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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연합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소 주 제: 공동체. 성숙. 교회
날자 및 분류: 190922엡61설교 창 조 의 말 씀
성 구: 엡4:4-6
전 하 는 자: 정 헌 정 목사 http://cafe.daum.net/chang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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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엡 4:4-6,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를 통해서 우리가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모시고 각지체로서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을 배웠다. 여기에는 자신의 이익이나 자신의 자존심이나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려한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함이 없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이미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다, 이제 와서 무슨 이름으로 하나 되자가 아니라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우리는 힘써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나 자신의 얼굴을 내세우기 위해서 소리를 지르며 하나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무언가를 잊어버린 어리석고 못난 아니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삶을 이미 이탈했다고 말할 수 있다,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 신앙생활은 교회라는 기준에서 풀어라
그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신. 교회로 우리를 부르시며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몸의 한 지체로 부르셨다는 것을 근거로 했을 때 나타나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구체적인 어떤 원리들이다, 신앙생활이란 결국 교회라는 기준에서 풀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단체생활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힘을 합쳐서만이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각자가 자신이 절제할 수 있어야 되며 위치를 파악하며 자기에게 맡겨진 부분을 전체 속에서 파악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우리가 이제 교회 안에서 이 생활을 하며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부르신 부름 속에서 개개인을 어떻게 성숙시키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하나님께서 이일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우리가 상상치 못했던 어떤 일들을 이룰 것이다, 그것을 성경식으로 표현하자면 점도 없고 흠도 없고 주름 잡힌 것 없는 완전하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한 그런 자리라고 한다, 혼자서 하는 것이 더 쉬워 보이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여럿을 불러서 그 속에서 우리를 훈련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라고 말씀하시는 셈이다. 하나라는 말을 에베소서 4장에서 강조하고 있는지 모른다,
엡 4:4-6,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우리가 이렇게 교회로 모이는 것은 한 몸이며 한 성령께서 몸으로 묶으신 것이매 틀림없다, 말하자면 한 분에 의해서 이리로 부름을 받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한 몸으로 우리가 구성되었기 때문에 있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획일성이 아니다, 어떤 동일한 원리나 근거가 있지 다양하다, 다양한 것은 외형이고 내형과 원리와 본질을 따져 들어가면 하나이다.
롬 14:5-6.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분명하게 동일한 공통점이 있다, 어떤 사람은 주를 위해서 금식하며 어떤 사람은 주를 위하여 오늘 잔치를 열며 어떤 사람은 주를 위하여 구제를 하고 있다, 우리는 늘 싸우는 것이 구체를 해야지 왜 먹기만 해 이런 싸움밖에 하지 못한다, 다 믿음을 따라 주를 위해서 신앙고백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누구는 신앙을 공부하는 것으로 중심을 두고 어떤 이는 기도하는 것으로 중심을 두고 어떤 사람은 봉사하는 것으로 중심으로 둘 수 있다, ;그러나 다 같이 주를 사랑하는 것이며 주의 편을 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싸운다, 그래서 한 몸으로 한 교회로 부름 받았다는 것 때문에 분명히 알아야 하는 어떤 공통점을 알아야 된다,
우선 한 몸이 되었고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한 몸이 된 우리 모두가 깨닫는 것은 죄에 대한 깨달음이다, 우리가 교회로 하나 된 것은 하나님을 모르던 자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던 자가 하나님을 인정한다, 그것 아니고는 여기에 모일 이유가 없다, 신자들 속에서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상식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문제가 야기 될 수 있다, 도덕성과 윤리성 상식적인 경우 이런 문제 있어서는 순준 이하에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서 교회는 늘 머리 아픈 일이 생기는 법이다, 그러나 모두가 하나같이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몰랐던 것이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면 큰일이다, 하는 부분만은 모두에게 공통되는 부분이다, 그것이 없이는 구경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 외의 문제로 싸웠는지 모른다, 우리가 항상 꼬집어야 하는 것은 예수를 믿는가이다, 그걸 인정하기 때문에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 나머지는 변변한 신자가 되는데 많이 오래 걸린다, 그걸 우리가 기다릴 줄 알아야 된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된 이후에 그에게 우리가 지금 요구하는 어떤 수준에 관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문제이다, 오늘의 본문처럼 한 성령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고 하나 되게 하신 그가 그를 우리에게 붙임은 내가 다만 그를 심판하고 그를 고치기 위해서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나에게 숙제이기도 하다, 내가 그를 고쳐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있음으로 인해서 내가 어디가 고쳐져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만났다는 것도 기억해야 된다, 꼭 기억해야 되는 죄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나 이 근거로 말미암아 겸손해져야 된다, 교회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나에게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는 것도 생각하자. 