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0:1-13 빌하와 실바가 낳은 아들들
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2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3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4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5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6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7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8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9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10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11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12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13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아들을 낳지 못한 라헬은 야곱에게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항의합니다. 결국 라헬은 자기 시녀 빌하를 야곱에게 주고 경쟁하듯 레아도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 아들을 낳게 합니다.
빌하를 통한 대리 출산(1-8) 야곱은 라헬을 위해 결혼 후에도 7년을 더 수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라헬은 레아를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이유는 자신은 아들이 없지만 언니 레아는 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라헬은 야곱을 비난하면서 아들을 낳지 않으면 죽겠다라는 협박까지 합니다. 야곱도 라헬의 임신을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라헬이 잉태하지 못했습니다. 야곱의 입장에서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대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레아를 통해 이미 네 명의 아들을 얻은 상황입니다. 라헬의 시기와 질투로 자신의 시녀 빌하를 야곱에게 들여보내고 단과 납달리를 낳게 합니다. 라헬이 이 아들들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라헬의 속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라헬은 하나님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주셨다라는 뜻으로 단이라 이름 지었고 언니와 겨루어 이겼다는 뜻으로 납달리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성숙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경쟁은 자기 삶의 질만 떨어뜨릴 뿐입니다.
시녀 실바를 통한 대리 출산(9-13) 라헬이 시녀 빌하를 야곱에게 들여보내듯이 레아도 자신의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들여보냅니다. 실바가 출산한 아들은 갓이며 이 이름은 복되다는 뜻입니다. 이후 아셀도 출산하는데 그 이름은 행복이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레아도 시녀가 출산한 아들의 이름을 지어줍니다. 레아가 아들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모습에는 자신의 행복한 감정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많은 자녀의 어머니가 된 기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야곱은 가장의 권위가 전혀 보이지 않고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장자권을 얻기 위해, 라헬을 얻기 위해, 또 하나님의 사자에게 복을 받기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모습은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야곱의 이러한 수동적인 모습은 고대 사회에서 아들을 얻기 위한 당시 가치관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순종해야 합니다. 가정의 책임자인 가장은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화목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적용: 세상 속에서 살아가나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일본 하코네의 아름다운 숲에 있는 폴라 미술관에 가면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던 빈센트 반 고흐의 '엉겅퀴 꽃' 등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길가에 흔히 피어나는 엉겅퀴가 반 고흐의 손을 통해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을 보면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도 마치 길가의 엉겅퀴처럼 보잘것없어 보이고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멘토를 만나고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한다면 멋진 삶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