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구름 카페
서정란
벚나무 허공에다 꽃구름 카페를 열었습니다
밤에는 별빛이 내려와 시를 쓰고
낮에는 햇빛이 시를 읽는 허공카페입니다
곤줄박이며 콩새 방울새 박새 오목눈이까지
숲속 식솔들이 시를 읽고 가는가 하면
벌과 나비 바람둥이 바람까지
시를 어루만지고 가는 꽃구름 카페입니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나서 나도
꽃구름카페 아래 쉬어갑니다
벚꽃 닮은 매화, 매화 닮은 벚꽃
어느 것이 진품이고 어느 것이 모사품일까,
생각을 하는 나에게
자연은 위작도 모사품도 모르는 신의 창작품이라고
팔랑팔랑 허공을 떠다니는 꽃잎이 일러 줍니다
잠시 불온한 생각에 붉어진 얼굴로
꽃구름카페 휴식차를 마십니다
----서정란 시집, {꽃구름 카페}에서
시는 열정이 전부이고, 시적 열정은 불탄다. [망중한]에서도 천년 만년 노래하는 시인을 꿈꾸고 있는 것이 그것을 말해주고, 태양보다 강렬하고 죽어도 죽지 않는 반고흐를 찬양하고 있는 [밀 익는 마을]이 그것을 말해준다. 이 모든 것이 서정란 시인의 시적 열정의 소산이며, [꽃구름 카페]는 그의 ‘황금의 자연’의 진수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벚나무가 허공에다 꽃구름 카페를 열었고, 밤에는 별빛이 내려와 시를 쓰고, 낮에는 햇빛이 시를 읽고 가는 허공카페이다. “곤줄박이, 콩새, 방울새, 박새, 오목눈이까지/ 숲속 식솔들이 시를 읽고 가는가 하면/ 벌과 나비 바람둥이 바람까지/ 시를 어루만지고 가는 꽃구름 카페”이다. 시인은 공원을 한 바퀴 돌고나서도 꽃구름카페에서 쉬어가고, 때로는 “벚꽃 닮은 매화, 매화 닮은 벚꽃/ 어느 것이 진품이고 어느 것이 모사품일까”라고 의문을 가져보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내 그는 이 모든 것이 “위작도 모사품도 모르는 신의 창작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따라서 그는 잠시 불온한 생각, 즉, 자연의 창작품에 의문을 가졌던 생각들을 반성하며, 꽃구름 카페에서 ‘휴식차’를 마신다. 반성은 진실이고, 진실은 하늘을 감동시키며, 황금의 자연을 펼쳐 보인다. 사유의 꾸밈도 없고, 상상력의 꾸밈도 없다. 시인과 사물, 벚꽃과 매화, 수많은 새와 동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고,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모든 낙원은 시의 낙원이며, 무한한 시적 열정을 갖고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에서 승리한 시인만이 이처럼 [꽃구름카페]와도 같은 시를 창출해낼 수가 있다. 시인은 천지창조주이며, 황금의 자연이고, 그 어떤 신들보다도 더 위대하다. 시인이 있고 말이 있으며, 말이 있고 신이 있다.
얼치기 시인은 뜬 구름 속에서 시를 찾고, 진정한 시인은 현실 속에서 시를 찾는다. 얼치기 시인은 시야가 좁고 그 좁음을 은폐하기 위해 공허한 말장난과 기교를 부리고, 진정한 시인은 시야가 넓고 그 어떤 시적 기교도 부리지 않은 채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새로운 사건과 그 현상들을 명명한다.
서정란 시인의 [꽃구름 카페]는 내가 들어본 카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며, 전인류를 감동시킬 만한 신선한 충격과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벚나무, 별빛, 햇빛, 꽃구름, 곤줄박이, 콩새, 방울새, 박새, 오목눈이 등도 살아 있고, 숲속의 식솔들, 벌과 나비, 바람둥이 바람, 벚꽃, 매화, 진위를 의심하는 시인과, 이내 그것을 반성하며 ‘꽃구름 카페’에서 ‘휴식차’를 마시는 시인도 살아 있으며, 이 극적인 이야기 속에 ‘황금의 자연의 교향곡’이 울려퍼진다. 세목의 진정성 이외에도 전형적인 상황에서의 전형적인 인물의 창조, 즉, 현실주의의 승리이자 이상주의의 승리이고, 이상주의의 승리이자 시인 정신의 승리라고 할 수가 있다. [꽃구름 카페]는 서정란 시인의 ‘시의 공화국’이며, 이 [꽃구름 카페]는 그의 언어와 일곱 번째 시집 속에, 아니, 우리 한국어의 영광 속에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열려 있을 것이다. 아아, 자유와 평화와 사랑과 믿음과 만인평등이라는 사상의 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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