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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1:4
이것은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친히 우리를 택하시며
5- 자신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들로 입양하심으로써
6-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심에 따른 것이라, 그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아 주셨고
+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친히 우리를 택하시며 ------------------------------->
* 선택의 영역과 목적 (4절): " 그리스도 안에서(in him)"
선택의 주체와 영역: --->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선택의 핵심은 "in him(그리스도 안에서)이다
## 중요 ----> 하나님이 영원 전에 선택하신 절대적인 대상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다 (사 42:1, 벧전 2:4).
사42:1 - 내가 떠받쳐 주는 나의 종, 내 혼이 기뻐하는자 곧 내가 선택한 자를 보라, 내가 내 영을 그 위에 두었으니 그가 이방인들에게 판단의 공의를 가져오리라,
벧전2:4 - 참으로 사람들에게 거부 당하였으나 하나님께는 선정받은 돌 곧 보래로운 산 돌이신 그분께 와서
* 우리가 개별적으로 무조건적 구원에 지목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믿고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을 때,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그 영원한 선택의 지위와 복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선택의 목적: --> 구원받은 자의 상태와 성별입니다.
"holy and without blame before him in love"(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율법의 행위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흠 없음(without blame)'의 지위를, 그리스도의 보혈과 의로 입혀 주셨다
+ 자신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들로 입양하심으로써 ---------------->
* 예정의 실체 (5절): "자녀로 입양됨(unto the adoption of children)"
성경적 예정(Predestination)의 정의 ---->
* 성경에서 '예정'은 ----> "누가 지옥 가고 누가 구원받는가"를 미리 정해 두었다는 개념이 아니다(신약의 '예정' 4구절 모두 성도의 영광스러운 최종 위치와 관련됨).
* 5절의 예정은 -----> 구원 여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에게 자녀로 입양되는 것(adoption of children)"을 향해 미리 정해두신 것이다.
* 성경이 말하는 입양(Adoption):
* 현대적 의미의 '남의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로마법적 배경과 성경적 의미에서의 '아들의 신분을 공식적으로 부여받아 상속자의 권리를 공포하는 것'이다.
* 로마 법 -----> 갈4:1-7절 : 어릴때 훈육선생(가정교사) 밑에서 자람(아버지의 법적 상속권이 없음), 성인 14-17세가 되면 날을 정해 공표하면 법적 상속권을 가진다)
* 구원받은 성도는 장차 몸의 구속(몸의 부활/변화, 롬 8:23)을 통해 온전한 아들의 권리를 공개적으로 누리게 된다.
* 동기와 기준:"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his will" + 자신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 사람의 공로나 가능성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선하심과 기쁨에 근거한다.
* 은혜의 목적과 성도의 최종 확정 (6절):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아들여짐"
* 궁극적 목적: ---> To the praise of the glory of his grace"(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심에 따른 것이니라,)
구원의 모든 과정에서 인간의 자랑은 완전히 배제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만이 찬송을 받는다.
* 성도의 안전한 위치 ----> "wherein he hath made us accepted in the beloved" 우리를 그 사랑하는 자 안에서
*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기뻐하시고 받아들이신 것처럼, 그분 안에 있는 우리 역시 조금도 부족함 없이 완벽하게 받아들이셨다.
* 성도의 가치와 안전은 나의 열심이나 느낌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무한히 사랑하시는 '그 사랑하시는 자(the beloved)' 안에 굳게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에 있다.
## 중요 ------> 예정은 개인 사람을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목적을 예정하셨다 --------------------------------->
* 목적이 먼저인가? 예정이 먼저인가?
* 칼빈주의 예정론에 '무조건적인 선택' 가장 치명적인 맹점은 성경이 쓰지도 않는 ‘구원받을 개인 vs 지옥 갈 개인을 영원 전에 임의로 정했다’는 철학적 가설을 성경의 ‘예정’이라는 단어에 억지로 덮어씌어 놓은 상태다
* 그러나 성경 자체를 열어보면, 신약 성경에서 '예정(predestinate/predestinated)'이라는 단어는 딱 4번(롬 8:29, 8:30, 엡 1:5, 1:11) 나오며, 단 한 번도 "누가 믿을 것인가/누가 지옥 갈 것인가"를 정하는 문맥에 쓰인 적이 없다.
