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이서영
문을 가져온 사내들 외
견적서대로라면
기술자 세 명이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나이 든 곱사등이 사내와 허리가 나뭇잎처럼 얇은
사내아이 하나 달랑 딸려왔다
키보다 두 배나 큰 강화유리문
굽은 등에 얹어 사내는 무릎을 세운다
가까스로 일어서서 반듯해지고 싶으나
좀처럼 제 자리를 못 찾는다
어쩌면 일어설 수 없을지 모른다
사내는 몇 번이나 문을 세우려다
세우려다 주저앉아 문에 기대어
담배 한 개비 태운다
아이는 한 걸음 떨어진 옆에서 맴맴 돌다
마지막 담뱃재 막 꺾이는 순간
허리춤을 추켜올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나뭇잎이 한번 반짝 제 몸을 뒤집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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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조각
기울어진 언덕
유월의 들꽃
개망초 엉겅퀴 비비추 꽃다발
무릎을 꿇고
맹세했잖아요
멀어지는 뒷모습 따라가는
긴 그림자
문이 닫히고 나를 두고 사라지는 것들
믿을 수 없어요
기다림은 오래 장미 덤불 속에 있습니다
찬장 속 식기 반짝이는 칼과 포크 다정한 미소 하얀 에이프런 주전자는 뜨거워서 웁니다
당신은 저 문처럼 인생입니다
당신이 준 꽃다발 손목 움직임 의도 헝클어짐 이 선과 형태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날마다 새처럼 노력합니다
허공을 버리기 위해 당신을 부르기 위해
기억하지 못한 것만 남았다 분명히 부재하면서 언젠가는 나타날 반드시 나타나는
이토록 텅 빈 부분이 당신입니까
뻐꾸기의 초침 소리에서 고양이의 심장 소리에서 부스스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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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2021년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안녕 안녕 아무 꽃이나 보러 가자』가 있으며 이동주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