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213/200703]빨간 실장갑의 공포와 효용성效用性
실장갑, 특히 코팅된 색색깔(빨강, 파랑, 노랑) 실장갑은 공사장이나 건설현장 등에서만 찾는 게 아니다. 농촌에서도 늘 곁에 두고 애용해야 하는 생필품에 다름 아닌 게 실장갑이다. 실장갑의 효용성效用性에 대해선 모두 잘 알리라. 오늘은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된 물건, 실장갑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난해 시골집을 고치기 전까지는 어떤 실장갑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특히 빨간 실장갑은 보기만 해도 치를 떨었다. 군대시절기억하고 싶지 않은‘나쁜 기억’때문이었다. 80년대초(82년 4월 육군 입대) 군대는 폭행이 심했다. 지금은‘언어폭력’도 인권침해로 논란이 되지만. 입대 8개월만인가 처음 발령지인 대구 칠곡부대에서 5개월여, 겨울을 나는데, 1주일에 최소 한번 이상은 밤마다 부대 최고참의“집합”명령이 있었다. 근무장에서 고참순대로 차렷자세로 있으면 불문곡직, 구타毆打가 시작되었다. 빨간 실장갑을 끼고 졸병들의 가슴패기를 정확히 때리면 시멘트바닥에 쓰러지기 일쑤였다. 웃기는 것은, 뻐엉 뒤로 넘어지자마자 곧바로 일어나 다시‘때리라’고 가슴을 들이대는 것이었다. 나 역시 가슴을 내밀면서도‘이렇게 웃기는 짬뽕이 있는가. 차라리 탈영을 하자’고 맘 먹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런, 이런, 이런 야만적인 군대가 믿기지 않는가? ‘5학년(50대)’까지는 모두 겪었거나 들었거나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빨간 실장갑의 공포”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집 리모델링을 하는데 색깔은 차치하고 실장갑이 없으면 일이 안되는 것을 발견했다. 올해는 밭농사를 짓는데 실장갑이 필수였다. 아예 한 보따리(100벌, 무색 실장갑은 한 켤레에 300월, 코팅 색깔실장갑은 400∼500원꼴)째 사다놓고 쓸 수밖에 없었다. 공포의 실장갑이 효용성 영순위가 된 것이다. 손이 거칠어지는 것을 막기도 하지만, 안전문제와도 연결된다. 아무리 지저분한 일도 실장갑만 끼면 할 수 있다. 고마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흙이나 시멘트를 만져도 그만이었다. 생래적으로 몸에 무엇을 걸친다던가 손발에 무엇을 끼는 것을 싫어한 체질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사용한 후 처리문제였다.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기는 너무 아까운 것이다. 빨아 말려만 쓰면 몇 번이고 쓸 수 있는데 싶어, 차곡차곡 모아놓으니 수십 벌이 되었다. 코팅장갑이 절반을 넘었다. 너무 더러워 빨아도 도저히 깨끗해질 것같지 않아, 혼자 판단으로 하이타이를 몽땅 풀어 삶아보았다. 살짝 삶았으면 괜찮았을텐데, 삶아도 너무 삶았더니 큰 문제가 발생했다. 마르고 나니, 장갑의 코팅부분이 녹아 끈적끈적, 손가락들이 들어붙어 펴지지도 않아 버려야 했다. 빨지 않고 그냥 말려 사용하는 게 나을 뻔한 것이다.
아무튼, 오늘 오전 친구의 집 마당 공구리(시멘트 포장)를 하는데, 도와주려 가서 맨먼저 지급받은 게 실장갑이었다. 빨간 실장갑을 오랜만에 끼고 일하다보니, 20대초‘공포’가 떠오른 한편, 무수한 삽질을 하면서 그 효용성에 새삼 놀라웠다는 이야기이다. 재미없는 것같아도 한번 경험해 보시면 알게 될 것이다. 모처럼“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던 그 옛날 신문사 노조 파업때의 구호도 생각나, 주먹을 굳세게 쥐어보기도 했다. 여태껏 실장갑을 한번도 끼어보지 않았다면 꼭 한번 끼어보시라. 어느 경우든‘삽질하네’라는 흔한 비아냥의 말을 삼가게 될 것이다. 실장갑이야말로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첫댓글 아마 우리 군대생활할땐 빨간 고무 코팅장깁은 못써봤지?
친구마냥 실장갑도 빨아쓰고
아껴쓰던 시절이었지
지금은 공사장 구석마다 쓰던 장갑이 뒹구는 일회성으로 변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