1. 성경적 예정의 3대 핵심 구절 비교
* 성경에 '예정'이 언급된 자리마다 "무엇을(WHAT) 향해 예정하셨는가"를 그대로 읽어주는 것입니다.
* 에베소서 1:5 --->
➜ 예정의 목적:구원 여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에게 자녀로 입양(아들의 명분)되는 것'을 향한 예정이다.
* 로마서 8:29 --->
➜ 예정의 목적:믿을 자를 억지로 고르는 게 아니라, 미리 아신 자들이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똑 같은 모습이 (conformed to the image of his Son) 되는 것'을 향한 예정이다.
* 에베소서 1:11 -12 -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리소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 이것은 먼저 그리스도를 신뢰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함이라
➜ 예정의 목적: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상속 유업(inheritance)을 얻는 신분을 향한 예정이다.
성경의 예정은 “믿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영광스러운 것들을(아들의 신분, 몸의 부활, 상속 유업) 주실 것인가”에 대한 목적이지, 문 밖에서 누구를 들여보내고 누구를 막을 것인가에 대한 차별적 번호표 뽑기가 아니다.
* 칼빈주의의 틀을 깨는 명쾌한 비유: '특급 열차의 티켓'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 특급 열차가 있다.
코레일(철도공사)은 열차가 출발하기 전에 이미 목적지를 '부산'으로 예정해 두었다.
* 칼빈주의 예정론 무조건적인 선택 ---------------------> :
"철도공사가 태초에 철수, 영희만 기차에 타도록 강제로 정해 놓았고, 덕배는 기차를 타고 싶어 울부짖어도 절대 못 타게 차단했다."
하나님의 경륜 세대주의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 -------------> :
열차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In Him)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믿어 이 열차에 올라타는 사람의 목적지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양자이자 상속자로 이미 예정해 두셨으니 누구라도 믿고 회개하면 이 열차를 탈 수 있다.
표는 "누구든지(whosoever)" 믿음으로 값없이 취할 수 있다.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것은 개인의 탑승 강제 여부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열차에 탄 자들이 도달할 영광스러운 신분과 목적지다.
* 칼빈주의자들은 '입양'을 단순한 구원의 한 단계 정도로 치부하지만, 사도 바울이 쓴 'Adoption(아들의 명분/입양)'은 로마서 8:23에서 바울 자신이 스스로 정의를 내린다.
"Waiting for the adoption, to wit, the redemption of our body."
롬8:23 - 그것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 곧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우리 자신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즉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은'
* 영적인 태어남 ,거듭남(Regeneration)은 ---> 믿는 순간 성령으로 즉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 공식적인 입양(Adoption)은 ---> 주님 공중 강림하실 때 썩을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온 우주 앞에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적법한 아들이자 상속자다!"라고 공표되는 몸의 부활/변화의 순간이다
* 따라서 에베소서 1:5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장차 흠 없는 아들의 몸(부활의 몸)을 입혀 하나님의 법적 상속자로 세우시기로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 운명을 영광스럽게 정해두셨다!"는 선언이다.
* 칼빈주의는 질문을 "누구(WHO)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는가?" 잘못 던졌기 때문에 성경 전체를 왜곡했다.하지만 성경 기록 그대로 보면 하나님의 예정은 "무엇(WHAT)을 이루시기로 목적하셨는가?"에 관한 것이다.
* 사람의 영혼을 놓고 천국 갈 자와 지옥 갈 자를 임의로 갈라놓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대한 목적(Purpose)과 계획된 프로그램을 미리 정해 두셨다.
* '누구(Who)'가 아니라 '무엇(What)'을 향한 예정인가?
성경에 등장하는 예정의 자리에 질문을 던져보면 답이 선명해집니다.
