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언양현(彦陽縣) 도중에‘ 한시(漢詩)편 1.> 총17편 中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상북면·삼남면·삼동면 일대에 있었던 옛 고을이다. 삼국시대에 신라의 거지화현인데,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헌양현으로 고쳐 양주도호부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시대인 1018년(현종 9)에 울주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143년(인종 21)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에 의해 1413년(태종 13) 언양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언양의 별호는 헌산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따라 1895년에 동래부 언양군, 1896년에 경상남도 언양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언양군은 폐지되고, 하북면·상남면·중남면·삼동면은 그대로, 상북면·중북면이 언양면으로 통합되어 울산군에 병합되었다. 1932년에는 상남면·하북면이 상북면으로, 삼동면·중남면이 삼남면으로 합해졌다. 1971년에 삼남면 삼동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9년 삼동면으로 승격·분리되었다. 1995년 실시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울산시에 속하게 되었고, 1996년 언양면은 읍으로 승격했다. 1972년에 발견된 청동기시대 유적인 언양읍 대곡리의 반구대바위그림 등이 유명하며, 그밖에도 많은 불교 유적이 있다.
1) 언양 도중에[彦陽途中] / 오횡묵(吳宖默 1834~1906)
過了一山又一水 산 하나 넘고 나니 또 물 하나이니
山山水水險巇哉 산은 산마다 물은 물마다 험난하여라.
斜陽執策因將進 해질녘 채찍을 잡고 애써 앞으로 가는데
只怕前溪風雨來 다만 앞 시내에 비바람이 몰아칠까 두렵다네.
2) 언양즉사[彦陽卽事] / 이윤우(李潤雨 1569∼1634)
十年兵火地 십년 전쟁이 쓸고 간 곳
籬落半丘墟 울타리 반이나 폐허가 되었네.
風雪三冬後 눈바람 속에 겨울 석 달이 지났는데
城池百戰餘 성(城) 해자는 수많은 전쟁을 겪다보니
民生依草莾 민생고는 풀숲에 의지하고
廨宇類村居 관청 집은 시골 삶과 같다네.
少吏兩三輩 두서명의 서리도
罷衙猶讀書 공무가 파하면 오직 독서 뿐.
3) 언양 도중에[彦陽道中] / 박지서(朴旨瑞 1754∼1821)
一別仙區客馬催 신선의 땅과 이별 한 후 나그네는 말을 재촉하는데
野風吹送汚人埃 더러운 세상 티끌을 들판의 바람이 불어 보내네.
出山便與雲烟隔 산에서 나오려니 구름과 안개가 가로막는데
踰嶺偏經險阻來 재를 넘어 험준한 길을 어렵게 지나왔다.
地近魚鹽廛市錯 가까운 저잣거리 가게에 생선과 소금이 번다하고
城依槐柳縣門開 회나무 버드나무에 의지한 성(城)에는 관아 문이 열려있네.
行行直入金沙界 가다가 금사계(金沙界)로 바로 들어가 보니
洞口林深路轉回 동네 어귀의 무성한 숲으로 길이 돌아 이어졌네.
[주] 금사계(金沙界) : "금모래가 펼쳐진 세계"로 관세음보살의 거처를 일컫는다. 황금빛 모래밭.
4) 헌양현(언양현) 석남사에서 숙박하며[宿巘陽石南寺] 당시 언양현을 겸임하고 있어 이 절을 지나갔다(時以彦陽兼任 過宿此寺) / 와은(臥隱) 장위긍(1678∼1747)
西風高倚枕溪樓 서풍에 의지한 높은 침계루(枕溪樓),
赤葉黃花滿目秋 단풍과 황국화 눈에 가득 가을일세.
石欲補天撑北極 태곳적 하늘과 땅을 열고 북극성을 지주 삼아
水知潮海向東流 바닷물을 동쪽으로 향해 흐르게 했다네.
間僧解笑重來客 해탈의 웃음 짓는 스님 뵈려 다시 찾아왔는데
老倅那堪二縣憂 늙은 수령이 두 고을의 근심 어찌 감당하리까
明日雲門山下路 내일 산 아래 길로 운문(雲門) 찾아가리니
可憐霜雪已侵頭 가련토다! 아 어느 듯 머리는 눈서리일세
[주] 침계루(枕溪樓) : ‘계곡을 베개 삼은 누각’, 가지산 석남사(迦智山 石南寺)에 있는 당우이다. 울산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산232-2에 위치하고 있다.
5) 언양 구일 날 회포가 있어[彦陽九日有懷] 유종원 차운(次柳宗元韻) / 정몽주(鄭夢周 1337~1392)
客心今日轉凄然 나그네 마음 오늘따라 너무 쓸쓸하여
臨水登山瘴海邊 물 따라 산 따라 바닷가에 나왔노라
腹裏有書還誤國 지식 있어도 나랏일 오히려 그르쳤고
囊中無藥可延年 주머니에 약 없으니 오래 살지도 못하겠네.
