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산야에 꽃 천지다. 일시에 만개하는 꽃들을 보노라면 심비롭다. 금산사에서 벗꽃 축제가 있어 금산사에 이르는 동안 가로수로 심어논 왕벗꽃이 일시에 만개 하여 차창 밖으로 보니 꽃 동굴속으로 빠져드는 황홀감이 신비 롭다. 올 봄의 꽃은 유독 아름 답다. 내 동생이 4.9 총선에 출마하여 전주 덕진에서 당선 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내 고향 향노산 자락에 위치한 조그만 암자인 북고사 대웅전 뜰에 한 그루 벚나무(사쿠라)가 봄 햇살을 받아 눈 꽃 처럼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찾아 본 터라 만고풍상의 세월이 속을 뒤집어 놓고, 우람한 등치가 무색하게 얼마 남지 않은 한 쪽 표피만 간신히 제 몸을 지탱하고 있다. 무상무념의 해탈 일까? 비바람이 몰아치고 눈보라가 휘감아도 아무런 동요 없이 오직 그 자리를 지키고, 벌레들이 몰려와 속 살저 뜯어도 무심히 하늘만 응시하며 그 때 그모습으로 세월과 세상을 조응 하고 있다. 양초가 제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것처럼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새 순을 틔워 고운 꽃을 피우니, 자연의 힘은 거룩하다.
문득 오래전 일이 생각난다. 80년대 민주화 열풍이 불 때 나는 시골 지서장을 하고 있었고 동생은 민주투사로 험난한 가시밭길을 가고 있었다.625때 좌, 우익으로 형제간에 살육이 남의일로만 생각 했는데 나에겐 동생 때문에 무언의 압력과 좌천으로 마음고생이 말이 아니다.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게 공직이라 직을 유지하면서 참고 살려니 고통스러웠다. 특이 한 건 그 당시 가택 연금 상태였던 김대중 씨가 외신기자들을 대동하고 동생을 찾아와 1박을 하고 간 후 부터 더욱 감시 대상으로 엄청난 고초를 당하고 있었고 생존권마저 위협당하는 형편이었다. 그 당시는 동생의 행동이 무모함으로 자제하는 게 좋겠다는 나의 지론이었다. 형님! '저에게 굽어지고 휘어지라고 말 씀 하고 싶으시죠?' "자제 해야지 너 때문에 어디 살겠느냐?"'그럼 저는 그다음 짖 밟힐 겁 니다'. "그럼 안 되지 !"피가 치오르는 느낌이다. '왜 네가 그렇게 당해야 되나 !' 내가 살겠다고 동생을 내몰 수 없는 처지다.
나의 공직 생활 중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마음속에는 오로지 '참을 忍 '을 새기고 살았으니 말이다. 고진 감내라 던 가 ? 그 후 동생도 선거를 통해 단체장에 당선 되어 뜻을 이루었지만 모두가 일장춘몽이다. 나도 정년을 하여 세월을 축내며 이 나무 앞에 서 있지만 누구나 살아가면서 속이 썩어도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걸 터득 하였다.
그런데 지금 반쯤 썩어 있는 나무에 눈이 부시도록 피어 있는 꽃무리가 불현듯 이 땅에 정의와 진실이 공존공영하며 실천하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회의감마저 든다. 얼마나 더 기다리고 눈물을 흘려야 제 몸이 썩어가도록 고뇌하여야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얼굴을 맞 날까? 언제 누가 심어 만고풍상을 겪고 서 있는 이 벚나무는 원래 일본의 국화로 사쿠라 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일시에 만개 하여 눈이 부시다가도 일시에 낙화라 마치 눈이 오는듯 하다. 權不 십년이요, 화 무는 10일 홍이라! 피고 지는 꽃 중에도 유독 사쿠라는 성질 급하게도 일시에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다가 일시에 낙화하니 일본국민성을 대변하는 듯하다. 한 때 이 지역의 정치 노객이 '중도 통합론'을 이야기 했다가 '사쿠라'로 매도되어 정치 일선에서 물러서고 말았다.
사쿠라가 마치 친일 변절자라는 인상만 받은 채 같은 야당과 유권자로 부터 외면 받았으니 정치인의 말한 마디는 천금 같다 할 것이다. 내 동생도 단체장 임기를 마치고 4.9 총선에 출마 하여 전주에서 국회의원에 당선 되었다. 많은 괴뇌속에 선거기간 기적을 이루어 냈다.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게 그렇게 어려웁다는 걸 실감 했다. 그러나 앞으로 험난한 정치 여정을 잘 극복하고 국리민복과 공약을 성실이 이행 할 때 신임을 얻을 것이다. 가문의 광영이다. 한 때 찬란한 꽃잎을 휘날리며 녹음방초를 지나 가을 한로 가 되면 낙엽이 되어 歸根하듯 매몰찬 북풍한설이 지나면 다시 봄이 찾아오듯이 북고사의 벚나무(사쿠라)를 를 보면 변절과 권모술수로 점철된 오욕의 정치처럼 만고불변의 진리는 자연에 순응 하면서 사는 게 아닐 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