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808호
필경사
강신애
악보 베끼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 루소
한 권의 책을 읽고
평생 그 책을 베끼는 일을 집업으로 삼은 이스탄불의 사내
빗방울 음표들, 고독한 부호들, 빠짐없이
손으로 만들어낸 밤과 낮
극단처럼, 마침표처럼 아름답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북극으로 갈 필요는 없어요
오로라* 끝은 핏빛으로 불타고
가는 줄기들 커튼을 휘감으며 핑크빛 향연을 펼친다
애틋한 손금 위로 갈라지고 피어오르며
낯선 생의 온도를 나누어주는 가지들
피와 초록의 온도, 머지않아 피어날 흰 꽃의 온도
하나의 인생을 읽고
평생 그 생을 베끼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도 있다
몰입한 눈, 익명의 의지, 빠짐없이
맑은 잉크로 총총 헌화가를 뿌리며
바스락바스락, 필사의 손이 상한 날개를 연주하는 일 년
방안 가득 흩어진 열망이 압축된
푸른 페이지 붉은 페이지
* 관엽식물.
- 『어떤 사람이 물가에 집을 지을까』(문학동네, 2020)
*
강신애 시인의 시집 『어떤 사람이 물가에 집을 지을까』는 참 묘한 시집입니다. 시집이 '시'라는 벽돌로 지은 집이라면, 그가 지은 이 (시)집은 둘러보면 볼수록 묘한 풍경을 자아냅니다. 모기 날개처럼 보는 방향에 따라 색이 바뀌고, 그림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인 듯하면 미술관이 되고, 미술관인가 싶다 싶으면 어느새 음악실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한 편의 시에도 여러 겹이 덧칠해져 있어서 감상하다가 자칫 길을 잃거나 혹은 중심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그 기우뚱거림이 묘하게도 짜릿한 자극을 줍니다. 가령, 오늘 띄우는 「필경사」도 참 묘하지요.
다 읽으셨다면 당신은 지금
필경(畢竟) 어느쪽으로든 기우뚱거리고(斜) 있을 테지요.
당신은 분명히(必) 어느쪽으로든 기울었거나(傾斜), 앞뒤좌우로 기우뚱거리고 있을 테지요.
그렇다고 제목을 必傾斜나 畢竟斜로 읽어야 한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제목이 말하는 필경사는 분명히 筆耕士입니다.
그 이전과 이후가 달라질 만큼 <에밀>과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장자크 루소가 악보 필경사로 끼니를 해결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고,
18세기까지 터키 이스탄불에는 8만명의 필경사들이 코란을 필사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오로라 얘기를 꺼냅니다.
각주를 달아가며 오로라를 관엽식물이라 밝힌 것을 보면, 시인이 말하는 오로라는 아글라오네마의 한 종(種)인 시암 오로라(siam aurora)를 말하고 있지요.
영화 <레옹>에서 여주인공 마틸다가 늘 끼고 다니던 화분 기억나시는지요? 그 화분 속의 식물이 바로 시암 오로라입니다.
붉은색으로 녹색을 감싸고 있는 넓은 잎과 핑크빛의 줄기 그리고 흰색의 꽃을 피우는 관엽식물 말입니다.
아, 그렇군요. 지금 시암 오로라는 온몸으로 사력을 다해 북극의 오로라를 베끼고 있는 것이군요.
그러고 보면 오로라 또한 필경사임에 틀림없군요.
"하나의 인생을 읽고 / 평생 그 생을 베끼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문장 앞에서도
저는 잠깐 기우뚱했습니다.
루소 얘기는 아닌 듯하고, 이스탄불의 사내 얘기도 아닌 듯한데
그렇다면 이 문장은 또 누구의 이야기일까요.
아무래도 시인인 자기 자신에 대한 고백일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뭐 아닐 수도 있겠지요.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이후 생겨난 인류 최초의 사무직이 필경사이지요. 안타깝게도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거의 사라진 직업이지요.
<필경사 바틀비>에서나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시인은 그게 아니랍니다.
우리네 삶이
당신의 삶이
필경사의 그것과 닮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루를 허투루 살 일이 결코 아니라고 말입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한 생을 필사하는 중이니 말입니다.
손끝에 피멍이 들도록 말이지요.
2021. 11. 22.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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