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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비장에서 수습한 문수 스님의 사리. 도반들이 가사 위에 모아 놓고 지보사 신도들과 도반 스님들이 친견할 수 있도록 했다. ⓒ2010 불교닷컴
사리란 무엇인가? | ||
사리는 생신사리, 법신사리, 전신사리, 쇄신사리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생신사리(生身舍利)는 부처님의 유골을 말하는데 신골(身骨) 사리라고도 합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이 남기신 교법을 법신(法身)사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5년간 설하신 팔만대장경이 모두 이 법신사리에 속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 가운데 다보불(多寶佛)의 사리와 같은 사리를 전신사리(全身舍利)라고 하고, 석가모니부처님의 사리를 쇄신사리(碎身舍利)라고 합니다. 다보불은 온몸 그대로 하나의 사리를 남기셨고, 석가모니부처님은 여덟 섬 너말 이라는 수많은 사리를 남기셔서 인천(人天)으로 하여금 영원토록 복 전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리란 것은 어떻게 하여 생긴 것인가?
<금광명경권4 사신품>에 보면 부처님이 아란존자로부터 사리를 받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마땅히 이 사리에 예배하라. 이 사리는 계.정.혜를 훈수(熏修)한 결정체인 것이다. 이는 매우 얻기 어려우며 또한 최상복전이니라"하셨습니다.
곧 사리는 부처님이 계와 정과 혜의 삼학을 닦아서 생긴 결정체이므로 불상보다도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상은 사람들이 만든 것이지만 사리는 부처님의 몸에서 직접 나왔기 때문입니다.
사리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사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여러 부처님도 사리를 남기셨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다보여래(多寶如來)는 전신사리를 남기셨는데 다보탑이란 바로 다보여래의 사리탑입니다. 다보여래는 동방보정(東方寶淨) 세계의 교주로 과거 보살로 계실 때, <내가 성불하여 멸도한 뒤 시방세계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곳에는 나의 보배탑이 솟아 나와 그 설법을 증명하리라>라고 서원하신 부처님입니다.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조예술품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 섬세하게 조성된 다보탑은 다보여래를 상징하는 탑입니다. 탑이란 곧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입니다. 탑에는 모두 사리함이란 사리를 담는 상자가 있어서 사리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이 탑돌이 행사를 하는 것도 그 안에 부처님의 영골인 사리를 모셔 놓았기 때문입니다.
사리는 곧 부처님입니다.
"묘법연화경 견보탑품"에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법화경을 설하려고 하실 때에, 보배탑이 땅으로부터 솟아올라 허공에 머물며 미묘한 음성이 그 탑으로부터 흘러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수많은 대중들이 탑속에서 흘러나오는 미묘한 음성을 듣고 기뻐하며, 한 편으로는 전에 없던 일이라 이상하게 생각하여 석가모니부처님에게 묻게 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보배탑 가운데는 여래의 진신(眞身)이 계심과 같나니, 오랜 과거에 동방으로 한량없는 아승지 세계를 지나서 보정(寶淨)이라는 나라가 있었으며 그 나라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 이름이 다보이었느니라. 그 부처님께서 보살도를 행할 때에 큰 서원을 세우기를, <내가 만일 성불하여 멸도한 후 시방국토에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 있으면, 나의 탑은 법화경을 듣기 위하여 그 앞에 나타나 증명하고 거룩하다고 찬양하리라>하였느니라. 그 부처님께서 도를 이룬 뒤 멸도 할 때에 이르러 하늘과 인간 여러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멸도한 후 나의 전신에 공양을 하려는 이는 마땅히 하나의 큰 탑을 일으켜 세우라>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탑은 곧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이요, 사리는 부처님의 진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탑은 곧 부처님의 진신과 다름없이 성스러운 성보로써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석가모니부처님의 사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출현하였는지 그 유래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과거의 부처님으로부터 석가모니부처님, 그리고 역대조사스님들의 행적을 기록한 전등록(傳燈錄)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는 석존의 사리출현에 대하여 이렇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때는 세존께서 구시나성에 가셔서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등이 아프니, 열반에 들리라>하시고, 곧 니련화 곁에 있는 사라쌍수 밑으로 가셔서 오른 겨드랑이로 누워 발을 포개고 조용히 열반에 드셨다. 그리고 다시 관에서 일어나셔서 어머님께 설법해 주시고, 마지막 제자인 바기를 제도하신 뒤에 무상게를 말씀하시었다.
