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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수 목사
성탄절 아침 주님 앞에 모인 여러분에게 성탄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2천년 전 말구유에서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인류 역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를 되새겨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성탄절에 우선적으로 할 일입니다.
성경은 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특히 구약 이사야서를 보면 군데군데 성탄에 관한 말씀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중에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비유법으로 표현한 말씀이 나옵니다.
본문 상반절을 읽어보시죠.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 ”
그 날은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는 성탄을 가리킵니다.
이새는 누구입니까?
다윗의 부친입니다.
마1:1 보면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데 뭐라고 되어 있나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예수님이 육신적으로 다윗의 후손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난다는 것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표현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이 어떤 분으로 오신다고 예언합니까? 만민의 기호! 여기서 ‘기호’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네쓰’인데, 이 단어는 동사 ‘나사스’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나사스’는 ‘들어올리다’ ‘눈에 띄다’ ‘두드러지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높이 들어올려져서 눈에 잘 띄는 것이란 뜻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깃발’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NIV)을 보면 'banner'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만민의 기호’라고 했으니까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온 세계 인류, 모든 족속을 위한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만민을 위해 오셨지만 그분을 통해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는 자에게! 아무리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신다,
천국으로 인도하신다고 성경 말씀에 기록해 놓았어도 그 사실을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만민을 위한 깃발이라는 표현 속에는 양면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보편성과 제한성! 얼른 보면 상호 모순적인 말 같지만 아닙니다. 보편성을 가지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해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 제한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눅2:14 보면 베들레헴 지경의 목자들에게 나타났던 천사들이 뭐라고 찬송합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성탄절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탄절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한낱 먹고 마시고 즐기는 할러데이(휴일)에 불과할 겁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심을 믿습니까? 아멘?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깃발’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깃발이 되실까요? 깃발은 감동을 주고, 격려하고, 불러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깃발을 바라보면 용기가 솟아나고, 깃발을 향해 달려 나아갑니다. 군대에서 군기를 사용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깃발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
고 나아가면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다음 세 가지 면면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깃발이 되어 주십니다.
[1] 구원의 깃발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면 우리에게 구원의 축복이 임합니다.
이런 사실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사건이 있습니다. 민21:에 나오는 불뱀 사건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 원망 불평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불뱀을 보내 물게 하십니다. 백성들이 신음하며 죽어갑니다. 모세에게 애걸복걸하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비방을 주시죠. 뭡니까? 놋으로 불뱀의 모형을 만들어서 장대에 높이 달라는 겁니다. 그러면 놋뱀을 보는 자는 모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그렇게 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민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누가 바라보았을까요?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사를 놓아준다든지, 약을 발라준다든지, ... 그러면 받아들이겠지만 그저 놋뱀을 보면 낫는다고 할 때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바라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어서 그런 거죠. 그런 사람들만 살아났습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요3:14~1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예수 그리스도)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인생이었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천국의 영광과 복락을 상상해 보십시오! 사11:6~9, 계21:1~22:5 참조) 이제는 더 이상 죄 아래 눌려 비참하게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품 안에서 평강을 누리며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오늘 성탄절 아침 다시 한번 구원을 깃발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시고 구원의 감격으로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승리의 깃발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면 우리에게 승리의 축복이 임합니다.
우리가 천국 백성이 되었지만 천국에 들어가기 전 이 세상 살 동안은 늘 악한 원수 마귀의 공격을받게 됩니다. 죄의 유혹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온갖 시험과 환란, 그리고 풍파를 당하게 됩니다.
벧전5:8 보면 “ ...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그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대장이십니다. 깃발을 휘날리며 승리를 주십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요일3:8 보면 예수님은 마귀를 멸하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그분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동행해 주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해 주셨습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어려움 당할 때마다 절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출17:8~16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하다 아멜렉 족속과 맞붙어 싸운 사건이 나옵니다. 전력 상 열세였지만 모세가 기도하고, 아론과 훌이 같이 기도했을 때 당당하게 승리를 거둡니다. 그때 모세가 감사의 제단을 쌓았는데 그 이름을 뭐라고 했죠? 여호와 닛시!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깃발’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깃발’이란 말이 본문의 ‘기호’라는 단어와 같은 ‘네쓰’입니다.(‘네쓰’에 ‘나의 my’라는 뜻의 접미어 ‘-이’가 붙으면서 음이 변화되어 ‘닛시’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깃발이라고 하면 ‘예수 닛시!’가 되겠죠.) 여호와 하나님의 깃발을 바라봄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스데반의 순교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회 앞에 붙잡혀 심문 받다가 순교하는데 천사 같은 얼굴로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며 장렬히 순교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승리의 깃발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행7:55~56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그러므로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승리의 깃발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리고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40:30~31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 하리로다”
오늘 성탄절에 승리의 깃발이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당면한 고난과 역경도 당당히 이겨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선교의 깃발
예수님은 구원과 승리의 축복을 만민이 받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성탄과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기를 기대하십니다. 그것이 먼저 믿는 자들에게 부여된 사명과 책임입니다. 전도의 사명이요, 선교의 사명이죠. 전도는 같은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선교는 다른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두 가지를 다 감당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면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겨주신 사명입니다.
지상명령!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분명히 예수님은 재림하실 겁니다. 그런데 그 시점은 복음이 세계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 후입니다.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물론 모든 족속이 100%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복음을 들을 기회는 주시려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깃발을 휘날리면서 복음의 일꾼을 모집하십니다.
“누가 나를 위해 갈꼬?” 그 말씀에 우리 각자가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참조) 이렇게 응답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본문을 다시 보십시오.
후반절 보시면 “ ...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그랬습니다.
많은 나라 족속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와서 교회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11:12절 보시면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한 자를 모으시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종국에는 예수님을 배척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롬11:25~26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그러므로 오늘 성탄절 아침, 우리끼리 기뻐하고 끝내지 말고 우리에게 구원과 승리를 주신 예수님을 이웃에게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교사로 나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보내는 자로서 기도와 물질로 선교에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 세상에 ‘만민을 위한 깃발’로 오셨습니다!
특별히 ‘나의 깃발’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별명은 ‘예수 닛시’입니다. 이 성탄절 아침 다시 한번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남은 생애 내 인생의 깃발 삼음으로 구원의 은총에 감격 감사하시고, 고난 중에도 당당하게 승리하며, 복음 전파에 힘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