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뺐다 박았다 넣었다 뺐다
“아니여! 제비 찾아야혀. 제비 찾아야 한당께.”
초점을 잃은 최사장의 말을, 스크린여주인은 마치 귀신에 씌운 사람의 헛소리처럼 생각했다. 스크린여주인이 퇴박 주듯 말했다.
“글쎄요. 제비 안 들어 왔다니까요.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 들어요? 보기는 멀쩡한 사람이.”
허지만 무슨 일에나 외골수인 최사장의 귀에 스크린여주인의 말이 들어올 리 없었다. 오로지 쁘리쌰 생각뿐이니까.
최사장이 다시 반복해서 물었다. 그러나 묻는 말인지 혼잣소리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참말로 요상혀. 분명히 왔는디?”
“아 왕짜증나. 이놈의 제비새끼 눈에 띄기만해봐라, 다리몽생이를 확 분질러 버릴거야. 오늘 정말 재수 없는 날인가봐.”
스크린여주인은 제 성질에 못 이겨 스크린프로그램도 맞춰주지 않고 횡구라니 3번방을 나가버렸다.
제비와 쁘리쌰의 행방이 미궁에 빠지자 최사장의 머리도 미궁에 빠져 머릿속이 하얗게 바랬다.
최사장의 신경은 오로지 쁘리쌰와 제비의 행적이었다.
종적을 알 수 없어 최사장은 실망했다.
실내골프유리창 너머로 남산을 바라봤다.
남산타워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멋진 조명을 달고 올라가고 있었다.
차라리 제비와 쁘리쌰가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타워로 갔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시계를 봤다.
10시5분.
11시5분이라면 몰라도 10시5분이라면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많다. 시간이 이렇게 많다면 쁘리쌰가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에 몸서리났다.
아무리 늦어도 새벽1시 이전엔 꼭 집으로 가야하는 제비에게 아직 2시간이나 여유가 있다는 사실이 최사장을 불안하게 했다.
2시간이면 세계역사를 바꿀 수 있는 시간인데 개인이라면, 더구나 죽고 못 사는 남녀사이라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짐작이 갔다.
최사장이 넋두리 같이 앓는 소리를 냈다.
“흐미. 아무래도 금일 밤이 종말이여.”
최사장은 힘없이 혼자 중얼거리며 음탕한 호텔룸의 깜깜한 어둠속에서 들어붙어 있는 쁘리쌰와 제비를 연상하자 좀비처럼 근육이 탁 풀렸다.
“아! 이 무신 날벼락이여?”
최사장은, 한숨만 푹 내 쉴 수밖에 없었다.
제비와 쁘리쌰가 만약 일을 저질렀다면 토요일 올라 올 채은숙과 자신도 이판사판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최사장이 말하는 담판이란 협상이 아니고 육탄전을 말하는 것이다.
꼭.
쁘리쌰 때문에 채은숙과의 육탄전을 미루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래서 최사장은 충무로의 개거맨으로 소문나 있는지 모른다.
개거맨이란 개그맨과 좀 다른 이, 아닌 아주 다른 장르다. 개거맨은 영어와 한국말 합성어다. 그러니까 개거시기같은 남자 란 뜻이다.
옆에서 최사장을 지켜보던 진회장이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
“최사장은 남의 여자, 남의 남자 갖고 왜 그런대유? 쁘리쌰가 글케 좋으면 제비하고 한판 붙어 버리셔유. 뒷일은 지가 책임 안질거이구먼유.”
“흐미, 무신 잡소리해쌌소? 본인이 언제 뿌리쌰 좋아한다캤소? 제비사장이 뿌리쌰를 너무 몬살게굴까 걱정됭께 그라재.”
“염려 붙들어 매셔유. 쁘리쌰가 제비사장한테 고분고분 당할 여자가 아니어유. 당해도 제비사장이 당할거이구먼유. 아침에 출근이나 할란지 의심스럽네유.”
그때 스크린여주인이 다시 3번방으로 들어왔다.
몹시 골이 나 있었다.
“제비 잡으러 온 거에요? 아니면 골프하러 온 거에요?”
진회장과 최사장의 대화에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아 머리만 기웃거리던 배장로가 푸시시 나섰다.
“먹기 좋은 떡도 젓가락이 있어야 먹지. 맨입으로 어떻게 먹으란 거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스크린에 골프장 넣어줘야 꼽든가 빼든가 할 거 아니요?”
“뭘 꽂아요? 생긴 대로 정말 이상한 분이시네?”