龍愁歲暮藏深壑 세밑 용은 골짜기에 숨어 서글프고
鶴喜秋晴上碧天 가을 학은 푸른 하늘에 날아 기쁘구나
手折黃花聊一醉 손으로 국화 꺾어 다시 한 번 취하니
美人如玉隔雲烟 우리 임금 옥 같은 모습 구름 넘어 떠오르네.
6) 언양 주표에게 받들어 전별하다[奉贐朱彦陽杓] / 서석린(徐錫麟 1710~1765)
六鎭人豪官十最 육 진영의 뛰어난 인사, 최고의 관리 열 명,
繡衣褒美又何如 어사또의 아름다움을 기리니 또 어떻다 하리오.
漢廷縱薦循良績 넉넉했던 한나라 조정에서 훌륭한 치적 남겼는데
卽墨嗟無左右譽 벼루로 좌우의 명예를 따지지 않았으니 감탄하노라.
不許再馴南海鰐 남해의 악어를 재차 길들이기를 허락지 않으니
空令歸釣北溟魚 북명어(北溟魚)의 돌아갈 약속도 쓸데없구나.
離筵欲餞秋江水 이별의 자리에 가을 강물도 전송하려하는데
烏鵲多情亦擁車 까마귀와 까치도 다정하게 수레를 막아서네.
[주] 북명어(北溟魚) : 북해(北海)에 있다는 물고기. 그 이름이 곤(鯤)인데, 이것이 변화하면 붕새[鵬]가 된다고 한다.
<울산광역시 ‘언양현(彦陽縣) 관아(官衙)Ⅰ‘ 한시(漢詩)편 2.> 총17편 中
언양읍성은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와 서부리 일대의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석축성으로 네모반듯한 평지성이다. 둘레 1,559.7m으로 성벽의 현재 남아 있는 최고 높이는 4.85m이다. 읍성의 동서남북 성벽 중앙에는 옹성을 두른 성문이 배치되었다. 또한 각 성문의 좌우와 성벽이 꺾이는 모서리마다 성벽에서 돌출되게 쌓아 성 밑에 접근하는 적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시설인 7m~8m×8m~10.4m 규모의 사각형 치성을 배치하고 성벽 바깥에는 해자(海子)와 뾰족한 말뚝인 목익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어 조선시대 평지읍성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1390년에 성벽 둘레 1,427척, 높이 8척 규모의 토성으로 축조하였으며 군창이 있고 웅덩이 4곳과 우물이 2곳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석축성은 1500년 당시 현감이었던 이담룡이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 쌓은 것이다. 고쳐 쌓는 과정에서 기존보다 더 넓게 쌓은 것으로 보인다. 읍성 내부에는 각종 관아시설이 있었는데, 《조선왕조실록》 1411년의 기록에 의하면 언양 객사가 불에 타 수리하였다는 내용이 보이며, 동헌은 1490년 6월 7일자 기록에 의하면 언양현 관아가 불에 타버렸으며, 1549년에는 언양의 관사를 신축한 내용이 적혀 있다.
7) 언양객사에서 머물며[留彦陽客舍] / 이윤우(李潤雨 1569∼1634)
舘宇重新古彦陽 관사를 새로이 중건하는 옛 언양현
蕭條城郭半頹傾 스산한 성곽이 반쯤 무너져 있네.
丘原尙帶千人血 언덕에는 아직도 천 사람의 피가 둘렀는데
郊壘重經百戰塲 보루(堡壘)는 거듭 수많은 전쟁을 치룬 장소일세.
山近雲門來淑氣 산 가까운 운문(雲門)에 봄기운이 오고
川通滄海聽潮聲 내와 통하는 넓은 바다에서 조수소리 들려온다.
三日留連使君酒 삼일 동안 사군과 술을 마시며 머물었는데
中宵按釰看扶桑 한밤중에 칼을 어루만지며 부상을 바라보았네.
8) 언양 동헌에서 짓다[題彦陽東軒] / 용헌(容軒) 이원(李原 1368~1429)
仲冬風日似春陽 한겨울에도 날씨가 봄날처럼 따스하니
四季花開映短墻 사계절 꽃이 피어 낮은 담장 비추네
慈母未知南地暖 어머님은 남쪽 땅이 따뜻한 것 모르시고
應將手線作衣裳 손수 바느질하여 옷을 짓고 계시겠지
9) 언양관 회포를 쓰다[彦陽舘書懷] / 이헌경(李獻慶 1719~1791)
山雨蕭蕭海氣流 산비는 쓸쓸히 내리고 바다 기운 흐르는데
行人獨上鷲西樓 가다보니 독수리가 서쪽 누각 위에 홀로 앉았네.
關雲迢遆三千里 먼 하늘 끝 관방은 아스라한 삼천리이니
父子應同永夜愁 부자가 응당 밤새도록 시름에 잠겨있네.
