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선 인싸, 밖에선 고립… 청년 A의 딜레마
손동준,이현성,박윤서2026. 4. 23. 14:18
[기획] 표류하는 기독 청년
<상> 교회선 슈퍼스타, 밖에선 취포자
<중> 악의 없는 안부, 깊어지는 상처
<하> 다리 놓고 응원하는 신앙 공동체
교회에선 ‘인싸’지만 세상 밖으로 나설 용기는 없는 ‘핵심 리더’. 끝없는 구직 실패로 친교 자리를 피한 채 예배당만 겉도는 ‘투명 인간’. 모습은 정반대지만 두 청년은 모두 교회 안팎에 고립돼 있다. 어떤 청년에겐 도피처, 또 다른 청년에겐 더 큰 고립의 공간인 교회. 국민일보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 기독 청년들의 딜레마를 들여다보고, 이들의 자립을 부축할 교회의 역할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저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됩니다.”
대학 졸업 후 수년째 취업 문턱을 넘지 못한 강지훈(가명·32)씨의 말이다. 교회 안에서 그는 찬양팀과 교사, 소그룹 리더를 도맡는 핵심 청년이었지만, 밖에서는 끝없는 불안과 자책을 견뎌야 했다. 사회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 교회에서까지 배제돼선 안 된다. 오히려 조건 없는 환대와 역할 부여는 기독교 공동체의 고유한 미덕이다. 문제는 이 무조건적인 위로가 청년을 세상으로 다시 밀어내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차가운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임시방편으로 작동하기도 한다는 데 있다.
강씨는 진로가 불안정했던 시기에도 교회 일만큼은 손에서 놓지 못했다. 교인들은 “너 아니면 안 된다”며 그를 붙들었다. 공동체에 필요한 존재라는 감각은 분명 위로가 됐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정작 돌봐야 할 자신의 삶은 뒤로 밀리고 있다는 사실도 선명해졌다.
강씨는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몸과 마음이 이미 지쳐 있었는데도 내가 빠지면 공동체가 흔들릴 것 같아 계속 맡았다”며 “교회가 차라리 이제는 사역을 조금 내려놓고 네 삶을 먼저 돌보라고 말해줬다면 신앙도 더 건강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 전공자인 김우빈(가명·30)씨의 시간도 비슷하게 흘렀다. 김씨는 예배 방송 송출과 해외 선교 준비 등 교회 사역에 오래 매달렸다. 입대도 1년 늦췄을 정도. 교회 안에서는 그의 영상 작업이 “은혜롭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채용 시장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종교색이 강한 작업물은 포트폴리오로 내세우기에 부담이 됐고 복학 뒤에는 동기들과 벌어진 시간 차도 크게 느껴졌다고. 김씨는 “그 시간을 온전히 사회 진출 준비에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만 3년 동안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강민후(가명·29)씨에게 교회는 불안을 잠시 잊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주일이면 아침부터 밤까지 세 차례 예배를 드렸고 평일 기도회에도 빠지지 않았다. 강씨는 “독서실에서는 늘 불안했지만 교회에 가면 신앙심 깊고 헌신적인 청년으로 받아들여졌다”며 “그 시간이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 현실의 문제는 내 몫으로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더 많은 역할을 맡고 오래 머무는 현상을 놓고 목회 현장에서는 이를 마냥 헌신으로만 볼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회가 상처 입은 청년을 붙드는 버팀목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현실의 과제를 잠시 미루게 하는 공간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의 배경에는 청년층이 체감하는 구조적 취업난도 자리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 조사 결과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쉬었음’ 비중은 2019년 14.6%에서 2025년 22.3%로 늘었다. ‘쉬었음’은 가사 육아 질병 등 특별한 사유 없이 취업 준비나 정규 교육기관 통학 등의 활동을 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쉬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청년들이 눈높이를 높여 쉬는 것이 아니라 일할 의지가 있어도 진입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초급 일자리는 줄고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는 강해지고 있다. AI 확산으로 청년층이 주로 진입하던 업무까지 빠르게 재편되는 점도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높아진 실업률은 청년들의 고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청년을 붙드는 버팀목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의 과제를 미루게 하는 구조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교회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청년들을 사역에 참여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교회 안 청년들의 봉사와 사역이 지나쳤을 때 현실적 삶에서 지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제껏 교회는 청년들의 성경공부나 예배 등 교회 안 신앙에 주된 관심을 두고 있었다”며 “신앙을 온전한 삶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교회는 교회 밖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모습은 쉽게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가 단독 입수한 수도권의 한 대형교회 청년사역 내부 보고서에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담겼다. 매주 1만6000여명이 출석하는 이 교회는 청년교회를 별도로 두고 대학부와 직장 초년생, 30대 공동체를 세분화해 운영하고 있다. 청년교회 사역자들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기존 청년 사역의 한계로 ‘교회가 회피처가 되어버리는 역설’을 짚으며 사회에서 받지 못한 인정을 교회 안에서 얻는 과정이 때로는 학업과 취업 준비를 늦추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청년의 삶의 시기와 신앙 성숙도에 따라 “지금은 사역을 내려놓고 자립에 집중하라”고 말해줄 수 있는 목회적 분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청년들이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으로 자기 정체성의 혼란, SNS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경력 단절의 딜레마, 신앙적 무기력을 꼽았다.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자신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나 “가족에게 짐이 되는 사람”으로 정의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균형을 요청했다. 청년사역연구소장인 이상갑 산본교회 목사는 “청년기는 순간의 선택과 결정이 이후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시기”라며 “교회 봉사가 삶을 세우는 방향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현실 회피의 통로가 되면 개인의 성장도 함께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봉사가 교회 안에만 머무르면 회피 수단이 되기 쉽지만, 세상 속 책임과 도전으로 이어질 때 믿음도 건강하게 자란다”고 덧붙였다.
하재성 고신대 교수는 “믿음으로 잘 성장한 기독청년들이 노동에 참여함으로써 교회 밖의 타인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활동만큼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현실적인 과제들과 치열하게 씨름하면서 예배하고 동시에 공동체를 섬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워워밸(work-worship balance)’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동준 이현성 박윤서 기자 sdj@kmib.co.kr
기사원문 : https://v.daum.net/v/20260423141834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