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질문
천양희
눈이 녹으면 그 흰빛은 어디로 가나
그가 질문을 던졌을 때
우리는 다만
그 질문을 생각하고 기억하고 상상할 뿐
그 흰빛의 행방을 알 수가 없다
이 세상에
눈보다 더 눈부신 흰빛이 있을까
얼마간 의문을 가져보다가
생각은 머릿속으로 하는 혼잣말 같고
날리는 눈발은
하염없이 잃어버리는 목소리 같아
눈이 쌓이고 쌓인 눈 위에
또 눈이 쌓이는 것을 보면서
나는 누구의 기억 속에 얼마나 쌓였을까
거듭 가파른 생각을 한다
어느덧
눈에 눈[雪]물이 차오른다
눈이 녹아도
그 흰빛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눈을 쓸면서 뒤늦게 깨닫는다
저 흰빛만큼 눈부시게
내 생각을 들어 올린 구절은 없다
어떤 눈은 너로부터 무너지고
어떤 너는 눈처럼 쌓인다
눈이 와서 하는 일이란
나에게서 오점을 지워주는 일
백색이 전부인 눈의 세계도
유백 설백 청백으로 나뉜다는 걸 알고 난 뒤
눈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뜻밖의 질문을 받았을 때처럼 놀라서
눈길을 오래 걸어 본다
쌓이거나 녹거나 하는 것만큼
긴 문장이 있을까
돌아보니
어느 소설의 첫 문장같이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마침내 뜻밖의 질문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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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문학 좋은시 선정
설봉문학 / 설봉문인협회 2025년 1월 9일 좋은 시 선정 / 뜻밖의 질문 / 천양희
AZH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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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0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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