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륙 고려설 주장자가 고려가 금나라와 송나라 사이에 있었고, 그곳이 산동반도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http://cafe.daum.net/sisa-1/f8lD/758
http://www.godemn.com/xe/?mid=seek_truth&category=17670&order_type=desc&document_srl=9578
그의 주장은 고려가 금나라와 접(接)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송나라와도 접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주장에 의하면 고려는 당연히 지금의 중국대륙에 있어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료는 그 해석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고려사나 고려사실록 인종 14년에 나온 내용 등을 해석할 때는 여러 사료를 토대로 검증에 검증을
거쳐야 한다.
아래는 인종 재위 원년에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이 1123년에 지은 고려도경 제3권 성읍(城邑) 편에 있는 봉경(封境)과 국성(國城)항목의 내용이다. 1123년이면, 아직 금나라에 밀려 장강 이남으로 옮기기 전이다.
통상 1127년 금나라의 확장에 밀려 장강(양자강) 이남으로 옮기기 전을 북송, 이후 임안(지금의 항저우)에
도읍을 옮긴 것을 남송이라고 불러 구분하였다. 수도는 개봉(開封, 또는 변경), 남쪽으로 옮긴 후 실질적인 수도는 임안(臨安)이다. (맨 아래 그림 참조)
http://blog.naver.com/bhjang3/221033199362
봉경(封境) 첫 구절을 보면, 대륙고려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또 다른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고려는 송나라 수도 경사(京師-주/1123년이면, 아직 금나라에 밀려 양자강 이남으로 옮기기 전이므로
수도는 개봉일 것이다) 동북쪽에 있으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고려의 국경까지 가는데 3천7백9십리라고 고려도경은 적고 있다.
즉, 위 대륙고려설 주장자의 주장처럼 송과 고려가 접(接)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산도(燕山道)는 송의 북쪽 행정구역에 해당할 듯하니, 그곳으로부터 거의 4000리가 떨어진 곳에
고려 국경이 있었다는 것은 고려가 산동반도에 있었다는 대륙고려설 주장자의 주장이 헛소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로 대륙고려설을 주장자들의 주장은 중구난방이다. 몇몇 키워드로 검색하면, 이들의 여러가지 주장을 볼 수 있다.
고려도경 그 다음 구절은 고려가 대륙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대목인데, 대륙에서 바닷길로는 여러 곳에서 갈 수 있고, 고려는 등주, 내주, 빈주, 체주와 서로 바라다보인다고 적고 있다. 서로 바라다보인다는 것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등주와 체주, 빈두, 체주는 산동반도의 북쪽에 있다. 산둥반도에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지역이
어디가 될 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북(河北)에서도 바닷길로 고려에 갈 수 있다고 했으니,
그 지역이 하북성(省)은 아닐 것임은 분명하다.
또 고려도경은 송에서 사신을 보낼 때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가며, 배 운행은 남풍을 이용하여 5일이 못되어 고려 해안에 닿는다고 적고 있다. 송사(宋史) 고려전
(高麗傳)에도 나오는 노정이다. 명주(明州) 정해(定海)는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진해현이다.
이 항로는 명주 정해현을 출발하여 매잠( 梅岑-昌國縣)에서 백수洋(浙江沿岸 海中)·황수洋(長江口의 濁水바다)·흑수洋(黑潮해역)을 지나 협계산( 夾界山-小黑山島)· 배도(排島-珍島 동쪽바다 섬)·흑산(黑山島)에 도착하여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나주·군산·인천·강화도를 지나 예성강(禮成江)에서 개경(開京)에 이르는 항로를 말한다.
http://contents.history.go.kr/mfront/nh/view.do?levelId=nh_009_0050_0030_0010_0030
요(遼) 멸망 (1125년)
첫댓글 특정시점만 가지고 고려제국이 대륙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분야에 전문적인 주장을 하시는 분은 사료 지도 문화양식 인물그림 천문기록 해외기록까지 다 살펴보고 확신을 갖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고려제국은 원나라에 멸망하면서 100년에 걸쳐서 대륙에서 밀려난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고려가 초기 중기 말기 시기별로 수도가 이동했다고 주장하더군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지요. 고려가 한반도에만 있었다라는 주장은 왜구가 써준 식민사학이지요.
고려가 한반도에만 있었다고 주장하지않지요. 어떤 영토 점유지역은 한반도를 넘어갈수도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대륙고려"라고 말할수 없지요. 인천대학의 어떤 분은 논리적인 여러 사료등 정황증거를 가지고 고려말기 압록강넘어 만주 지금의 심양부근까지 점유하고 있었다고 말하는데 상당히 개연성이 있는것으로서 그것을 대륙고려라고 말하지않습니다. 전촉왕 왕건이 고려를 건국했다고 혹세무민하면서 고려/조선이 전중국대륙을 지배했다고 말하고 중국역사자체가 대륙조선역사라고 하는것이야말로 정통역사를 개똥으로 만들려는 저의를 가진 민족역사말살, 사대매국,혹세무민하는 행위입니다.
양키왜구믿지말자 /
그 분이 누구인가요? 아마 사료 해석을 임의로 했을 가능성이 100%일 것입니다. 임모라는 분은 아니죠?
@청량산 심제 이진우박사입니다. 몇년안에 북방대륙사나 고려사를 책으로 낼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수십년 연구하셨으니 조만간 성과가 나올것으로 봅니다.
@청량산 청량산님이 이나라 재야사학자를 능가하는 아주많은걸 알고 계신가 봅니다
부정하는걸 보니 그런생각이!
@벗꽃필무렵 윗 글에 대한 근거있는 반론이나 하세요.
아니면 자기주장이 담긴 관련 글을 올리시던지...
고려도경에,
고구려 평양성은 한나라 낙랑군이 있던 지역이라 서술된 것으로 보면,
고구려 수도 평양성은 지금 북경근처이었던 것은 명확하네요...
북경 근처에서 고구려 지명과 고구려성의 형태가 많이 발견되는 이유가 있었네요.
고려 인종때의 고려 영토는 그이전 몇차례 전란으로 인해 점점 동쪽으로 옮겼다고 하니,
많이 쪼그라든 상태의 영토라고 생각됩니다...
줄어든 고려인종때의 고려영토의 서쪽 경계가 요수와 맞닫았다고 하니,
요수가 어딘가가 중요한데,
시대에 따라 요수의 위치도 바뀌죠...
그러나 지금 요하를 고려때 요수라 하더라도,
최소한 요녕성 길림성은 고려영토가 명확하네요...
그것도 쪼그라든 상태의 고려영토이니...
그러니 원래 고려영토는 현재의 요녕성 길림성을 포함하여,
더욱큰 영토이었다는 것은 고려도경에서 명확하게 입증하네요...
식민사관에 근간을 두고 설명하는 강단사학자들과 재야사학자들이 국회 같은 공개된 히의실에서 전국민을 상대로 토론회를 개최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