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없어야 더 행복한 곳… 세상에서 가장 슬픈 놀이방을 아시나요
[아무튼, 주말]
이혼 자녀들이 가는
가정법원 아동 시설
최인준 기자
입력 2023.06.24. 03:00
업데이트 2023.06.25. 06:10
주요 가정법원은 이혼 절차를 밟고 있거나 이혼한 부부가 법원에 갈 때 동반한 자녀들이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도록 키즈카페처럼 별도 공간을 꾸몄다. 사진은 어린이 장난감, 책을 구비한 서울가정법원 내 면접교섭센터. / 조선일보DB
“아이 혼자 입에 피자 물고 닭똥 같은 눈물 흘리며 유튜브를 보고 있더라.”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놀이방’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 어느 음식 배달 기사의 글이다. 함께 올린 사진에는 환한 실내에 미끄럼틀과 볼 풀장이 갖춰져 있었다. 얼핏 키즈카페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곳은 한 가정법원에 마련된 돌봄 시설이다.
이어지는 배달 기사의 글. “엄청 넓은 곳에 맡겨진 아이가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공기도 차갑고, 보육사 한 분이 아이와 함께 있을 뿐. 마음이 스산해서 그 자리에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게시물엔 ‘애들은 죄가 없죠’ ‘아이가 없을수록 더 행복한 놀이방이네요’라며 안타까워하는 댓글이 달렸다. 자신의 자녀가 쓰던 장난감을 놀이방에 기부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들은 어쩌다 이런 슬픈 놀이방에 가게 된 걸까.
◇법원에 어린이 놀이방 생긴 사연
가정법원 내 어린이 시설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부부가 법원을 찾을 때 자녀를 맡기는 공간이다. 이혼 재판을 하려면 부모가 모두 법원에 출석해야 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이 짧은 시간이나마 편안하고 밝은 분위기에서 머물 수 있도록 놀이방처럼 꾸며놨다. 지난해 미성년 자녀가 있는 부부의 이혼은 3만9000여 건으로 전체 이혼의 41.7%에 달했다. 한 법원 관계자는 “재판을 받는 동안 법원 복도를 혼자 서성거릴 아이들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부모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고 만들었다”고 말했다. 2015년 서울가정법원을 시작으로 대전·대구·광주·부산 등 다른 가정법원에도 도입됐다. 현재는 서울, 대전 등에선 놀이방은 운영하지 않는다.
부모 손을 잡고 가정법원을 찾은 아이들은 놀이방 혹은 아동실이라 불리는 공간에서 1∼2시간가량 머물러야 한다. 어린이 보호 시설은 아이들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뽀로로·타요·코코몽 등 인기 캐릭터 인형과 아이언맨 가면, 보드게임 등 연령대별로 선호하는 장난감을 갖췄다. 양육권 소송을 하면 한쪽 부모가 자녀와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판사 명령에 따라 주기적으로 부모와 자녀를 한자리에서 만나게 하는데 이럴 때에도 법원 내 어린이 시설을 이용한다. 대전가정법원에선 유아, 초등학생 자녀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미술 치료, 모래 놀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부부가 원만하게 이혼 협의를 하지 못해 재판이 길어지면 아이들도 법원 아동 시설에 더 자주 가야 한다. 김성희(41)씨는 3년 전 남편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지방의 한 가정법원 놀이방에 다섯 살 딸을 수차례 맡겼다. 김씨는 “재판 끝나자마자 남편이 동네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데려갈까 봐 불안해 법원 놀이방을 이용했다”며 “재판 직후 아이가 ‘장난감 나 혼자 다 갖고 놀 수 있어. 내일 또 오자’고 말하는 걸 보고 억장이 무너졌었다”고 했다.
◇이혼 후 부모·아이 만나는 통로
이혼 절차가 끝나면 양육권이 없는 비(非)양육 부모는 자녀를 제대로 만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법원에선 이를 막기 위해 이혼 후에도 부모와 자녀가 원활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인 면접교섭센터를 운영한다. 이혼 부부들이 키즈카페 같은 공공장소에서 자녀와 만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 중립 장소인 법원을 찾게 하는 것.
