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2일(목)
* 시작 기도
주님...
한 알의 밀이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 12:24)고 하셨는데, 나는 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나는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남을 죽이고 도둑질하고 멸망시키는 도둑일 뿐, 양으로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게 하는 주님의 생명이 아님을 고백하나이다.
겉으로는 남을 살리려는 자 같으나 속으로는 여전히 죽이려는 자이기에 나도 죽고 다 같이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
주의 보혈로 씻고 죄에서 멀리 하려 하나 돼지가 씻고 나서 다시 똥 위에 드러눕는 것처럼 죄로 달려가는 나의 모습을 보오니 주님, 이 종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의 보혈을 힘입어 다시 파레시아로 아버지 품으로 나아가나이다.
오늘도 주신 이 말씀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며 성령으로 충만케 되기를 원하오니 하늘의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레 7:28-38
제목 : 화제와 요제와 거제 그리고 전제 되신 예수 그리스도.
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9.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리려는 자는 그 화목제물 중에서 그의 예물을 여호와께 가져오되
30. 여호와의 화제물은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31. 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것이며
32. 또 너희는 그 화목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을지니
33. 아론의 자손 중에서 화목제물의 피와 기름을 드리는 자는 그 오른쪽 뒷다리를 자기의 소득으로 삼을 것이니라.
34.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가져다가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35.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서 아론에게 돌릴 것과 그의 아들들에게 돌릴 것이니 그들을 세워 여호와의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한 날
36. 곧 그들에게 기름 부은 날에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돌리게 하신 것이라.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이니라.
37. 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식과 화목제의 규례라.
38.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라 명령하신 날에 시내산에서 이같이 모세에게 명령하셨더라.
* 나의 묵상
제사의 종류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5가지다.
그리고 이 제사를 드리는 방법에 따라 요제 거제 화제 전제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오늘 본문에는 화제 요제 거제 3가지 제사 방법이 등장한다.
번제는 기본적으로 화제이다.
화제(火祭)는 불에 태워드리는 제사의 방법이다.
따라서 번제는 모든 것을 다 태워드리는 제사를 말하므로 화제에 해당한다.
화목제의 경우는 제물의 일부 곧 기름은 불에 태워드리기 때문에 화제이며 가슴은 하나님 앞에 흔들어 드리므로 요제이고 오른쪽 뒷다리는 높이 들어서 드리는 거제에 해당한다.
피는 제사장이나 제주가 먹어서는 안 되고 오직 번제단 밑에 쏟아 부어야 하는데 이를 가리켜 전제라고 한다.
이와 같이 제사의 4가지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이는 결국 하나님께 나 자신을 내어드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죽고 오직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죽으실 때 이와 같이 화제 요제 거제 전제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
예수님을 직접 불로 태워드리는 화제는 아니었으나 자신이 완전한 죄악덩어리가 되셔서 십자가에 완전히 죽으심은 곧 화제로 자신을 드림을 의미한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거제는 제사장이 제물을 높이 들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다.
높이 올려드리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전제는 물과 피를 다 쏟으신 것이며 이는 완전히 죽어 자신을 드림을 의미한다.
요제는 흔들어 드리는 제사로서 흔든다는 의미는 곧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예수님이 죽기만 하시고 다시 사심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 역시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었을 것이다.
(고전 15:16-20)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허ㅢ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죽은 시체를 붙잡고 막 흔들면서 왜 누워 있냐고 빨리 일어나라고 하는 것처럼 제물을 흔들어 드리는 것은 부활에 대한 소망을 의미하는 것이다.
레위기 23:9-14절을 보면 초실절이라는 절기에 처음 거둔 곡식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면 제사장은 그 단을 하나님이 받으시도록 흔들되 안식일 다음날에 흔들어 드리도록 되어 있다.
(레 23:10-11)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한 알의 씨앗이 죽을 때 새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는 맺느니라.
죽음이 곧 생명이라는 말이다.
