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명령(the greatest commandment)
우리는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을(마 28:18-20) 영어로는 the great commission이라고 하고 이것을 지상명령으로 번역을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은(마 22:36-40) 최상급형을 사용한 the greatest commandment라고 하고 이것을 가장 큰 계명 또는 대위임령으로 번역을 한다. 그러나 풀러 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을 가르쳤던 박기호 교수는 가장 큰 계명(the greatest commandment)을 대위임령으로 번역한 것은 오역이라 지적한다. the greatest commandment를 지상명령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지상명령의 사전적 의미는 “반드시 지켜야 할 가장 큰 명령”이라는 뜻이다. 이 지상명령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에 앞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복음 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복음적 삶이 더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상명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삶 속에서 살아내면 꽃이 벌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벌이 꽃을 찾아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나님 나라의 복된 소식은 땅끝까지 소문이 날 것이다.
보여줄 수 있는 복음적 삶 없이 복음만 전파하는 것이 우선되면 복음은 왜곡될 수 있다. 중세시대 믿음이 빠진 행함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지만 오늘날 삶이 빠진 이신칭의도 중세시대만큼 위험하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으로부터 진리를 배우지 못하면 우리가 살아내야 할 현세적 하나님 나라는 무시하고 죽으면 가는 내세적 하나님 나라만 전하는 오류를 범하거나 영과 속을 철저히 분리하고 영적인 가치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원론적 신앙을 가진 영지주의자가 될 수 있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이나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정책과 선교가 함께 진행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복음 전하는 것이 지상명령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삶으로 보여주는 선교보다는 무력과 경제력을 앞세운 식민주의자와 함께 협력하여 선교했다. 교회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지상명령으로 이해를 했다면 무력을 사용하는 식민지 확장과 경제적 찬탈을 목적으로 하는 식민주의 정책에 반대했을 것이다. 만약 중세나 근대 역사 속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계명을 가장 크고 중요한 지상명령(the greatest commandment)으로 이해하고 순종하였다면 이미 복음은 땅끝까지 전파되었을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적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는 Doing(행동)이 아니라 Being(존재)이고 Life(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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