스크린여주인이 얼굴이 빨개져 배장로를 쏘아보며 날 서게 말했다. 스크린여주인의 오해를 살만한 배장로의 말은 전혀 다른 뜻이었다. 카페아웃인에 느닷없이 나타나 핸디 NO 란 오해를 불러 일으켰지만 배장로는 지난겨울, 제비가 담임목사를 초청한 김포의 한 골프장에 묻혀 라운드 했을 때가 유일한 골프장 출입경력이다. 아시다시피 그날은 배장로의 머리올리는 날이기도 했는데 캐디가방도 없이 나타나서 각종 기록을 수립했던 ‘제비와 꽃뱀’ 전편의 기억이 새롭다. 그날 배장로는 그린에서 제비가 폴대를 홀컵에서 뺐다 꽂았다하는 모습에 매료되었다. 어릴 때의 음악선생님처럼 정말 멋있게 보였기 때문에 다음 라운드에선 자신도 꼭 폴대를 뽑고 빼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린에 제일먼저 오르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다.
그런 뜻에서 뺐다 꽂았다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스크린여주인은 완전 다른 행위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기막힌 배장로가 스크린여주인에게 말했다.
“참말로 사장님이 이상한 여자네요. 생긴 대로 생각하시네요.”
“지금 저더러 꼽든가 빼든가 한다고 하셨잖아요? 성희롱했잖아요?”
배장로가 빤짝이는 정수리를 한번 쓰다듬으며 답답해했다.
“이보세요. 사장님! 골프하면 뺐다 박았다 넣었다 뺐다 하잖아요?”
“세상에 그런 골프가 어디 있어요?”
“아 답답하네!”
진회장이 답답해하는 배장로를 대신해 나섰다.
“장로님 말이 맞네유. 골프하면 그린에서 깃발 뺐다 꽂았다 하잖아유? 홀컵에 공도 넣었다 뺐다 하구만유. 사장님이 뭘 오해했시유? 왜 그런 오해했시유?”
진회장의 말에 스크린여주인은 어머머 만 연발했다. 얼굴은 더 붉어졌다. 마치 한 덩어리의 늦가을호박 같았다.
진회장의 해명에 어느 정도 스크린여주인과 화합하는듯했는데 최사장이 불쑥 튀어 나오면서 사태는 급변했다. 최사장은 스크린여주인과 진회장과 배장로의 대화에 참견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제비와 쁘리쌰 걱정으로 가득한 가슴에서 무시로 튀어 나온 말이었다.
“아무리 생각혀도 제비가 요 안들어 왔당거이 모략이어. 제비가 안들어 왔으면 내 손가락에 장 지져버릴껴. 맞아라 필시 제비 들어왔당께.”
최사장의 혼잣말을 빈정거리는 것으로 착각한 스크린골프장여주인의 반격이 바로 시작되었다.
“야! 지금 뭐라했냐? 뭐? 제비?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어? 쬐꼬만한 게 귓구멍도 막혔냐? 여기 안 들어 왔다면 주인 말을 믿어야지 니가 주인이야? 뭐야? 어서 나가! 썅놈의 새끼들! 니들에게 방 안줘도 먹고 산다. 얼릉 나가 안 나가? 이것들이?”
스크린여주인이 대노해서 대여용 캐디백에서 아이언을 쓰윽 뽑아 들었다. 여차하면 진짜 내려칠 기세였다.
스크린여주인의 기세에 눌려 세 남자는 대항은커녕 말도 한마디 못 꺼내고 뒷걸음치다 의자와 한단 높은 티박스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넘어지며 겁에 질려 소리쳤다.
“오메! 인간 잡소!”
“참으셔유! 고거 살인 무기여유.”
두 사람이 스크린여주인을 응시하며 뒤로 발랑 넘어진 반면 배장로는 옆으로 삐딱하게 공 굴러가듯 쓰러진 후 아예 두 눈을 감고 소리쳤다.
“오! 주여! 우리를 이 위험에서 온전히 지켜주소서!”
그때였다.
배장로의 다급한 기도에 응답하듯 3번방의 문 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그림자를 제일먼저 발견 한 배장로가 격동적으로 외쳤다.
“오! 주여!”
첫댓글 뺏다 박았다 그래서 우리말은 해석하기 나름이네요~~ㅎㅎㅎ
ㅋ
왜 이상한말만하세요?...헷갈리네요...ㅎㅎㅎㅎㅎ
남자도 사랑에 질투가 많네요~
진짜 질투는 남자들의 질투입니다....ㅎ
최사장 머리속에 뿌리샤만 가득 찼나 봅니다.
남자란 원래 필 꽂히면 하나 오직 한길이잖아요?
오늘밤도 고운시간되세요
사랑 질투 시기 어릴적 꿈 으로 얽힌 소설 제미있게 잘보았슴니다.
세상미님
이름만큼 세상이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고은 꿈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