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속에서 피운 연꽃 -아네스의 노래 (영화 ‘시’를 보고)
- 우병녀 (월요일 오전반 6주차)
경기도 작은 도시, 서민 아파트에 사는 양미자(윤정희분)는 외손자와 살아간다. 노인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있지만 꽃을 좋아하고 이상한 말을 많이 하고 늘 예쁘게 꾸미길 좋아한다. 가슴이 아파 병원에 갔다가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진단과 함께 나오는 길에 성폭행으로 자살한 여중생 엄마의 넋을 놓은 모습을 보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동네 문화원에 붙은 시강좌 포스터를 보고 수강신청을 하게 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미자가 수강하는 시쓰기와 여중생 성폭행 사건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흐름을 이어간다. 영화에서 시쓰기가 의미하는 바는 뭘까? 왜 하필 제목을 “시”라고 했을까? 오프닝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에 여중생의 시체가 떠나려오는 그 지점에서 제목 “시”가 활자화 되어 나올 때 왠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시강좌에서 김용탁(김용택분)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잘 봐야한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잘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래서 사과를 들고 여러 각도로 보고 관심을 가지고 대화하듯 보라고 한다. 그리고 시를 쓴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말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시’란 고상한 취미거나 근접하기 어려워 나와는 상관없는 영역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시란 어려운 것, 시인이나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강좌 수업을 마친 수강생들조차도 시쓰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한다. 시인은 강좌가 끝나는 동안 시 한편은 써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시를 써낸 사람은 양미자 한 사람 뿐이다. 시가 어렵다는 수강생의 말에 시인은 시가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쓰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내가 존경하는 한희철 시인은 『고운 눈 내려 고운 땅 되다』에서 ‘시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최근 읽고 있는 『시와 소설과 그리스도인』에서 저자 이정일은 ‘시는 직관적으로 언어를 뚫고 사물의 핵심 속으로 들어가는 채널’이라고 하면서 시와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를 ‘시나 소설은 바로 문제의 핵심을 꿰뚫을 질문을 찾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뼈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문학은 사람들을 깨어있게 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살아 숨 쉬도록 하는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는 사물과 삶의 본질에 닿아있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깨어서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라는데.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미자는 추악한 현실 속에서도 시를 쓰기 위해 아름다움을 찾아 헤맨다. 나무를, 새를, 강물을, 살구를 유심히 보고 관찰한다. 성폭행 사건에 손자가 연루되어 학부모들이 모여 대책을 의논하는 상황에서도 밖으로 나가 꽃을 관찰하고 무언가를 찾는 듯한 알 수 없는 행동을 보인다. 그리고 손자 문제로 학교에 불려갔을 때도, 피해자 엄마를 찾아 나섰을 때에도 그녀의 시작 메모에는 “새들은 무엇을 노래하나 ”, “살구는 스스로 땅에 몸을 던진다. 깨여지고 발핀다. 다음 생을 위해”라는 시구를 적고 있다. 그녀의 시 쓰는 행위는 마치 현실과 유리된 엉뚱한 행동 같지만, 오히려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삶의 본질을 꿰뚫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시낭송회의 일부 시인들과 시 애호가(?)들은 고상한 척 시를 짓고 낭송하지만 시를 음담패설로 격하시키거나,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추악하다. 자식들의 성폭행 사건을 돈으로 무마하기 위해 학부모들은 모여 의논하고 언론을 매수한다. 선생은 학교의 이미지를 위해 눈감아 주고, 경찰도 속히 문제 해결을 하도록 종용한다. 문제를 저지른 아이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고 반성도 없다. 손자 종욱이 보도록 죽은 희진의 사진을 놓아두지만 그는 관심도 두지 않고 밥을 먹으며 티비만 응시한다. 간병하던 노인은 마지막으로 남자 구실을 하고 싶다고 돈을 댓가로 요양보호사인 그녀의 몸을 요구한다. 삶은 구질구질하고 질척거린다. 그러나 그 진흙탕 같은 현실 속에서도 미자는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시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마지막 시간에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를 써내고 사라진다.
감독은 영화 곳곳에 다양한 상징과 은유를 깔아둔 듯하다. 학부모 회의 석상에서 창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찾는 미자의 모습을 통해, 희진이 투신한 강가에서 미자의 모자가 바람에 날려 떨어진 장면이나, 그녀가 글을 쓰려고 펼쳐든 메모지에 떨어진 빗방울,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이어 흐르는 강물, 아네스의 노래 시 낭송 중 갑자기 희진의 목소리로 바뀌면서 희진이 돌아보며 웃는 모습, 손자에게 피자를 사먹이고 손톱을 깎은 뒤 경찰에 넘기는 모습, 그리고 그 음담패설하던 경찰과 배드민턴 치는 모습 등 장면 장면 사이 감독의 의도를 읽어내며 영화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굉장히 사실적이고 디테일한 심리 표현까지 해낸 연기자들의 연기력도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했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끌었던 것은 영화 마지막의 <아네스의 노래> 였다. 영화를 마무리 짓는 듯한 이 시의 전문을 읽고 싶어 시를 옮겨 쓰다 검색해보니 박기영의 노랫말로 쓰여 있었다. 그리고 이 시는 이창동 감독이 故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그를 위해 썼다고 하니 시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영화 ‘시’ 속의 아름다운 시 ‘아네스의 노래’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네스의 노래 / 양미자 (원작: 이창동)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젠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젠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나의 오랜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youtu.be/GSQv1f7TJ14 (박기영의 아네스의 노래)
첫댓글 이미 영화를 보셨겠지만 박기영의 아네스의 노래 함 들어보세요. 시 내용들이 배경으로 담겨있으니 음악 들으시면서 다시 한번 감상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좀 있다 뵙겠습니다.
우와~~ 노래가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이렇게 보니 또 새롭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