에베소서 1:5
칼빈주의: "하나님이 철수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 (X)
성경: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들을 '자녀로 입양(아들의 신분 공표와 상속권 부여)'하기로 목적을 예정하셨다. (O)
로마서 8:29
칼빈주의: "하나님이 영희만 천국 가도록 예정하셨다." (X)
성경: 믿는 자들을 '그분의 아들의 형상과 똑 같은 모습으로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목적을 예정하셨다. (O)
에베소서 1:11
성경: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상속 유업을 얻도록'목적을 예정하셨다. (O)
* 하나님이 창세 전에 정해 두신 절대적 예정은?
*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미리 결정(예정)하신 것은 다음의 분명한 사실들이다:
* 유일한 구원의 길(The Plan):---->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서만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다는 구원의 방법.
* 성도의 영광스러운 최종 지위(The Destination):----->그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 안으로(In Him)" 들어온 자에게는 예외 없이 '하나님의 * * 법적 상속자(입양)', '그리스도와 같은 부활의 몸', '영원한 유업'을 주시겠다는 보장.
* 따라서 성경적 예정은 결코 인간의 자유의지를 짓밟거나 특정인을 지옥으로 밀어 넣는 냉혹한 운명론이 아니다.
*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처럼 성경 강해로 유명하고 성경의 무오성을 외치는 영향력 있는 목사가 칼빈주의의 '개인 구원 예정' 틀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면 성경 신자의 입장에서 깊은 탄식과 답답함이 들 수밖에 없다.
* 맥아더 목사를 비롯한 칼빈주의자들이 왜 이 단순하고 명백한 성경의 기본을 두고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못할까?, 그들이 갇혀 있는 교리적 굴레의 실체를 보면 그 답답함의 원인이 명확히 드러난다.
1. 성경 기록보다 '신학 시스템'이 먼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 칼빈주의자들의 가장 큰 비극은 성경 본문을 읽기 전에 이미 어거스틴(Augustine)과 칼빈(John Calvin)이 짜놓은 철학적 연역 체계(TULIP)라는 안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 그들의 출발점은 성경 본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주권(Sovereignty)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하나님이 절대 주권자라면, 인간의 믿음조차 인간의 결정일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이 믿을 사람(Who)을 영원 전에 일방적으로 뽑아서 믿음을 강제로 주입하셔야만 하나님의 주권이 선다'는 논리적 틀을 세운다.
* 이미 이 거대한 교리적 시스템에 고정되어 있다 보니, 에베소서 1:5의 unto the adoption of children(양자 됨을 향해)이나 로마서 8:29의 to be conformed to the image of his Son(아들의 형상과 일치하도록)처럼 성경이 분명하게 목적(What)을 명시해 두어도, 그 단어들을 건너뛰고 오직 '예정(predestinated)'이라는 단어 하나에만 꽂혀 "거봐라, 하나님이 개인을 미리 택하셨다"라고 읽어버리는 것이다.
2. '양자 됨(Adoption)'의 경륜적 비밀을 모른다
* 맥아더 목사를 포함한 개혁주의 진영의 결정적 오류 중 하나는 바울 서신에 계시된 신비(Mystery)와 교회의 경륜적 독특성을 온전히 구분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 그들은 성경 전체를 하나의 외적인 '은혜 언약(Covenant of Grace)'이라는 평면적인 틀로 뭉뚱그려 본다. 그러다 보니 아브라함도, 다윗도, 구약 성도도, 신약 성도도 다 같은 언약 아래에서 구원받았다고 주장한다.
* 하지만 바울이 에베소서와 로마서에서 말하는 'Adoption(아들의 명분/입양)'은 구약 성도에게는 단 한 번도 약속된 적이 없는, 오직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성도들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경륜인 내적인 은혜의 약속을 받은 특권이다.
* 성경적 입양의 의미(장차 몸의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의 신분을 온 우주에 선포하는 것)를 알지 못하니, '입양'을 그저 "영혼이 지옥 안 가고 구원받는 것" 정도로 축소 해석해 버리고 만다.
