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제공해 주신 모든 정보에 대해 구도자는 안심해도 좋을 까요?
그대로 따르기만 한다면 그것은 진실일 것입니다.
스승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스승의 참나입니다.
비유하자면, 배의 길잡이 노릇을 하는 것은 등대가 아니라 등대에서 빛나는 불빛과 같은 것이지요.
그 빛을 쫓아갈 것인지 말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빛이나 등대는 그 문제에 있어서 어떤 이해관계도 없습니다.
그런데 종교에서는 빛을 희생시키고 등대를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류 의식은 진화합니다.
옛 시절의 선원들은 불확실한 삶을 살았고 별들을 관측하는 것으로 가능한 최선을 다했지요.
나침반, 육분의, 그리고 요즘의 위성 위치 측정 장치는
무수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 되어주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옛 시절의 구도자는 오직 소문을 참고할 수 있을 뿐이었지만,
이 새대의 구도자들에겐 나침반이나 육분의에 비견할 많한 것이 았지요.
진실이나 거짓이냐에 대한 근육 테스트는
구도자를 빛으로 안내해 줄 그런 종류의 발견으로는 최초입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수많은 영적 생을 절약해 줄 수 있습니다.
스승에게는 어떤 빛이 있는 걸까요?
그런 것은 전혀 없습니다.
듣는사람의 고나심으로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받아들여야 하는 유일한 의무는 배운 지혜를 실행에 옮기고
에고를 초월하기 위해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입니다.
스승은 존경하되 숭배는 오직 신을 위해 남겨 두세요,
선생님께서 표방사시는 가르침과 길을 어떤 말로 불러야 할까요?
그것은 신비가의 길이며, '헌신적 비이원성'을 표방합니다.
이런 가르침을 지칭하는 데 '헌신적 비이원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예, 그게 맞을 겁니다.
그것은 철저한 진실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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