이는 새로 맺은 열매 속에 죽은 씨앗의 생명이 담겨져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또한 우리로 하여금 새 생명을 얻게 하심이다.
그 생명 속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존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살아나심에 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첫 열매이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세상의 많은 종교들은 무덤으로 끝이 난다.
그래서 그들은 크고 화려한 무덤을 신성시 하고 자랑한다.
하지만 이는 자기들이 믿는 종교가 죽음의 종교임을 자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눈에 보이는 무덤을 자랑하지 않는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에 장사되신 것은 너무나 중요한 하나의 사건이다.
그 무덤에 장사되심을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가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덤에 장사되심이 없이 만약 십자가에서 바로 부활로 가게 되면 이는 생명의 실재가 아니라 상징만 남을 뿐이다.
이는 곧 눈에 보이는 무덤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나 말씀 속에서 내가 경험하는 무덤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무덤의 과정을 거치는 자라야 진정한 생명 곧 새 생명으로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새 생명에로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 곧 흔들어 드리는 요제이다.
인생은 나면서부터 무덤을 향해 달려간다.
영웅호걸도 종교를 창시한 교주도 죄인이기에 무덤을 덮고 누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죄로 얼룩진 인간의 법칙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빈 무덤을 보라.
우리 주님도 무덤에 누우셨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의 죄가 아니라 바로 나의 죄, 우리의 죄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거기에 누워계시지 않고 일어나셨다.
그것을 천사로 하여금 증거하게 하셨다.
(마 28:5-6)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다른 종교에도 윤리나 도덕은 존재한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생명은 그들에게 없다.
신격화되는 모든 교주도 다 땅에서 태어나 땅에 속한 것을 말하다가 죽어 땅에 있는 무덤에 들어가 눕는다.
물론 예수님도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셨지만 그는 땅에 속하여 죽은 자가 아니라 위로부터 태어나신 자로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죽으셨다.
(요 3: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세상에 속한 종교들은 교주의 화려한 무덤을 자랑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을 자랑한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빈 무덤을 가지고 장사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예루살렘에 가서 보면 예수님의 빈 무덤을 자랑하되 그것을 얼마나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꾸며놓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무덤을 기념하여 성묘교회를 세우고 이를 관광지로 삼아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는 본디 이들만의 잘못이 아니요 내 안에도 이와 같은 동일한 죄가 있음을 고백한다.
성지(聖地)란 예수님이 육신으로 사셨던 그 자리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자리가 바로 聖地여야 한다.
곧 내가 있는 자리가 성지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널리 증거되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자리가 성지요 하나님 나라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있는 자리를 살아계신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자리로 만들지 못하고 그저 나 자신을 드러내는 자리로 만들었음을 고백한다.
예수를 이용하여 나 자신이 드러나고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내 이름이 높임을 받는 등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함에도 예수는 죽이고 내 이름이 드러나는 자로 살아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그럼에도 우리 주님께서는 나의 이런 허물까지도 용납하시고 받아주셔서 당신의 생명으로 살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이제 나 또한 우리 주님을 용납하고 나 자신도 용납하여 아들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를 소망한다.
내 안에 아들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곧 말씀과 성령으로 가능한 일이기에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서서 나의 죄를 보고 철저히 회개하며 주의 보혈을 힘입어 담대하게 아버지 품으로 나아가는 파레시아(담대함)를 가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나의 죄로 인하여 죽었나이다.
우리 주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어 무덤에 장사되셨으니 나도 나의 죄를 못 박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덤에 장사되기 위하여 머무나이다.
이는 그 자리가 바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좌소이기 때문이니이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요제로 흔들어 드림 같이 나는 그런 우리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무덤에서 새 생명으로 나아가오니 날마다 부활의 산 소망으로 살게 하소서.
지금 이 자리가 바로 카이로스인 하나님의 시간이 크로노스인 세상의 시간에 틈입하여 날 찾아오시는 자리임을 믿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나이다.
나의 모든 것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