모든 법이 무상하다.
그것은 생명의 법이니
생멸이 멸하고 나면
적멸이 곧 즐거움이 된다.
그때에 제자들이 향과 장작을 가지고 앞을 다투어 다비를 거행하였으나 불이 탄 뒤에도 매양 금관(金棺)은 여전하였다.
그때에 대중들은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범속한 불길이 사나워도
어찌 불에 타시게 하오리까
청하옵나니 삼매의불(三昧火)로써
금빛 나는 몸을 사르옵소서!
그때에 금관이 앉은 자리에서 일곱 다라수(多羅樹) 높이에 솟아올라 허공을 오락가락 하다가 삼매의 불로 변하더니, 잠깐 사이에 재가 되었다. 여덟섬 너말의 사리를 얻으니, 이 때는 곧 주나라 목왕 52년 임신년 2월 15일이었다.
위의 기록에서 보면 부처님의 몸에서는 여덟 섬 너말이라는 엄청나게 많은 사리가 나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 사리는 나라의 번영을 희구하는 여러나라의 왕들이 서로 자기나라로 모셔가려고 하여 사리쟁탈전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이 때 향성(香姓) 이라는 바라문이 있어서, 이들 여덟 나라의 왕에게 "성스러운 부처님의 사리를 서로 모시려는 마음은 좋지만 그러나 전쟁을 해서는 안됩니다"라고 설득하여 전쟁을 중단시키고, 여덟등분으로 나누어 여덟나라가 모두 사리탑을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국가간에 전쟁까지 벌렸다는 것은 그만큼 부처님의 사리를 큰 복전이라고 생각하고 소중하게 여긴 까닭일 것입니다.
사리는 부처님의 영골 뿐이 아니고 부처님의 치아나 머리카락, 손톱도 부처님의 신체의 일부이므로 사리로서 신앙대상이 되었습니다.
사분율(四分律卷31)에는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시고 7일간 선정에 드시었는데, 그 때 그 곁을 지나가던 두 상인이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을 보고는 환희심이 나서 발심하여 밀초반(蜜草飯)으로 공양을 올렸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성도하신 후 이들 상인으로부터 최초의 공양을 받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대 상인들이여! 지금으로부터 귀의불 귀의법하라"
이로부터 두 상인은 부처님에게 귀의한 최초의 재가신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상딘들이 부처님 곁을 떠나가려고 하면서, "저희들이 집에 돌아가서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신물(信物)을 주십시요"하고 부처님에게 청하였습니다.
부처님은 두 상인에게 부처님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주시면서 "이것을 가지고 돌아가 집에 두고 예경하라"하셨습니다. 이때 두 상인들은 비록 부처님으로부터 부처님의 신체의 일부인 머리카락과 손톱을 받기는 하였지만 도무지 그 물건에 대한 공경심이 우러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어찌하여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이런 것을 주시면서 공경 예배하라고 하시는가?하고 의문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들의 속마음을 아신 부처님은 상인들에게,
"이 여래의 머리카락과 손톱에 대하여 추호라도 의심을 낸다거나 천시하지 말라. 여러 하늘과 모든 세간사람과 마중(魔衆). 범중(梵衆)들이 공양하고 얻은 공덕은 이루 말할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사람뿐 아니고 범천의 무리들이나 마왕의 무리들까지도 예경 함으로써 한량없는 공덕을 얻었다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후세에는 유명한 조발탑(爪髮塔)이 되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서는 부처님의 어금니를 국보로 모시고 정부안에 불치성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부서를 두고 불치성장관이 따로 있을 만큼 이 치사리(齒舍利)를 소중히 하여 전국민의 귀의처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육왕경 1권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열반 후 약 1백년경에 파타리불타성에 한 왕이 있으니 그의 이름이 아육이다. 전륜성왕이 되어서 정법을 신봉하고 사리를 공양하며 따라서 8만4천사리탑을 세워 많은 사람의 복전이 되게 할 것이다"라고 예언을 하십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예언대로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의 제 3대왕으로 야쇼카라는 왕이 등장하는데, 이 왕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거칠고 사나워서 부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다가 부왕이 죽자 이복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왕이 된 뒤에도 광폭함을 그치지 아니하여 신하와 여자들을 많이 죽이게 됩니다.