● 임진왜란 이전의 인물로서 퇴계 이황의 수제자인 간재 이덕홍(李德弘)은 임진왜란 직전인 1591년, 통도사 가는 길에 언양에 들러 위의 시를 남겼다. 장주의 나비 꿈(蝴蝶之夢)이란, 장주(莊周)가 꿈에 나비가 되어 날아다녔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장주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꽃과 꽃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즐거운 나비 그 자체였다. 그러다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나비가 아닌 장주가 아닌가. 그러나 꿈은 너무나 생생하여 마치 꿈속의 나비가 자기의 진짜 모습 같았다. 그렇다면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는 나비이고 그 나비인 자기가 꿈속에서 장주(莊周)가 된 것인가? 꿈이 현실인가 현실이 꿈인가? 이 이야기는 자아(自我)와 타자(他者)의 구별이 없는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장자의 우화적인 비유다. 곧 이 말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 또는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10) 언양 관각[彦陽官閣] / 이덕홍(李德弘 1541∼1596)
坐閣探荷實 누각에 앉아 연꽃 열매를 찾아보다가
跨城望竹林 성곽 너머 대밭을 바라보았네.
小杯成一款 작은 술잔 한잔에도 취하니
莊蝶我先尋 내가 먼저 장주의 나비를 찾아볼까나.
11) 언양동헌 고조운에 차하다[次彦陽東軒高祖韻] / 홍성민(洪聖民 1536∼1594)
昨夜羈魂到漢陽 지난 밤 꿈속에서 한양엘 갔더니
覺來南極海天長 깨어보니 여기는 남쪽 끝 머나먼 곳.
楣間忽見吾先筆 문미(門楣) 사이로 고조부 필적을 보았더니
客裏還疑是故鄕 나그네 마음속은 여기가 고향인 듯.
映樹疏簾和霧濕 그림자 비친 주렴, 안개에 젖어 촉촉한데
臨池小閣得風涼 연못가 정자는 바람 불어 시원하네.
此中世荷君恩重 언양에서 대를 이어 임금 은혜 입으니
前後淸遊各一場 고조 현손 한 번씩 상쾌하게 잘 놀겠네.
[주1] 고조(高祖) : 이 시는 작자가 그의 고조부인 동지성균관사 우국재(友菊齋) 홍경 손(洪敬孫)의 시 <平近堂(언양동헌)>의 운자(韻字)를 따라 지은 것이다.
[주2] 기혼(羈魂)·기심(羈心)·객심(客心) : 여행할 때의 마음. 나그네의 마음.
12) 언양 동헌운에 차하다[次彦陽東軒韻] 고을 수령 유사군에게 바친다[呈主倅柳使君] 이름이 ‘회‘, 자는 호호, 나의 죽마고우이다.(名淮 字浩浩 與余有竹馬之舊) / 구사맹(具思孟 1531∼1604). 조선 선조 때의 인물로 이조판서, 좌찬성을 지낸 구사맹은 사행을 받아 언양 고을을 지나면서 그의 죽마고우인 유회(柳淮 1530~?)가 현감으로 6년째 있는 언양 동헌에 들러 시를 지었다.
環滁山色慰歐陽 둘러친 맑은 산색이 구양수를 위로하는 듯,
此地還應寄興長 여기 언양 땅은 응당 흥도 또한 길어라.
百里桑麻分竹使 백리에 걸쳐 뽕밭 삼밭 대밭이 늘어섰는데
六年魚稻滯桐鄕 육년 동안 어진정사 베풀어 물고기와 벼도 풍성해라.
榴花照座朝吟暖 석류꽃에 해 비치는 아침이 따뜻하고
荷氣侵軒午夢凉 연꽃 기운이 영화루에 미치니 낮잠 꿈이 시원하네
莫恨賓筵無異味 손님 접대 자리에서 무슨 별미를 찾을손가?
不妨隨意作懽場 마음대로 그냥 한 상 차려 대접하시게.
13) 언양 동헌 차운[次彦陽東軒韻] / 임운(林芸 1517∼1572)
蕭條十室獻山陽 고헌산의 남쪽에 쓸쓸한 십여 채의 집이 보이고
指顧令人感興長 가리키는 곳 돌아보니 감흥이 끝없구나.
已業詩書敦所尙 시서(詩書)를 공부하여 풍속을 돈독히 하니
幾多忠信介於鄕 충신(忠信)의 고장에서 으뜸으로 손꼽히네.
蓮塘霧捲波光凈 연당에 안개 걷혀 물결 맑게 빛나고
竹塢風回玉韻凉 대밭에 바람 불어 맑은 소리 시원하네.
倘把好懷常對此 언제나 흐뭇하게 이 풍경 보면서도
免敎虛老醉醒場 헛되이 늙은 이 몸은 술자리나 피했으면.
14) 언양객사에 쓰다[題彦陽客舍] 제화(題畫) / 정유길(鄭惟吉 1515∼1588)
點空南去雁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는 하늘에 점을 찌고
浮碧北來舟 북쪽에서 오는 배는 푸른 강물 위에 떠 있네.
捲網投漁店 그물 거두고 어촌 주막에 들어가니
蘆花細雨秋 갈대꽃 위로 가랑비 내리는 가을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