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809호
예를 들어 무당거미
복효근
무당이라니오
당치 않습니다
한 치 앞이 허공인데 뉘 운명을 내다보고 수리하겠습니까
안 보이는 것은 안 보이는 겁니다
보이는 것도 다가 아니구요
보이지 않는 것에 다들 걸려 넘어지는 걸 보면
분명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지요
그 덕분에 먹고 삽니다
뉘 목숨줄을 끊어다가 겨우 내 밥줄을 이어갑니다*
내가 잡아먹은 것들에 대한 조문의 방식으로 식단은 늘 전투식량처럼 간소합니다
용서를 해도 안 해도 상관없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작두라도 탈까요
겨우 줄타기나 합니다
하루살이 한 마리에도 똥줄이 탑니다
무당이라니오
하긴 예수도 예수이고 싶었을까요
신당도 없이 바람 막아줄 집도 정당도 없이
말장난 같은 이름에 갇힌 풍찬노숙의 생
무당 맞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 신휘 시인의 「실직」의 한 구절 변용함.
- 『예를 들어 무당거미』(현대시학, 2021)
*
복효근 시인의 신작 시집 『예를 들어 무당거미』의 표제시를 띄웁니다.
정한용 시인은 복효근 시인을 고수 중의 고수라 했지만, 틀림이 없는 말이지만, 굳이 덧붙이자면 복효근 시인은 또한 무당 중의 무당입니다.
「예를 들어 무당거미」가 이를 너끈히 증명하고 있지 않나요.
물론, 시인은 "무당이라니오 / 당치 않습니다" 하며 손사레를 칩니다만, 시인이 툭툭 뱉어내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 복효근 시인은 "무당 맞습니다 / 그래서 어쩌라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예를 들어 무당거미」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문장은 무엇일까요?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저는 "예를 들어"를 꼽습니다.
가령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 아닐까요?
지금 무당거미를 예로 들었지만, 결국은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에 관한 얘기라고 말입니다.
아니라고요?
당신(의 삶)은 "예를 들어"의 그 예에서 벗어나 있다고요?
그렇다면 참 참 다행입니다.
2021. 11. 29.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
달아실출판사: (24257) 강원도 춘천시 춘천로 257, 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