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 비센스(Casa Vicens)
「카사 비센스」는 어떠한 양식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가우디만의 조형적 감각이 드러난 작품이다. 그것은 벽돌, 돌, 잡석, 타일과 같은 강한 질감의 자연적 재료를 사용하여 새하얀 균질의 미를 부르짖던 당시 모더니즘 양식들 속에서 혁명적인 작품으로 주목을 끌었다. 초록색과 크림색 타일로 덮인 '색의 결정체' 「카사 비센스」의 건축주가 흥미롭게도 타일공장 사장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가우디가 얼마나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공사에 임했을지 짐작할 수 있겠다.
가우디가 「카사 비센스」의 건축 부지를 답사했을 때, 그곳엔 노란 아프리카 금잔화가 양탄자처럼 깔려있었고, 그 가운데 거대한 야자수가 있었다고 한다. 야자수의 잎이 하도 무성하여 그 안에 벌레를 잡으려는 새들로 가득했는데, 가우디는 바로 이 모티프를 디자인에 적용하려 했다. 가우디는 언제나 건축물이 들어설 대지와 그 주변 환경과 건축물이 완벽하게 조화될 수 있도록 디자인을 하였던 건축가였다.
건물을 세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뽑아버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맘속에 담아두었다가 장식 속에서나마 이를 살려 오히려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시키곤 했을 정도이다. 「카사 비센스」의 외관은 전체적으로 기하학적인 패턴을 보이면서도 요소요소에 풍부한 동식물의 장식들이 덧붙어 있어 주변 자연환경과 어떠한 이질감도 없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 마치 신이 만든 자연 속에 인간이 만든 자연이 함께 녹아있는것 같다고나 할까? 실내로 들어와도 자연적 모티프는 여전히 전체를 치장하는 중심 주제가 된다. 식당에 들어서면 마치 한 편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 여기저기에 꽃과 새들이 넘쳐난다. 석고로 만들어진 붉은 앵두와 푸른 잎들이 대들보 사이를 무성하게 수놓고 있으며, 벽면 가득 조각된 덩굴손과 낙엽 주변으로는 한 떼의 해오라기와 학들이 비상하고 있다.
이렇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온갖 장식들이 집안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으며, 특히 돌과 유리 조각으로 되어있는 모자이크 바닥은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거리기까지 한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장식을 추구하고 싶었던 가우디는 조명의 조절을 통해 '빛나는 장식의 신비로움'을 선보였다. 실외의 경우도 예외 없이 이러한 세심한 의도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촘촘히 박혀있는 매끄러운 외벽 타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달라지는 태양의 각도와 날씨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반짝거리며, 설교단 중앙에 있는 작은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은 둥글고 얇은 막을 만들어, 이를 통해 석양이 비치면 무지개 빛으로 반짝거려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자연을 통해 다양한 색과 빛을 만들어 내는 이러한 장치는 가우디의 작품이라면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분명 가우디에게 있어 중요한 표현 수단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랜 세월 후에 가우디는 어느 일기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장식엔 색이 있어왔고, 있으며, 있어야 한다"라고 단언했는데, 이를 통해 그가 색과 빛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빛은 모든 장식의 기초이다. 빛에서는 분해된 여러 색채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빛은 모든 조형예술을 지배한다. 회화는 빛을 묘사할 뿐이며 건축과 조각은 무한한 색조와 변화를 즐기기 위해 빛에 여러 모티프를 조화시킨다.
복고주의가 만연한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양식도 사용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근대건축과 당당히 맞서 만든 「카사 비센스」는 독창성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카사 비센스」를 포함한 가우디의 초기작품에서 볼 수 있는 장식은 구조와는 상관없이 붙는 부가적인 것으로 흔히 아르누보식 장식이라고도 일컫는데, 「구엘 별장 Pabellones Finca Güell」(1884~1887)과 「구엘 공원」에 가서는 이러한 가우디만의 독특한 장식 스타일이 좀더 성숙하게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