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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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ge〃─
48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지금 내 마음도 보연이와 같은 그런 사랑으로 고이 간직하는 건 어떨까하는.
선배를 향한 지금 이 마음을 짝사랑이라 칭하고, 그 안에서 그저 어떤 환상이라는 것에 따라
아름답게 간직하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 마주보고 좋아하는 것이 아닌, 나 혼자 좋아하고 나 혼자 아파하는… 그래서 상처받고
자꾸만 어긋나는 것 보다야 그게 낳지는 않을까?
환상 안에 고이 간직하고 아껴 봐야 할 감정을 자꾸만 알아주길 바랬기에,
그래서 어긋나지 않을 일까지도 어긋나는 건 아닌지…
내 욕심이 과분해,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 들어버렸다.
“다비야, 재훈선배 호출.”
일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뒷문이 열리면서 그 사이로 쪼르르~ 아영이가 들어왔다.
“호출? 왜?”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 봉사활동 가는 거, 결정 난 것 같아.”
“그 보육원?”
“응.”
“씨~ 안 갈 것 같이 굴더니 결국 가는 거야?”
“어여 다녀와.”
“같이 가자. 빽가야.”
.
.
“선배!”
“오늘은 칼이네?”
“그러게요.”
4층 복도에 올라와 5반 교실로 향하는데, 이미 친구들과 복도에서 장난질을 치고 있던 선배.
내가 부르자 이게 웬일이냐는 얼굴이다. 젠장. 앞으로는 시간 약속도 좀 잘 지키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겠다. -ㅇ-
“찾았다면서요?”
“토요일 날 봉사가기로 했거든,”
“어떻게 갑자기 날짜가 잡혔대요? 안 갈 것 같이 굴더니.”
“담당 쌤 어명이야. -_-;”
“어명?”
요즘이 무슨 옛날~ 옛적 조선시대도 아니고.
“갑자기 정해진 거니까, 그 날 일 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란 말이지.”
“그렇겠죠.”
“그래서 오전만 해야 하는 사람이랑, 시간 제약 없는 사람 명단을 좀 나눠오라네.”
“아~”
“명단 좀 작성 해 놓고, 오늘 방과 후에 잠깐 모이라고 해.”
“왜 점심시간이 아니라 방과 후예요?”
“점심시간엔 내가 따로 볼일이 있어.”
“무슨 볼일?”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마라. 다친다.”
“갈게요. =_=;”
“그리고!”
내가 서둘러 교실로 내려가고자 했을 때, 선배의 손이 다급하게 날 잡아 세웠다.
아직 무슨 할 말이 더 남은 건가 싶어 돌아간 몸을 다시 돌렸는데,
“휘문이 보고 갈래?”
이런~ 괜히 돌아섰다.
“종 칠 시간 됐어요.”
“아직 3분 남았어. 그 사이에…”
선배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보였지만, 때 마침 내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드르륵~
온몸을 떨어댄다. 이것이 기회이다 싶은 게, 난 얼른 전화기를 받아 들었고, 너무나 자연스레
계단을 밟아 내려올 수 있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뜻밖에도 다반이었다.
“어쩐 일이야? 오빠가 나한테 먼저 전화를 다 하고.”
[어디냐?]
“교실 가고 있어.”
[조퇴 증 끊었냐?]
“조퇴 증을 왜?”
[오늘 저녁에 파티 있는 거 모르는 건 아니지?]
“파티? 금시초문인데. =_=;”
[넌, 엄마 말을 뭐로 듣는 거냐?]
가만, 어제저녁 식탁에서 엄마가 뭐라뭐라 그러더니, 그 얘기가 파티애기였나?
이런~ 온 정신이 딴 데 가있으니, 들어도 기억을 못하는 군. 쯧, 자우지간 이놈의 풀리지 않는
일부터 얼른 풀어놔야지.
“오빠, 어떻게 알았어? 내가 기억 못하고 있을 거란 걸.”
[잔소리 말고 얼른 조퇴 증 끊고 엄마 사무실로 가라.]
“무슨 파틴데?”
[잘은 몰라. 그냥 거래처에서 자리 마련한 자리라는데, 엄마가 너 옷 사준다고 일찍 보내랬어.]
이런~ 우리 엄마, 모든 걸 통탈했군. 내게 말 하는 것 보다 다반오빠한테 말 하는 게
더 빠르다는 걸 알고 있어.
