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한테 물었다
이담에 죽으면
찾아와 울어줄 거지?
대답 대신 아이는
눈물 고인 두 눈을 보여주었다.
―〈꽃그늘〉, 나태주,2011
실은 이 작품은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의 〈편도나무〉란 글을 패러디해서 써본 글입니다.
어느 날 나는
편도나무에게 말하였네
간절히
온 마음과 기쁨
그리고 믿음으로
편도나무여
나에게 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렴
그러자 편도나무는 활짝
꽃을 피웠네.
―〈편도나무〉,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러나 전혀 소재나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동안 내 곁에 있으면서 마치 예쁜 새처럼 지절거리고 고운 꽃처럼 피어 있던 처녀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나는 자주 내 마음속의 느낌을 얘기하고, 그 아이의 반응을 보곤 하였습니다.
‘이 다음에 나 죽으면/ 찾아와 울어줄 거지?’ 차라리 이건 협박성 발언입니다. 그런 말에 어린 처녀아이가 무어라 대답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내 맘대로 그 다음의 말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대답 대신 아이는/ 눈물 고인 두 눈을 보여주었다.’ 시인은 때로 이렇게 거짓말쟁이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기도 한 것입니다. < ‘죽기 전에 詩 한 편 쓰고 싶다(나태주, 리오북스, 2016.)’에서 옮겨 적음. (2019.05.30. 화룡이) >
첫댓글 ( ㅇㅇㅇ )한테 물었다
이담에 죽으면
찾아와 울어줄 거지?
대답 대신 ( ㅇㅇㅇ )는
눈물 고인 두 눈을 보여주었다.
자꾸만 눈이 머물러 있어집니다.
자꾸만 마음도 머물러 있어집니다.
아이 대신에 내게 특별한 의미의 사람들을 넣어 봅니다.
...
눈물 고인 두 눈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연을 다 읽는 순간
내 눈도 촉촉히 젖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