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위한 복음
4. 그리스도의 십자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설교를 위한 묵상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꿈을 이루는 것이다! 꿈을 이룬다는 것은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는 일이다. 자신의 소원은 간절히 바라고 또 원하는 일이다. 그 바람과 소원은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소원을 주셔서 그 소원을 행하게 하시고 그것을 성취하여 기쁨과 보람을 얻게 하신다. 그리고 참된 소원과 아름다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은 자신을 바친다. 자신을 바칠 수 없는 일은 사실 꿈이 아니며 그는 진정으로 그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바침으로 결혼이 성립되듯이 진실한 사랑은 자신을 바침으로 그 사랑은 온전하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한 알의 밀로서 땅에 뿌려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으로 규정하셨다. 그것은 자신의 복제를 의미한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라고 자신을 던지셨다. 그것은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바치셨다는 의미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꿈이 곧 하나님의 바람임을 확신하셨다. 예수님은 심지어 하나님이 자신 안에서 말씀하시며 행하신다고 강조하셨다. 그만큼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셨다는 말이다. 성령의 인도함은 결국 하나님의 꿈을 마음에 받는 것이다. 그것은 소원이 되고 결국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삶이 한 알의 밀알로 땅에 심겨지는 삶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인생목적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죽으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17~18, 새번역성경
베드로 사도의 말씀은 교회에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다가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유는 죄를 사하시기 위함이다. 죄인을 위하여 죽으셨다. 왜 죄인을 위하여 죽으셨는가? 그 이유는 죄인인 우리, 곧 불의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가? 우리는 왜 하나님 앞으로 인도되어 나가야 하는가?
이 마지막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려면 성경 전체 이야기를 동원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은 구약의 제사제도를 제정하셨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는 여러 종류의 동물이 사용되었다. 그 동물들은 피를 흘려야 했고 그 피 흘림을 통해서 사람들의 죄를 씻어야 했다. 그렇게 죄를 씻어야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지은 죄 때문이다. 그래서 죄 용서를 받아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사람은 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가? 하나님은 왜 사람을 자신의 거룩한 처소로 부르시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는 창세기에 나온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지으셨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입히시고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을 다스리게 하셨다. 즉, 세상을 관리하고 가꾸어 모든 생명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게 하셨다. 이것이 인간의 존재목적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소원을 가지고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꿈을 좇아서 열정을 바치고 희생을 감수할 때 참 만족과 보람을 느끼는 존재다. 그러므로 참된 꿈은 자신과 세상을 행복하게 한다. 그 일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와 어미의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부모와 어미는 자신을 바친다. 그리고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참된 꿈은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며, 그 꿈이 이루어질 때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애쓴 그 사람의 희생과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꿈은 인간의 작은 꿈들로 나누어지고 그 작은 꿈들이 이루어지는 세상은 결국 하나의 거대한 작품을 이루어 보기에 심히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모든 생명에게 자신을 복제할 수 있도록 꿈의 씨앗을 심으셨다. 그것은 유전자(DNA)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사랑을 통하여 그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게 하셨다. 그것은 마음에 소원으로 들어온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소원을 가지게 된다. 그 소원은 간절한 바람이며, 자신이 그 일을 꼭 이루고 싶다는 바람이다. 그가 그런 바람을 갖게 된 이유는 그 일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어떤 일도 고통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 될 것 같았다. 아니 자신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 길을 걷는다. 그리고 앞으로 그 꿈이 이루어질 모습을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지금 당장 좀 부족하고 어색한 것은 문제가 아니다. 이제 시작했으니 앞으로 언젠가는 반드시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특출함을 자랑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일에 동참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이 하나님의 꿈에 동참할 때 그는 비로소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이루는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자신이 고난을 받을지라도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게 된다. 아무려면 어떤가? 이 길이 옳으며 참되며 아름다운 결실을 하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데!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의 꿈을 받아 그 꿈에 동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 가지 않으면 사람의 꿈은 왜곡된다. 왜곡된 꿈은 사실 생명을 살리기보다는 생명을 죽인다. 아름다운 꿈이 있으며 파괴적인 꿈도 있다. 거룩한 소원과 바람도 있고 흉악한 음모와 더러운 탐심도 있다. 왜곡된 꿈을 따라 살면 자신도 죽고 가족과 이웃도 해를 당한다. 결국 세상이 혼란에 빠지고 황폐하게 된다. 그것은 죽음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고 자신을 바치셨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있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머물게 된다. 하나님과 함께 머물게 되는 곳은 성전이며 에덴동산이다. 그곳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이 하신 일과 놀라운 계획을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 자신이 동참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감사하고 놀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삶이다.
예수께서는 그런 삶을 가리켜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그 점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한복음 15:4~10
예수님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안에 거하면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다. 그 열매란 곧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는 것이며, 자신의 소원과 바람을 이루는 일이다.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는 일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일이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계명은 반드시 지켜야 할 법조문 같은 것이겠지만, 사실 하나님의 계명의 핵심은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 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일과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예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고 고난을 당하셨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기를 더 바라시는지도 모른다. 다음의 말씀을 보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한복음 14:21, 23~24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이들에게 오셔서 거처를 함께 하시려고 오늘도 온 땅을 두루 살피신다(역대하 16:9). 시편 42편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갈급(渴急)함을 고백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찾아오시고 또 가까이하시려고 노력하신다. 호세아의 고멜 이야기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누가가 들려주는 탕자의 이야기는 아들을 기다리며 함께 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잘 드러내주었다. 하나님의 바람이 바로 그런 것이다.
특히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은 아예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도시를 땅으로 가지고 오신다! 그 모습은 정육면체인데 성경에서 정육면체의 모습을 한 곳은 지성소이다. 지성소의 크기는 한 변의 길이가 10미터인 정육면체의 방이다. 그런데 장차 이 땅에 내려올 하나님의 신전도시인 예루살렘성의 크기에 대하여 요한계시록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었다: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요한계시록 21:16
만 이천 스다디온(stadion)이다! 오늘날 경기장을 영어로 스타디움(stadium)이라고 부른다.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을 올림픽 스타디움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스타디움은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경기가 열리던 경기장 이름이다. 그 경기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은 육상경기 즉, 달리기시합이었다. 그때 달리기 시합의 거리를 1스타디온(stadion)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거리로 환산하면 185미터 정도 된다. 오늘날 올림픽 스타디온은 더 확장되어서 400미터 트랙을 가진 규모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는 12,000스타디온으로서 오늘날 거리 치수로 환산하면 2,220km가 된다. 서울에서 홍콩까지의 거리 정도 된다. 또한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의 거리다. 그렇게 큰 도시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다. 이것은 온 세상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 안으로 들어온다는 말이기도 하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처소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하시는 세상을 소개한다. 에덴동산도 그렇고 새 예루살렘 도시가 땅에 내려와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게 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결국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성경이 말하는 참 인간의 삶이라 하겠다. 그곳이 하나님 나라다. 그리고 그 삶은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는 삶이다. 그리고 그 작고 다채로운 꿈들이 아름답게 피어나 조화를 이루는 세상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최초의 세상이며, 마침내 완성될 하나님 나라다. 그리고 우리는 이 위대한 계획 가운데서 하나님의 꿈에 맞추어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준다. 그것이 주의 보혈이 가진 능력이다. 우리를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뵙게 되고 그 영롱한 꿈을 보고 우리의 소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소임이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의 꿈이 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한 알의 밀처럼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 결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충만한 곳이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