교회의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가 헐뜯는 것은 아니다, 헐뜯는 자는 따로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사탄이다, 욥기에 보면 천상회의에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너는 어디 갔다 오냐 세상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왔습니다, 너는 그렇게 흠만 잡으려 다니기만 하느냐, 욥을 봐라 그가 나를 어떻게 섬기고 있는지 봐라. 사탄이 하는 말이 하나님이 축복해 주니까 믿지 축복하지 않으면 믿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사탄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탄은 고소하는 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바리새인의 기도라고 한다, 나를 저 세리와 같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누구의 기도를 들으셨는가, 유창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기도하고 십일조 꼬박꼬박 드린 바리새인의 기도보다 어둔 하지만 얼굴도 못 들고 가슴 치며 용서를 구한 세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2. 새로운 피조물
그 다음에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사실이다, 고후5장에 가면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이유는 우리를 죄에서 꺼내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는 주의 자녀로 생명과 의와 거룩을 위하여 살도록하기 위하여 새롭게 만든 것이다,
고후 5:16-17,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 모두가 이 문제에 있어서는 새롭게 태어난다, 아무리 연세가 많아도 기독적인 차원에서는 어린 아이로 태어난다, 그래서 그는 서툴 수밖에 없다,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렇게 알지 않는다, 새로운 피조물로 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사람으로 안다, 세상에서 지식이 있으니 교회에서도 지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래서 기다려 줘야 된다,
유년주일학교를 하다보면 가장 부흥하고 열심히 있는 반은 선생님이 세상에서 교사이거나 가방끈이 긴 사람이 아니라 못 배웠지만 하나님 앞에 진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이들을 제일 잘 가르치고 그 반이 가장 많이 부흥한다, 영국의 수제차인 롤스로이스의 광고의 케치플레이 중에는 롤스로이스는 고장이 없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롤스로이스가 고장이 나서 시동이 안 걸린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롤스로이스는 고장이 없다면서 그러면 다만 지금 시동이 안 걸릴 뿐이다, 라고 말한다, 어느 분의 글 중에서 그 분이 서구사회에 가니까 서구사회에 있는 사람들이 물질문명의 정수인 유럽사회이다 이 동양인에 대해서 제일 감당을 하지 못하는 것이 정확한 계산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12시2분에 만나자고 하면 12시20분에 나온다, 당신들은 왜 이렇게 시간개념이 없느냐. 그래서 하는 말이 그 5분 가지고 뭐하려고 그러냐. 그래서 이런 표현을 했다, 서양 사람들이 산에 터널을 하나 뚫으면 양쪽에서 정확한 측량으로 뚫어서 한 가운데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만나서 약수를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신통한 사람들인가를 자축한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이쪽에서도 눈으로 짐작해서 파고 저쪽에서도 짐작해서 파오면 아무리 파도 만나지를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하는 말이 우리가 하나를 파려고 했는데 두 개를 파졌다고 호평을 하면서 어느 것이 나은지를 말한다고 한다,
우리가 물질문명세계에서 제일 큰 부작용은 인간이 인간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나을 수도 있다, 성경은 인간을 용서해야 되고 기다려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 성경은 훨씬 많이 할애하고 있다, 우리가 못 참는다, 왜냐하면 기계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랑하려고 못 참는다,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몸으로 부름 받았고 한 성령으로 모였다는 것을 자꾸 놓치지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여러분이 어떤 문제에 있어서 불만 있는 것이 있는가, 어떤 문제에 의해서 도저히 못 참을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의미에서 한 몸으로 한 성령에 의해서 부름 받았다는 것을 모르는 소리라고 성경은 지적하고 계신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겪는 신앙적인 대부분의 문제들이 이것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기다리고 계시고 아직도 용서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누구인데 하나님 앞에서 심판의 칼을 휘두르고 있는가,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일종의 메스게임을 요구하고 계신다, 메스게임이라는 것은 한 사람만 쳐다보면 그 사람은 여러 번 틀린다, 전체적으로 보면 언제나 한 동작에 80%만 맞으면 하나로 보인다, 그래서 메스게임은 그런 가치가 있다, 음악도 연합을 할 때가 웅장하고 듣기도 좋고 아름다움이 있다, 그런 요구가 성경이 있다는 걸 알아야 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독창이나 독주를 하도록 부름 받지 않고 합창을 해야 된다, 내 옆 사람이 나만 못해도 그가 없으면 알토가 없고 베이스가 없는 노래를 불러야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된다, 만약 알토가 소리가 작으면 소프라노도 목소리를 작게 해야만 된다, 한 쪽에서 쫓아오지 못하면 한 쪽에서 맞춰줘야 된다, 우리는 연합이라는 개념이 너무 없다,
