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앞잡이 [윤은성]
여기만 지나면 마을이 나온다고 그가 말한다.
터널 안에서.
우리를 지나치고 있는 생각들 안에서.
빛. 따갑다. 우리는 드러날 것이다.
각자의 바뀐 옷가지를 그대로 걸치고서.
아이의 형상에 또 다른 아이의 형상이 겹치면서.
운전대를 쥔 그의 손이
내게서 멀어진다.
그가 다리 위에 서 있다.
내가 그의 사진을 찍어준다.
빛. 날벌레들이 달라붙는 오후.
그의 뒤로 조깅하는 커플이 천천히 사라진다.
굴뚝.
연기.
그을음이 인 것 같은 얼굴.
목이 탄다.
시기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이사를 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가 도와주었겠지. 내가 혼자서 마칠 수는 없었을 때니까.
그는 광장을 배회하고 돌아오곤 했다. 나도 같이 가자고 말한 적이 있었다.
군중에 섞였고. 옳은 것이 있었고.
여기만 지나면
한 번도 발 디뎌본 적 없었던 마을이.
안팎.
이분二分.
백일하.
다시 계속되는 터널.
우리가 우리라는 공기로 덮일 수 있었을 때.
해가 지게 될 것인데.
따가운 빛일망정 사라질 시각이 올 것인데.
길이 넓고 환하고.
서로를 놓게 되는 오후.
아주 작은 너를 봤어.
나를 모르는 너를 봤어.
멀리서
이미 터널의 밖에 있는
내가 모르는 너를 봤어.
갈증이.
갈증이.
- 주소를 쥐고, 문학과지성사, 2021
* 꽃길만 걸어라. 비단길만 걸어라.
기나긴 인생길이 꽃길만 있을 수 없고 비단길만 있을 수 없다.
人生의 生자는 소가 땅을 디디고 있는 모습이니 평생 소처럼 일하며 사는 게 인생이다.
누군가 비단길은 아니라도 길앞잡이가 되어 터널을 지나고 넓은 길로 인도해준다면 수월하게 가는 인생길이겠다.
늘 마주치는 인생길.
여기만 지나면, 또 여기만 지나면......
터널같은 길이 여기만, 여기만이다.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데 늘 헤매는 게 길이다.
누가 비단길앞잡이가 되어줄 것인가.