근데 이놈, 이거- 오늘따라 꽤나 순순히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 아무래도 성격상,
평소 같으며 오전 수업이라도 마치고 가라고 할 텐데. 흐음~ 희한하네.
“옷 안 사도되는데.”
[그건 엄마랑 해결하고, 종치기 전에 교무실부터 가라.]
“오빠들은 안 가?”
[정상 수업 마치고 갈 거야.]
“알았어.”
참, 그러고 보니 오늘, 내 임무가 있는데 어쩌지?
“빽가야,”
“누군데? 무슨 전화야?”
“작은오빠. 암튼, 아영아~”
“응?”
“나, 급하게 조퇴를 좀 해야 하거든?”
“조, 조퇴? 갑자기 왜?”
“집안 행사. 그래서 말인데, 재훈선배가 말 한거 니가 좀 해줘야겠다.”
“뭐, 뭐래? ㅡㅡ^”
“담 쉬는 시간에 내가 재훈선배한테 전화해 놓을게. 그럼 부탁해~”
“야, 야!”
“아영아~ 사랑해~”
.
.
그날 저녁 7시.
한사코 괜찮다는 내게 엄마는 기어이 핑크색의 이브닝드레스를 입혀 놨다. 다반이가 보면 필시,
‘니가 공주냐?’하면서 놀릴 터인데. -_-;
모처럼 당당하게 학교를 쌩까고 즐긴 여유. 엄마는 작정이라도 한 사람마냥 하루 일과를
모두 재껴두고 나를 데리고 방방곳곳을 돌아다녔다. 가까운 유원지에서 잠시 바람도 쐬고,
맛난 점심도 먹고. 엄마가 즐겨 다니는 샵에서 드레스도 사주고…
모처럼 바쁘고, 재미난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7시 정각. 난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가 예쁘다고 말한 핑크색원단의 이브닝드레스를
입고서는 ‘K'호텔의 로비를 걸어가고 있었다.
“아빠는 어디래?”
“지금 오시는 중일거야.”
“오빠들은 와 있으려나?”
“글쎄. 일단 올라가보자.”
“네.”
“우리 다비, 오늘 참 예쁘다.”
엄마를 따라 올라간 7층의 연회장. 대략 사오십 명 가량의 인파가 몰려있었다. 곱게 차려입은
이브닝드레스와 정숙해 보이면서도 고급 서러워 보이는 양장들. 괜스레 엄마가 멋있어 보인다.
-_-;
“엄마, 첨보는 사람들 댑따 많다.”
“이번 자리가- 엄마 이번에 새로 맡은 일로 엮인 사람들이라서 그래.”
“그래서 눈에 띄는 사람이 없는 거야?”
“왜? 낯설어? 불편해?”
“그런 건 아니고.”
“조금 있으면 엄마 회사 전이사님 알지? 그 분이랑 지환이네 식구들은 볼 수 있을 거야.”
“지환오빠도 와?”
“가족이 같이 하는 자리니까 오겠지?”
엄마 아빠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자리는 처음이 아니기에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늘 참석할 때면 보던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라 그런지
조금은 불편한 게 사실이다.
“아빠 오면, 적당히 눈인사나 좀 하고, 그래도 불편하면 오빠들이랑 먼저 들어가.”
“그래도 돼?”
“엄만, 불편한 자리에 억지로 데리고 있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적당히 눈치 보다가 엄마가
말 없어도 가. 알았지?”
“응.”
“저기 아빠 오신다.”
점점 시간은 흘러가고 조금 더 많은 인원이 홀을 메우면, 난 연신 엄마와 아빠를 따라 다니며
짤막한 인사를 했다. 엄마의 거래처 분들과 함께.
형식적인 그 인사가 다 끝나갔을 때쯤일까? 쌍둥이가 도착을 했고 사회자로 보이는 젊은 한
남자가 마이크에 대고 뭐라뭐라 떠들어대면 모두가 조용해진 가운데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렇게 대략 30~40분이 또 흘러갔고, 많은 사람들이 다소 부드러워진 자리에서 식사와 함께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난 그 때, 홀 한쪽으로 마련 된 발코니에서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쐬고 있었다.
안은 그야말로, 어른들의 자리일 뿐이지 더 이상 나와는 무관한 자리였기 때문에.
“여기서 뭐해?”
“아, 오빠.”
“바람이 시원하다.”
“응.”