갈 6:1-2,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짐을 나누어지는 것이 큰일로 되어있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야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법이란 내가 하나를 주고 한 사람을 살려내는 법칙이다, 모두를 그리스도예수로 통일하는 것이다, 모두를 그리스도예수로 말미암아 이익을 끼치는 것이며 모두를 화평케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 있음으로 인해서 그곳에 평화가 있어야 된다, 그가 있음으로 인해서 늘 분란이 있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가 늘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기독교가 옳고 그름에 종교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진리에 관한 종교이다, 그 진리를 심판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진리를 살려내고 살리기 위하여 기다리고 목숨을 주기까지 사랑하고 열심 내는 것으로 쓰지 않는 한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를 갖고 있다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이 모든 사람을 자르고 밟고 죽였는지 모른다, 진리를 그렇게 써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해야 된다는 중요한 원리이며 우리 옆에 있는 한 사람이 나와 같이 보조를 맞춰야 되기 위해서 그를 끌어당기는 이상으로 내가 나를 절제하며 보조를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중요한 싸움이다,
3.열매를 맺어야 되는 자이다,
모두가 교회라는 이름으로 개개인도 마찬가지로 열매를 맺어야 되는 자이다, 기억해야 되는 것은 성령께서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묶으셨기 때문에 이제 그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맺으려고 하는 열매는 성경에 기록된 것같이 성령의 열매이다,
갈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 열매들이 성품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 사업적이지 않다, 능력적이지 않다, 어떤 일을 하는 방법적이지 않다, 얼마나 참느냐의 싸움이 될 지도 모른다, 성령이 우리를 묶으시고 우리 한 몸으로 서로가 힘을 합쳐서 무엇을 하게 함으로 일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원래 없었던 것이 생기는데 거기에 절제. 온유. 오래 참음 인내 이런 것들이 생겼다, 기독교가 한 나라에 들어가서 그 나라가 이익된 것이 무엇이 있는가, 기독교가 한 나라를 끝까지 축복하신 것을 보았는가, 그런 예가 없다, 이스라엘이 산산조각 난 것을 보라, 로마도 영국도 미국도 드디어 타락의 길을 걷고 있다, 기독교가 한 나라를 살려내는 수단으로 동원되지 않는다, 기독교는 개인 개인들이다, 한 나라의 위기를 줌으로서 개인의 신앙을 키우며 한 나라에 축복함으로서 개인 신앙을 꽃피우는 것이 있으면 있었지 신앙인들이 모여서 나라를 구하고 외적의 침입을 막고 그런 일은 없다 왜냐하면 그랬는데 다시 엎어져 버린다, 구약을 읽어봐도 그렇다, 기독교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에 대한 발언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보면 해답이 보인다, 기독교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국가에 대한 발언을 하지 않는다, 한 개인을 향하여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늘 십자가의 방법으로 이 진리의 말씀을 여태껏 이어오셨고 오늘도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우리가 당하는 여러 가지 일에 있어서 사회나 정치나 집안일이나 교회일이나 모든 일을 통해서 결국 내가 만들어져 가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어려운가, 정치하는데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는가. 이런 모든 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목적하고 사는가, 내가 무엇을 믿고 살며 무엇을 바라고 사는가 하는 것으로 자꾸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영원한 소망을 더욱 굳게 하는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이 온유하고 기다려야 되는지 하나님께서 훨씬 못 참으실 텐데도 하나님께서 아직도 기다리시는 구나. 하는데 참여하는 성령의 열매로. 열매로 가는 것이 하나님께서는 훨씬 우리를 향하여 갖고 계시는 중심된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 링컨이 국회의원 출마를 하느라고 유세를 하려갔는데 정적과 같은 교회당에 모여서 같이 유세를 하게 되었다, 당시의 미국의 개척기에는 어디나 강당이 있었던 것이 아닌데 교회에서 종종모였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미국의 초창기의 대부분 신자들이었다, 정적인 상대방이 유세를 하다가 하도 사람들이 자기 말에 동조를 하지 않으니까 중간에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 천국가고 싶은 사람 손드시오. 하니까 손드는 사람들이 몇 명되지 않았다, 화가 나서 그럼 지옥가고 싶지 않은 사람 손드시오. 하니까 다 손을 들었다, 그런데 뒤를 보니까 링컨이 앉아서 졸고 있었다, 때는 요 때라 싶어서 당신 링컨은 지옥가고 싶다는 말이오. 링컨이 벌떡 일어나서 아니요. 나는 국회에 가고 싶소. 혼동하지 말라 두 가지는 결부될 사항이 아니다,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서는 희망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책임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세상이 잘 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필리핀이 마르코시절에 망한 것은 마르코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
이 모든 일로 우리를 하나님께서 만들고 싶어 하시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유토피아도 아니고 멋있는 교회도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완성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