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훈목사의 희망편지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역경을 마주합니다. 어떤 이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낙담하거나 좌절하지만 이와 반대로 꿋꿋하게 역경을 딛고 일어나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시각 장애를 딛고 일어나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강영우 박사의 이야기는 우리가 고난을 만났을 때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큰 가르침이 됩니다.
강영우 박사는 13살 때 친구들과 공놀이하다가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실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얼마 후 홀로 계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누나마저 세상을 떠나 그는 고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고아가 되기 직전 누나의 손에 이끌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전신인 대조동 천막교회를 찾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 강영우 박사의 삶은 절대 절망에서 절대 희망으로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영의 눈을 뜬 것과 더불어 해외 유학의 꿈을 꾸었고,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후 아내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3년 8개월 만에 피츠버그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렇게 한국 최초의 시각 장애인 박사가 된 그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냈고,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 겸 루스벨트 재단 고문으로 7억명에 가까운 세계 장애인의 복지 향상을 위해 헌신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2012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강영우 박사의 꿈은 아내 석은옥 여사와 두 아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석은옥 여사는 남편의 뒤를 이어 시각 장애인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여 ‘제2의 강영우’가 될 인재를 육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첫째 아들은 안과의사로, 둘째 아들은 변호사로 어머니와 함께 장학사업에 힘쓰며 세계 곳곳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던 강영우 박사는 자신의 유고작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에서 삶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저에게 장애는 축복 그 자체였습니다. 저를 보면 어둠인데 주님을 보니 빛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만 보았습니다. 장애는 불편함일 수는 있어도 불완전함은 아닙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질병과 같은 것입니다. 당신을 지배하는 생각의 장애, 마음의 장애, 영의 장애를 뛰어넘어 나의 장애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꿈은 이뤄집니다 … 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희망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습니다. 제 생애는 결코 고통의 시간들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을 낙심하게 하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내게 닥친 역경이 태산처럼 너무나 커 눈앞을 캄캄하게 가릴 때 그 역경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믿음으로 나아가면 어느새 그 꿈을 모두 이루는 위대한 승리자의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