“다 큰 아가씨가 신발도 다 벗어 던지고, 이런데서 혼자 뭐하는 거야?”
“하하하.”
난 어색하게 웃으며 냅다 벗어던진 힐 안으로 퉁퉁 부어오른 발을 꾸겨 넣었다.
지환오빠는 다 좋은데, 꼭~ 봐주지 않아도 되는 것만 놓치지 않고 본다니까. 우엉~ 이게 뭐야?
“발이 왜 이렇게 부었어?”
“드레스에 맞춰 너무 높은 걸 신었나봐. 헤헤.”
“세상에, 아무리 멋도 좋다지만,”
“엄마가 자꾸 예쁘다고 꼬시기에, 홀딱~ 넘어가 버렸지 뭐.”
“안 되겠다. 저쪽에 가서 좀 앉자. 그런 발로 어떻게 서 있을라고.”
절뚝절뚝, 퉁퉁 부은 발 때문에 제대로 된 걸음조차 걷지 못하며 힘들게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옮긴 곳은 야경이 너무나 멋진, 발코니의 가상 자리였다.
난 그 전망 좋은 자리에서 오빠와 몇 마디 담소를 나누었고, 그 와중에 또 갈증이 난 내가
오빠에게 시원한 음료를 부탁했다. 오빠는 단한번의 거절 없이 음료를 가지러 일어섰고,
그 사이 누군가가 내게 다가왔다.
“어라? 너는,”
“선배?”
“니가 말한 집안행사가 이거였냐?”
한껏 인상을 쓰고 있는 대로 폼을 잡고 다가온 사람은, 재훈선배였다.
살짝 쿵 인상을 써오는 것이 같다 붓다 말도 없이 조퇴를 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다.
“언제 왔대요? 난 선배 못 봤는데.”
“이게, 은근슬쩍 말 돌리네?”
“헤헤.”
“저녁에 있는 행사 때문에 조퇴하는 사람은 너 밖에 없을 거다. 아냐?”
“엄마 호출이었단 말예요.”
“그럼, 아까 얼굴 보고 말을 하던지, 갑자기 호출 하시진 않았을 거 아냐?”
“사실, 어제 들었는데 잊고 있었어요.”
“정신을 대체 엇다 팔아먹었기에.”
“그러게요. 후후.”
선배는 내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살짝, 풀린 듯 안 풀린 듯하지만, 느슨히 풀어놓은
넥타이가, 바람결에 살짝 쓸려 올라간 헝클어진 머리가, 이런 대서 보니까 또 달라 보인다.
쿨럭. =_=;
“뭣 좀 먹었냐?”
“아뇨.”
“배 안고파? 너, 먹는 거 하나는 끝발나잖냐?”
“씨이~ 말을 해도 꼭,”
“하하하. 근데, 너 의상이 딱 공주풍이다?”
씨이~ 오늘은 어째, 다반이가 조용하다 했더니만, 이 인간이 대신하네. 젠털. 그렇지 않아도
좀 있다 다반이랑 마주치면 분명 옷가지고 한 마디 할 텐데.
(아직까지 따로 서있지 않아서 놈의 태클이 없었다. 쿨럭.)
참, 그러고 보니 오늘은 빼도 박도 못하겠네? 나랑 쌍둥이랑 사이. 후훗, 제법 놀랄 얼굴이
기대 되는 걸?
“근데요 선배, 손에 들고 있는 거 뭐예요?”
“칵테일. 왜?”
“나 조금만 마실게요. 갈증나죽겠어요.”
“그러던지.”
이놈의 오빠는 도대체 음료수를 공장가서 만들어오나? 갈증나죽겠다고 그랬더니 왜 여태 안와?
썩어문드러질.
난 워낙 갈증이 심하게 나는 터라, 선배가 들고 온 붉은 빛깔의 멋을 자랑하는 칵테일로 입술을
살짝 적셨다. 코끝을 스치는 향도 달콤하고 혀끝에 닿는 맛도 달콤하니 제법 괜찮았다.
그래서 살짝 목을 축이는데, 꽤나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난 당연히 지환오빠일거라 생각을 했지만, 이번에도 예상외의 뜻밖의 얼굴이 보였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재훈선배와는 달리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얼굴이랄까?
아니, 이 인간은 왜 이런 데를 오고 난리야! 썩어문드러질 놈의 파티 같으니라고.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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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28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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