면접교섭센터도 부모와 자녀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어린이 놀이방처럼 조성했다. 부모가 이혼한 상대 배우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 아이와 만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 양육자와 비양육자 부모는 서로 다른 출입구로 면접교섭센터에 들어간다. 양육자가 별도 대기실에 머무르는 사이 비양육자가 자녀와 1시간가량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모든 과정은 반투명 유리 뒤 관찰방에서 가사 조사관과 전문위원이 참관한다. 아이에게 이혼 상대에 대해 험담을 하지 않는지, 학교나 집 주소 등 개인 정보를 물어보지는 않는지 살핀다. 비양육자 대부분이 아버지인데, 가정 폭력 사유로 이혼한 경우가 있어 전문위원이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 가정법원 관계자는 “지난달 이혼 3개월 만에 초등학생 아들을 만난 한 40대 초반 아버지는 한 시간 면접 교섭이 끝나 아들을 보낸 뒤 놀이방 한가운데서 무릎 꿇은 채 오열했다”며 “아이와 함께 있는 동안 꾹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 것”이라고 했다. 이곳에선 ‘비양육자’와 ‘양육자’라는 법률 용어 대신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른다. 이혼했거나 이혼 절차를 밟고 있지만 결국 아이의 부모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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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삭
2023.06.25 04:49:52
우리나라 모든부부 원만하게 살게되어 // 가정법원 놀이방의 이용자가 없어지는 //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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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원39
2023.06.25 06:57:05
아이는 부모가 함께키워야, 어린 자녀를 두고 어떻게 이혼해야 하나. 참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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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낭그래
2023.06.25 06:48:37
사람의 마음들이 이기주의적으로 너무 변했다. 상대방의 외도나 정말 막나가는 정도가 아니라면 단순한 성격차이라든지 그런 핑게로 이혼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자신의 마음을 좀 내려놓고 서로 이해하는 폭을 넓혀야 하는데 요즘은 너무 극단으로 치닫는다. 서민들은 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많이들 이혼한다. 그런데 모든 이혼을 효과적으로 막을 방법 또한 돈이다. 경제력이 넉넉하면 일단은 참는 것도 가능해진다. 좀 더 인내할 수 있고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돈이 중심이 된 세상이다. 유물론 공산주의도 무상으로 나눠주는 돈 때문에 일어서다가 결국은 줄 돈이 소진되면서 망하는 것이다. 의리와 정에 사는 부부가 될 때 끝까지 해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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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둥이할머니
2023.06.25 07:46:05
가정법원에 이런곳이 있다는것을 기사보고 알았다.평생을 헤어지지않고 함께 사는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지만 세상이 발전할수록 이혼율은 높아지는것이 웃픈 현실이다.이런 놀이방에 아이들이 없는것이 더 좋은 현상인것처럼 가정을 꾸민 많은 세대들이 참고 인내하며 서로이해해서 상처받는 아이들이 많지않은 사회되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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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Brian N.Y
2023.06.25 07:08:48
이혼 할거면 새끼 낳지마라.이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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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CS06
2023.06.25 07:04:43
인간으로서 기본이 안된자들은 아에 결혼 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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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
존고선나
2023.06.25 07:43:33
남편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지방의 한 가정법원 놀이방에 다섯 살 딸을 수차례 맡겼다는 어느 아내. “재판 끝나자마자 남편이 동네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데려갈까 봐 불안해 법원 놀이방을 이용했다”라며 “재판 직후 아이가 ‘장난감 나 혼자 다 갖고 놀 수 있어. 내일 또 오자’라고 말하는 걸 보고 억장이 무너졌었다”고? 지들 멋대로 사랑(?) 해 놓고서 아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혼한다고?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니? 삶이 조금만 힘들어도 이혼할 생각부터 하는, 그러고도 니들이 부모냐?
답글작성
4
2
1song
2023.06.25 08:16:21
이런 시설이 있다는걸 처음 알게 되었네요. 제목처럼 아이들이 사용하지 않는 놀이방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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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남극 살모사
2023.06.25 08:55:01
결혼하고 중간에 이혼할 거 대비해서 10년간은 아이 낳지마라. 11년차부터 애 낳아라. 책임도 못 질거면서 중간에 싸질러 놓고 이혼하면 아이들은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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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딸각발이
2023.06.25 09:11:31
부모의 행복, 아이의 불행. 대부분 모두의 불행.
답글작성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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