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했다.
추석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설명절이라 하여 찾은 큰 댁은 1월에 몰아치던 한파가 물러가고 따뜻한 기온이 감도는 일기와 대조적으로 썰렁하다. 거기에 고운 눈망울들이 없고 빈 축사만 덩그러니 있었다.
추석 때 그들의 선한 눈망울들을 렌즈에 담으려 할 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촌부에게 다가오며 시선을 맞추어 주었었다. 안 그러면 소리라도 질러 주시하게 하여야 사진작품의 얼이 담기게 해야 하는데 녀석들에게는 그리 할 필요가 없었다. 촌부가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준 것 이상으로 촌부는 그들에게 강한 호기심이었으리라.
빈 축사에서 장조카내외의 쓰린 마음을 읽다.
“하얀 천으로 축사를 모두 감싸더라구요. 주인은 집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게 해요. 그 사람들이 물러간 다음에 나가보니 그 많던 소와 사슴들이 없어져 버린 거에요. 50마리나 되던 게 없어지니 가슴이 에려서 며칠간 밥이 안 넘어 가더라구요. 맥놓고 있었더니 버섯이 얼어버렸어요. 우리 소들이 죽어 왕래가 관계없지만 이웃집 소가 있어서 조심스러워요. 이번 명절제사는 각자 집에서 지내기로 해요.”
장조카 내외의 모습이 헬쓱했다. 작년 가을 흉년과 이번 구제역 때문에 이번 설날은 팍팍하게 살아아가는 이야기들이 많다.
2010 추석날 촌부를 구경하던 소들
“야야 형아 왔다. 넌 어찌된 녀석이 대낮부터 낮잠이냐. 그 좋은 술을 혼자 마셨다냐?”
“밤새기 하고 와서 지금 눈붙인 거야.”
어머니가 거들어주지 않았다면 촌부는 동생을 알콜중독성 주간수면병자로 몰아부칠 뻔 했다. 밤새는 일은 도로를 막아놓고 지나가는 차량들 소독액으로 샤워시켜 주는 일이다. 고통 속에서도 동생은 부업거리 소식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지난 1월은 추위에 고생 많았을 거다.
“그래도 이 겨울에 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으냐. 나라의 녹을 이런 때 받아먹어 보는구나.”
정다운 시어머니 & 며느리
“어머니, 우리 큰 애가 숙대 장학생으로 합격했어요.”
이 한마디에 <개천에서 용났다. 마을 입구에 프랑카드라도 걸어야 할 일이다.> 뭐 이런식의 찬사가 나올 줄 알았다. 이상하게도 반응이 의외로 김나간 밥 같다.
<숙명여대가 서울에서 얼마나 대단한 학교인지 모르시는구나. 하긴 촌부의 어머니시니 그렇기도 하겠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느닷없는 어머니의 한마디에 빵 터졌다. 하하핫 껠껠껠
“수캐가 없어서 새끼를 갖지 못해.”
<숙대>를 <수캐>로 알아들으시고 재미있는 멘트를 날리시는 우리 어머니, 심형래 뺨치는 개그가 따로없다.
내 이름 어디에 대학교가 들어있기 때문일 거야~
식구들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다.
너무 크다느니, 얇다느니 타박 속에서도 만두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상에 그득하다.
“야, 이녀석 저리 가지 못해?”
“여보 이쁘게 말을 해봐요. 정주야 이리 와봐라.”
밀가루 반죽을 뚝 떼어 노리개로 주니 아이가 더 이상 만두상으로 덤비질 않는다. 역시 어린이집 원장답게 아이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다.
무럭무럭 자라 효도하는 아들이 되거라
“엇 형님과 아이들이 어디 갔죠?”
“계형네 비닐하우스에 탁구치러 갔다.”
어디서 갖다 놓았는지 탁구대가 있고 촌부의 동갑내기 계형과 조카 녀석이 탁구를 치고 있었다. 핑퐁볼이지만 녀석의 받아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요즘은 농촌의 놀잇거리가 많이 변화했다. 진도리, 자치기, 눈밭썰매타기 그런 종류의 놀잇감을 찾아보려 해도 동네 아이들이 많지 않아 그 풍경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시며표 만두
“차례가 끝났으니 어머님 세배를 받으세요.”
동생은 방역근무 때문에 급히 나가고 형님과 함께 어머니께 세배를 드린다.
“어머니 120 천수를 누리셔야죠.”
“내가 네게 무슨 못된 일을 했기에 그런 악담을 하니?”
그리 되받으시면서도 흐뭇한 미소가 배어났다. 아이들에게 세배 용돈을 나누어 주면서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축원해 본다.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에서는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같은 어려운 것들 말고 살면 살수록 좋은 세상이 다가올 거라는 좋은 희망이 아이들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부지런하면 시골난방 걱정 뚝!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고구미님 감사합니다. 뜻하신 일 모두 이루시는 토끼해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