 어스름한 저녁 빛에 감싸인 예술의 전당이 또 아름답습니다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의식은 다시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무슨 가면을 선택하고 살아갈 것인가
선의 화이트 가면, 악의 블랙 가면 중 우리는 적어도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