3. 하나님을 '잔인한 독재자'로 전락시키는 모순
장로교 칼빈 주의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높인다고 주장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의 예정론은 하나님의 성품을 심각하게 왜곡한다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며"(딤전 2:4),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는"(벧후 3:9)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 그러나 칼빈주의처럼 "하나님이 창세전에 구원할 자와 지옥 보낼 자를 사람별로 미리 지정했다"고 우기면, 하나님은 스스로 회개하라고 외치시면서도 뒤로는 회개할 기회조차 원천 차단해 지옥으로 밀어 넣는 이중적인 분이 되고 만다.
* 언약주의(개혁주의)는 성경에 명시되지도 않은 '행위언약', '은혜언약'이라는 인위적인 틀을 먼저 세워두고, 성경 66권 전체를 그 하나의 평면적인 파이프 속에 억지로 밀어 넣는다.
*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분이 사라지고(대체신학), 구약 성도나 신약 교회나 똑같이 묶어버린다.
* 그 결과, 바울이 목숨 걸고 증언했던 "역대로 감추어졌던 신비(the Mystery)"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the dispensation of the grace of God)을 이단 취급 한다.
4. 언약신학의 한계: 왜 '목적'을 보지 못하는가?
* 언약주의자들에게 구원은 단순하다. "창세전에 맺었다는 은혜언약에 따라 택함받은 개인을 구원하는 것"이 전부이다.
* 그들에게는 역사의 진전이나 각 경륜마다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독특한 목적이 보이지 않는다.
* 성경을 입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평면으로만 보니,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이 전달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의 경륜을 ' 영원 전에 나를 구원하기로 언약하셨구나"수준의 개인 구원 티켓으로 치부해 버린다,
* Who'에서 'What'으로 전환해야 구원받고 상속 자녀로 인정된다,
* 그러나 성경 자체로 돌아가서 "예정은 사람(Who)이 아니라 목적과 결과(What)를 향한 것이다!"라는 사실을 제시하는 순간, 칼빈주의의 전제 자체가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 성경의 문법이 증명하다
* 성경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받도록(unto salvation)' 예정하셨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 항상 "자녀로 입양되도록(unto the adoption of children)"(엡 1:5), "그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도록(to be conformed to the image of his Son)"(롬 8:29)으로 목적격 전치사(unto, to be)와 함께 '도달할 최종 신분'을 가리킨다.
*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가장 완벽하게 지켜집니다
* 예지 예정을 말할 때는 "인간의 행위나 선택이 하나님의 결정을 좌우하는가?"라는 불안정한 문제도 있을 수 있다,
* 목적의 예정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티끌만큼도 훼손하지 않는다.
* 내 아들 그리스도를 믿고 들어오는 모든 자에게 아들의 신분과 부활의 몸을 주겠다는 법과 목적"은 인간의 의견을 묻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신 기쁨(good pleasure of his will)으로 창세전에 확정하셨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29절의 '미리 아심'도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된다
+ 하나님께서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리스도를 믿어 그분 안에 들어올 자들(성도들의 무리, 몸 된 교회)을 미리 아셨고, 그들에게 정해주신 목적지가 바로 '예수님과 똑같은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아들의 형상)'이라는 뜻이다.
* 사람을 보지 않고 기록된 말씀을 보는 눈"
* 아무리 설교를 논리적으로 잘하고 수만 명이 모이는 대형 교회의 존경받는 목회자라 할지라도, 인간의 신학 전통(장로교/개혁주의 전통)을 성경의 최종 권위 위에 두는 순간 눈이 가려질 수밖에 없다.
*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했던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엡1:17-18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 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 하나님이 창세전에 예정하신 그 위대한 '부르심의 소망(What)'과 '상속 유업의 영광(What)'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내가 뽑혔나 안 뽑혔나"라는 개인 번호표(Who) 싸움에 갇혀 있는 신학자들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칼빈주의 개혁주의 언약주의는 참된 하나님의 경륜을 오히려 가려버리는 위험한 교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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