또 칼링가라는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서 포로 15만, 살육10만의 무수한 죽음의 대참사를 일으키고는 마음에 가책을 느껴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잡아함경에 의하면 아쇼카왕은 야사라는 장로를 찾아가서 참회를 하는데, 그 때 장로는 아육왕(아쇼카)에게 "대왕이여 불타께서 수기한 바가 있으니 그 수기를 따라 8만4천탑을 세우십시요"라고 권하게 됩니다.
아육왕은 이 권유에 따라서 8만4천의 절을 세우고 8만4천의 사리탑을 세웠고, 스스로 부처님의 유적을 순례하는 순례자가 되었습니다. 도 석주의 바위에다 글을 새기어 정법을 널리 홍보하는 등 불교진흥을 위해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로부터 사리탑에 대한 신앙은 인도대륙 전역에 널리 퍼져 나가게 되었고, 중국에서도 수나라 문제가 전국에 걸쳐서 1백 십 1개소에 사리탑을 세웠고, 당나라시대에는 더욱 사리에 대한 신앙이 성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 10년 봄에 양나라에서 사신을 신라의 유학승인 각덕과 함께 파견하였는데, 불사리를 보내 오므로 왕은 백관으로 하여금 흥륜사의 앞길에 나가 이를 맞아들였다>고 하였으므로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이 때 처음으로 불사리가 들어온 것입니다.
동화사 금당기에 의하면 징흥왕이 즉위 10년에 양나라로부터 사리함 한 개를 받았다 하였고, 진흥왕의 손자인 진평왕 4년에 사리를 각 사찰에 나누어 모셨는데, 그때 동화사에 모신 사리는 모두 1천2백여과라고 합니다. 이 사실은 동화사의 사리탑보수시에 입증된 바 있습니다.
또 선덕여왕 5년에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님께 기도 끝에 문수보살로부터 사리 1백과를 전해받고 귀국하여 영축산 통도사, 오대산 월정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에 분봉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네 군데의 사찰을 4대 적멸보궁이라 하고 이곳에서는 따로 부처님을 모시지 않고 사리만을 모신 보궁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사리자체를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고, 불교신도 가운데도 사리자체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비과학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를 신앙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 문수보살 전에서 기도 끝에 부처님의 사리를 전수받은 사실을 보더라도 사리는 신앙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화도 있습니다
양고승전에 의하면 강승희라는 스님은 인도로부터 중국에 건너와서 불법을 전파하려고 전력을 다하였습니다. 마침 당시 오나라의 왕인 손권이 이 스님에게 "불교에는 어떠한 영험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스님은 대답하기를
"부처님이 열반하신지 1천여년이 넘었지만 유골사리는 그 영험을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도의 아육왕은 팔만사천불탑을 세웠으니 대왕께서도 불교중흥에 귀를 기우려 주십시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손권은,
"나에게 그 영험적인 사리를 보여준다면 나도 적극적으로 불교를 위해 힘쓰겠지만 만일 그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면 국법으로 엄히 다스리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사리를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왕에게 7일간만 말미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허락을 얻은 후에 스님은 고요한 방에서 구리 병을 마련해놓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한 목숨 살고 죽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나 오나라에 불법을 전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가 달려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법을 위해 몸을 버리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불철주야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7일이 지나도 아무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7일을 더하였으나 역시 아무런 등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부처님의 가피가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7일을 더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마지막 날 새벽 5경이 되자 홀연히 쨍그렁하는 소리가 나더니 구리병 속에 5색이 영롱한 사리가 나타나 방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환희에 넘친 스님은 왕에게 나아가 이 부처님의 사리는 망치로 때려도 부서지지 않으며 불 속에 넣어도 타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왕이 그대로 실험해보았는데 정말로 부서지거나 불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전국에 산재한 많은 사찰에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습니다만 모두 탑 안에 봉안되어 있으므로 친히 친견할 기회가 없었는데 다행히 이번에 인연이 도래하여 우리 다같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친히 뵙고 한량없는 공덕을 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부처님은 이 사바세계에서 2천 5백여년 전에 육신의 모습을 버리셨지만 사리를 남겨서 후세인들로 하여금 신심을 갖고 불법을 신앙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리는 우리의 눈으로 불 수 있는 부처님의 진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을 직접 뵙는다는 경건한 마음으로 사리친견을 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직접 뵙고 더 한층 신심을 돈독히 하여 이 세상 어디에서나 계시는 부처님의 법신을 깨달아 다 같이 성불하는 계기로 삼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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